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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론 죽다

말론 죽다
Malone Meurt

사뮈엘 베케트 지음, 임수현 옮김, EH 사진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말론 죽다』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베케트의 대표적인 소설 3부작 중 한 권으로, 앞선 『몰로이』와 뒤따르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사이에서 전통적인 소설을 벗어나 베케트식 글쓰기로 본격적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글쓰기의 과정

사뮈엘 베케트는 전후 1946년부터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도 글을 쓰기 시작해, 1947년 『몰로이』, 1948년 『말론 죽다』, 1949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썼다. 소설들은 1951년부터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기 시작했다.

세 소설은 모두 1인칭 장편소설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바를 단계별로 보여 준다. 글쓰기의 주체로 설정된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 『몰로이』를 지나, 소설이 3분의 1 정도 진행된 다음에야 등장한 이름이 죽음으로 향하는 『말론 죽다』를 거쳐, 이름과 정체성을 아예 잃어 버리게 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까지. (『몰로이』는 200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중 한 권으로 출간되었고[김경의 옮김], 2016년 워크룸 프레스에서 펴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이름은 물론 팔다리도 없이 몸통과 머리만 남아 단지에 들어가 있는 ‘항아리-인간’이 쏟아내는 말들을 한국어로 선보인 바 있다[전승화 옮김].) 사뮈엘 베케트의 후기 단편들 『죽은-머리들 / 소멸자 /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과 베케트 후기 3부작으로 불리는 글 세 편을 포함한 단편집 『동반자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 최악을 향하여 / 떨림』을 한국어로 옮긴 임수현은 이 책 『말론 죽다』를 옮기면서 베케트 소설 3부작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는 베케트가 전통적인 소설의 구성 요소들을 조금씩 비워 나가는 과정이며, 그의 글쓰기는 결국 소설가와 서술자의 경계마저 희미해진 채 오직 ‘말하는 주체’만 남겨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임수현, 해설 「소설의 죽음, 글쓰기의 시작 — 사뮈엘 베케트의 『말론 죽다』」, 144면) 또 다른 베케트 연구자 에디트 푸르니에에 따르면, 이 소설 3부작은 (베케트가 애독했다고 알려졌으며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인용하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속 3부인 「지옥」과 「연옥」과 「천국」에 해당한다. 즉 『말론 죽다』는 인물과 이야기를 불확실하나마 최소한 간직하고 있는 『몰로이』와 머릿속 말들만 쏟아져 나오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중간 단계인 연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말론 죽다』는 『몰로이』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죽음 외에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인물과 이야기의 파편들과 함께 그것들을 만들어 내는 자신의 생각까지 두서없이 내뱉는 서술자를 통해 글쓰기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소설이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난 어떻게든 결국 조만간 완전히 죽을 거다.”(9면)

『말론 죽다』의 첫 문장. 말론은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고 예고하는 독백으로 입을 연다. 말론의 죽음을 유보하는 방법은 한 가지로 파악된다: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기. 말론은 이것을 ‘놀이’라고 칭하면서,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알 수 없는 방에 갇힌 상태로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며 놀기 시작한다. 좀처럼 이야기에 진입하지 못하던 말론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듯한 소년 사포스캣의 가족과 삶에 짓눌려 보이는 루이 가족의 이야기를 조금씩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를 오가다가, 중간중간 불현듯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고, 다시 맥먼이라는 새로운 피조물을 선보인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맥먼은 자신을 관리하는 르뮈엘 및 그 무리와 함께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초반에 르뮈엘의 느닷없는 살인으로 끝나고, 르뮈엘과 맥먼을 포함한 남은 일행은 바다를 떠돈다. 이야기의 끝. “더 이상 아무것도.”(138면) 마지막 문장과 함께 말론이 만든 이야기도, 말론의 독백도 끝난다.

『말론 죽다』에서는 이렇게 서술자와 피조물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전개된다. 그러면서 마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글쓰기처럼, 서술자는 인물과 이야기와 표현을 찾는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임수현은 이러한 ‘과정의 글쓰기’ 가운데 서술자(1인칭의 말론)와 피조물(3인칭의 사포, 맥먼)의 목소리 외에 텍스트를 맴도는 제3의 목소리를 지적하면서, 이 존재가 이후 베케트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고 말한다. “이 목소리는 분명 ‘나에 대해 얘기하는 내 목소리’일 것이지만, 때로 말론을 떠나 그의 이야기와 글쓰기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나’를 평가하는 듯한 목소리는 이야기의 진행을 독려하기도 하지만(‘이 부분 괜찮네.’ ‘진행이 된다.’)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고(‘이렇게 지루할 수가.’ ‘아니, 이게 아니지,’ ‘끔찍하군.’ ‘아니, 정말 내 얘기라고!’ ‘갈피를 못 잡겠다. 단 한 마디도.’), 자신의 말을 뒤집거나(‘일주일 전에 나는 이렇게 말했지, 난 어떻게든 결국 조만간 완전히 죽을 거다. […]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맹세라도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대상화하기도 한다(‘이봐, 말론, 또 이러지 말라고.’). 이러한 자기 성찰적인 내면의 소리들은 『말론 죽다』가 지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또는 ‘소설에 대한 소설’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결국 서술자인 말론의 권위를 흔들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 즉 작가를 소환한다.”(151–152면) 글쓰기를 구성하는 구성 요소들인 작가와 서술자와 인물과 독자가 서로를 끌어들이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는 ‘자기 재현’은 이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와 『그게 어떤지』 등으로 거듭나며 베케트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여러 방식으로 증명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만 살 수 있는, 따라서 소설이 끝나면 죽음에 이르게 될 말론이 남기는 여러 파편에서 우리는 작가 사뮈엘 베케트를 보게 된다. “헐떡거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헐떡거리고, 추측하고, 부정하고, 단언하고, 부정”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거듭 실패하는 글쓰기를 실현하고 있는.


발췌

난 어떻게든 결국 조만간 완전히 죽을 거다. (9면)

그동안 난, 할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해 줄 거다. 예전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들은 아니겠고, 그게 전부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차분한 이야기들일 테고, 그 안엔 추함도, 아름다움도, 열기도 없을 테고, 이야기하는 사람만큼이나 거의 생기 없는 이야기들이겠지. (9–10면)

이제부터는 놀이고, 난 놀이를 할 거다. (9면)

이렇게 지루할 수가. 이런 걸 노는 거라고 부르다니. 주의했는데도, 여전히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대상에 대해서, 내가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는 건 불가능할까? 이 어둠이 밀려오고, 이 고독이 준비되는 게 느껴지고, 그것들을 통해 나를 알아보고, 그리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그저 비겁함에 불과한 이 무지함이 나를 부르는 게 느껴진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이젠 잘 모르겠다. 이런 건 노는 게 아닌데. 내 꼬마 사포가 어디서 왔는지, 그가 뭘 바라는지, 난 곧 모르게 되겠지. 어쩌면 이 이야기를 포기하고 두 번째로, 아니면 세 번째, 그러니까 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마찬가지일 테지. 내가 더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더 진행하기 전에 내가 했던 말들을 잘 생각해 봐야지. 실패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나는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살펴볼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게 유일한 방법이겠지. 이 진흙 목욕을 하고 나면 내가 흔적을 남기지 않은 이 세상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겠지. 이런 사고방식이라니. 난 눈을 뜨겠고, 떨고 있는 나를 보겠고, 수프를 삼키겠고, 내 소유물들의 작은 더미를 보겠고, 실행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몸에 오래된 명령들을 내리겠고, 케케묵은 내 의식을 살펴보겠고, 마침내 부풀어 올라 나를 지나가게 하는 이 세상에서 이미 멀리 떨어져, 내 고통을 엉망으로 만들어 그걸 더 잘 맛볼 수 있게 할 것이다. (20–21면)

사는 것. 난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한다. 내가 뭘 위해 애쓰는지도 모르면서 난 살려고 애를 썼다. 어쩌면 난, 그걸 모르면서도 어떻게든 살았던 것 같다. 왜 온통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아 그래, 지루함을 달래려고 그러는 거겠지. 사는 것과 살게 만드는 것. 더 이상 말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자기들이 전달하는 것보다 더 무의미하지는 않다. 실패한 후엔 위로, 휴식, 그리고 난, 내 안에서, 다른 사람 안에서, 살아 보려는, 살게 만들려는, 다른 사람이 되는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거짓인지.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다. 이제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의도 아래 조금씩. 더 이상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하기 위해서. (28면)

방금 전처럼, 내가 멈추면, 소리들이 이상한 힘으로, 때가 된 것들을 이어 간다. (41면)

종이에 놓인 내 새끼손가락이 연필보다 앞서 나가다 떨어지면서 연필에게 줄이 끝났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다른 방향, 즉 위에서 아래로는, 대충 진행한다. 난 글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건 내가 어디에 있고,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처음에 난 글을 쓰지 않았고, 그냥 말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했던 말들을 잊어버렸다. 진짜로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억이 꼭 필요한 법이다. (43면)

이런 상태가 계속된 게 분명 일주일도 더 됐겠고, 일주일 전에 나는 이렇게 말했지, 난 어떻게든 결국 조만간 완전히 죽을 거다. 하지만 조심하자.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맹세라도 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썼다. 이 마지막 두 문장, 그걸 이미 어딘가에 썼었다는, 아니면 한 단어 한 단어씩 말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44면)

이렇게 지루할 수가. 돌 이야기로 넘어가면 어떨까? 아니, 그래도 마찬가지겠지. 루이 가족, 루이 가족, 문제는 루이 가족인가.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다른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 내 계획들, 그것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얼마 전까지 내겐 계획들이 있었는데. 그럴 시간이 어쩌면 내게 아직도 10년은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조금 더 계속해서 다른 걸로 넘어가야겠다, 여기서 머물 수는 없으니까. 멀리서, 아득한 정신 속에서,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을 방황하는 정신 속에서,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잔해 가운데 루이 가족에 대해, 나에 대해 얘기하는 내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53면)

그러는 동안 나는, 가끔씩 미친 듯이, 내 연필을 되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작은 비너스 제품인데, 아마 아직 녹색일 것이고, 5각형 아니면 6각형이며, 양쪽 끝이 뾰족하고 너무 짧아서, 중간에 내 엄지손가락과 그다음 두 손가락들이 끼어들어 갈 자리만 겨우 있다. 나는 양쪽 끝을 돌아가면서 사용하고 자주 빠는데, 난 빠는 걸 좋아한다. 끄트머리가 무디어지면, 나는 길고, 노랗고, 날카롭고, 아마도 칼슘이나 인산염이 부족해 쉽게 부러지는 손톱으로 그것들을 벗겨 낸다. 이런 식으로 내 연필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작아지고, 언젠가는 내가 더 이상 붙잡을 수도 없는 미세한 조각만 남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누르는 힘을 최소화하겠지만, 심이 단단해서 내가 누르지 않는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난 혼자 이렇게 말한다, 흔적을 남기려면 꾹 눌러야 하는 단단한 심과, 종이를 건드리지도 않고 검게 만드는 부드럽고 두툼한 심은, 지속성의 관점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아 그래, 내겐 작은 소일거리들이 있지.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마도 침대 속 어딘가에,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긴 원기둥, 프랑스제 다른 연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한 한, 걱정거리는 없는 셈이다.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61면)

게다가, 내가 태어났든 아니든, 내가 살았든 아니든, 내가 죽었든 아니면 그저 죽어 가는 중이든 그런 건 상관없고, 내가 뭘 하는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채로 항상 해 왔던 것처럼 계속할 것이다.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난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한 작은 피조물을 만들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그게 형편없어 보이거나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으면, 먹어 치울 것이다. 그런 다음엔, 내가 어떤 기도를, 누구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행하게, 한참을 혼자 있게 되겠지. (64–65면)

내 느낌으로는

내 느낌으로는 그게 오고 있다. 어떻게 돼 가냐고, 고맙게도, 그게 오고 있다. 난 적기 전에 확실히 해 두고 싶었다. 철두철미하게 정확하고 엄격한 것, 이게 말론이다. (73면)

내 상태가 완전 최고임을 기록하기 위해 멈춘다. 어쩌면 망상일지도. (101면)

갈피를 못 잡겠다. 단 한 마디도. (108면)

멀리 떨어진 손으로 내게 남은 페이지들을 세어 본다. 괜찮을 것 같다. 이 노트, 이 두꺼운 아동용 연습장이 내 삶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난 이걸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원군이라고 불렀던,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서툴렀던 그들을 마지막으로 거기 적어서, 나와 함께 죽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휴식. (122면)


차례

말론 죽다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표


지은이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89)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옮긴이

임수현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파리4대학에서 사뮈엘 베케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이자 극단 산울림 예술감독이다. 옮긴 책으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 『떠나든, 머물든』,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 드니 게즈의 『항해일지』,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타란느 교수』,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서용순 공역), 사뮈엘 베케트의 『죽은-머리들 / 소멸자 / 다시 끝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실패작들』, 『동반자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 최악을 향하여 / 떨림』 등이 있다.

표지 사진

EH(김경태)는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다. 중앙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스위스 로잔 예술 대학교(ECAL) 대학원에서 아트 디렉션을 공부했다. 작품집으로 『온 더 록스』, 『로잔 대성당 1505–2022』 등이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