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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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
Le Monde et le pantalon suivi de Peintres de l’empêchement

사뮈엘 베케트 지음, 김예령 옮김, EH 사진

『세계와 바지 / 장애의 화가들』은 사뮈엘 베케트의 미술 평론집이다. 이 평론집에는 베케트가 네덜란드 출신의 형제 화가 브람 판 펠더(Abraham Van Velde, 1895~981)와 헤르 판 펠더(Gerardus Van Velde, 1898~977)에 대해 쓴 두 편의 글, 「세계와 바지」(1945) 및 「장애의 화가들」(1948)이 실려 있다.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전부터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 꾸준히 관심을 두었던 베케트는 판 펠더 형제를 발견하고서, 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당시 현대미술의 주도적 세력과 동떨어진 무명의 두 화가를 적극 지지했다. 이 책은 베케트와 판 펠더 형제의 이러한 우정과 사유의 동행을 보여주며, 이들이 서로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은밀히 드러낸다.

말 못 함을 말하기

「세계와 바지」는 1945년 초, 각기 M. A. I 갤러리와 마그 갤러리에서 열린 판 펠더 형제의 전시회를 계기로 쓰였으며, 『카이에 다르(Cahiers d’Art)』지, 20/21권, 1945–6년에 처음 실렸다. 당시 제목은 ‘판 펠더 형제의 회화 혹은 세계와 바지’였고, 두 화가의 작품 일부가 흑백으로 함께 실렸다. 「장애의 화가들」은 마그 갤러리에서 발행한 미술 비평지 『데리에르 르 미르와르(Derrière le Miroir)』지, 11/12호(1948년 6월)에 처음 실렸다.

전형적인 비평가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미술에 대한 베케트의 관심은 평생 지속되며 창작에 영향을 미쳤다. 젊은 날 베케트는 이탈리아와 독일 등을 떠돌며 미술 작품을 감상했다. 브람 판 펠더에 따르면, 그가 베케트와 처음 만난 것은 1936년이며,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던 1940년대를 베케트 덕분에 버텨냈다고 한다. 극도의 고독과 침묵, 가난 속에서 그림을 그렸던 브람 판 펠더에게 베케트는 자신의 예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단 한 명의 친구이자 원조자였다. 베케트가 주선하고 평론을 쓴 1945년의 전시회는 브람 판 펠더 생애 첫 개인전이었다. 그러나 1938년 런던에서 역시 베케트의 주선으로 열렸던 헤르 판 펠더의 개인전이 그러했듯, 전시는 주목받지 못한다. 판 펠더 형제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후, 즉 이들이 70세에 가까워서의 일이다.

베케트가 바라보기에, 판 펠더 형제의 작품들은 “한 지점에서 출발해 서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며 진전하는 두 갈래 회화, 그토록 다르면서도 그토록 닮은 회화의 두 가지 미래”였다. 같고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이들의 세계를 베케트는 상당히 과도한 언변으로 그려낸다. 형 브람은 특히 여러 면에서 베케트의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말 없음, 수동성의 힘, 어둠 속에서 감지되는 약동을 내면의 눈으로 더듬는 그림. 베케트는 ‘말 못하는 자’의 예술의 정수를 대신 밝혀낸다. 그리고 이는 베케트 자신의 글이 향하는 방향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작품은 실패하기를 받아들여버린, 그리하여 ‘표현의 불가능성’에서 해방되고 만 것들이다.

“사유와 지식 바깥으로부터 홀로 떠오르는 회화의 고독에 바쳐진 이 두 편의 글에서, 베케트의 문체와 논의 전개 방식은 읽는 이를 당황케한다. 비약하는 명제들과 박식, 반어적 유머들이 현란하게 교차하는 이 난감한 텍스트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것들은 스스로의 빛나는 현학 속에서 진저리 치고 있는 건가, 검은 웃음이 그 반증이듯? ‘나는 결코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않습니다 (…) 그들이 쓴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 나는 지식인이 아니오. 나는 그저 감각(sensibilité)일 뿐입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날 『몰로이』와 그 후속작의 착상을 얻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느끼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지요.’ 지성과 박학이 쌓여 막다른 골목을 형성하면, 무지가 그 틈새로 어둠 속 길을 열어 준다. 그렇다면, 이른바 ‘M 3부작’의 착상과 집필에 맞물리는 이 텍스트들의 기이한 탐조(探照)는 거대한 인간의 지식 체계들을, 요컨대 그 허영을 차례로 잃고 털어내면서, 뱉어가면서, 어리석음의 들판으로, 도살장 방향으로, 제 한없는 질척거림 속에 연거푸 벌어지며 기어코 도래하는 순음 [m]의 웅얼거림으로 기어갈 몰로이/모랑의 종적이자, 묘연하여라, 글쓰기가 자기 발생을 위해, 마침내 두개골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에 가하는 즐거운 기형학(tératologie)의 시연(試演)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설」, 60~1쪽


발췌

유동하는 이 평면들, 떨리는 이 윤곽선들, 안개속에서 재단된 듯한 이몸들, 아무것도 끊어낼 수 없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스스로 끊겼다 다시 형성되기를 거듭하는 이 균형들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호흡하고 헐떡이는 이 색채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들끓는 듯한 정지 상태에 대해서는? 이 무게도, 힘도, 그림자도 갖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헤엄치고, 빠져 달아나고, 되돌아오고, 해리되었다가, 재형성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끊어진다. 분자들의 반란, 풍화되기 1천분의 1초 직전인 돌의 내부라고 하면 될까. 그거다, 문학은. (27쪽)

A. 판 펠더는 펼쳐진 것(l’étendue)을 그린다.
G. 판 펠더는 연속을 그린다.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으려면, 더구나 재현할 수 있으려면 우선 그것을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하기에, 전자는 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 태양의 채찍질 아래 마치 팽이처럼 도는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그것을 이상화하고 하나의 내적 감각으로 만든다. 그리고 정확히 그와 같은 이상화의 방편을 통해 그는 예의 객관성, 그 선례 없는 선명함을 확보하며 이자연 그대로의 펼쳐진 것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A. 판펠더의 독창적발견은그점에있다.명료하게 보고자 하는 필요를 극단적으로 팽팽하게 밀고 간 덕분의 결과다.
반면 후자는고스란히바깥을향해,빛아래사물들의소란을향해,시간을향해 돌려져 있다.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갖는 일은 오직 시간이 뒤흔드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그것이 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사물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그렇다. 스스로를 온전히 바깥에 제공함으로써, 시간의 전율에 의해 요동하는 대우주를 가리켜 보임으로써 G. 판 펠더는 자신을, 혹은 인간을 그가 보유한 가장확고부동한사실속에, 즉현재도휴식도존재하지않는다는그의확신속에 실현해낸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겸허한 산법을 따르자면, 아무도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저 강물의 재현이다. (28쪽)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대상은 그저 그것 자체일 뿐이니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대상을 볼 수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일 뿐이니까. 이 두 종류의 예술가들, 또는 대상-장애(empêchement -objet)와 시선-장애(empêchement-oeil)라는 두 종류의 장애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장애를, 사람들은 셈에 넣어왔다. 그에 대한 조절이 가해져왔다. 그럼으로써 이들 장애의 문제는 재현의 범위로 귀속되지 않았다. 혹은 거의 귀속되지 않았다. 반면, 판 펠더 형제에게서 이 장애들은 재현의 일부이다. 심지어 그들에게선 그것들이야말로 재현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되리라. 그리는 행위를 저애(沮礙)하는 어떤 것, 바로 그것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헤르판 펠더는(나의 취약한 견해에 의하면) 첫 번째 부류의 예술가이며, 브람 판 펠더는 두 번째에 속한다. (53쪽)


차례

세계와 바지
장애의 화가들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89)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해낸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김예령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7대학에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등의 『숭고에 대하여—경계의 미학, 미학의 경계』, 안느실비 슈프렌거의 『아귀』, 레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루이페르디낭 셀린의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등이 있다.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표지 사진

EH(김경태)는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전공했다. 「스트레이트—한국의 사진가 19명」,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 등 여러 전시에 참여했으며,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와 『로잔 대성당 1505~2022』가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