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소타이프, 정보 디자인의 기초 문법
바야흐로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자연히 각종 자료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하고 드러내는 정보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보 디자인의 기초 문법 ‘아이소타이프(Isotype)’에 관한 연구도 늘어났다.
아이소타이프란 국제적인 그림 언어 체계로, 갖가지 지식을 조직적으로 시각화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즉 정보, 자료, 개념, 의미 등을 나타내기 위해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는 대신 상징적 도형이나 정해진 기호를 조합해 시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1920년대 아이소타이프를 제창한 오스트리아 학자 오토 노이라트는 간략화된 도형을 국제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말로 만들어 (특히 교육용으로) 사용하려 했다. 그리하여 2000개 이상의 기호를 수록한 시각 사전과 기호 문법을 만들었고, 이는 1930년대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 책 『트랜스포머』는 아이소타이프 도표를 만드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아이소타이프란, 이를테면 단순히 우리 눈에 익숙한 픽토그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소타이프는 우선 통계 그래픽의 역사에 그 뿌리를 둔다. 그러므로 아이소타이프에서는 하나의 기호가 일정 수량을 대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아이소타이프는 그림, 다이어그램, 지도 등 각종 시각적 수단을 통해 정보를 소통해온 인류의 전통에 기대고 있다. 따라서 아이소타이프 도표의 기호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읽혀야 한다.
『트랜스포머』는 아이소타이프의 핵심 원리를 ‘변형’이라 일컫는다. 즉, 정보를 시각적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적 변형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을 ‘변형가(독일어 Transformator)’라 칭한다. 이렇게 이 책은 아이소타이프라는 그림 언어를 통해 (오늘날 디자인과 디자이너라 불리는) ‘변형’과 ‘변형가’의 기본 개념을 돌아본다.
아이소타이프의 창시자, 오토&마리 노이라트
아이소타이프 창시자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 1882~945)는 가히 백과사전적이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태생인 그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그리고 정치경제학자로 도시의 다양한 삶의 양태에 민감했던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장으로 일하며 빛을 발했고, 특히 아이소타이프를 위시한 시각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저자 마리 노이라트(Marie Neurath, 1898~1986)는 오토 노이라트의 부인이다. 마리 노이라트는 오토 노이라트와 함께 아이소타이프 연구에 매진했으며, 남편의 사후 이 시각 연구를 이어받아 아이소타이프가 오늘날까지도 각종 통계 도표 및 교과서 등에서 유용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의 만남은 그 시작부터 오토 노이라트의 시각언어와 함께했다. 1924년 10월 초 어느 날, 오스트리아 빈의 주택 박물관을 함께 구경하던 중 오토 노이라트가 만든 각국 인구밀도 도표에 압도된 마리 노이라트는 바로 그 도표 앞에서 오토와 함께 그러한 시각적 제시 작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곧이어 오토 노이라트는 빈 사회 경제 박물관 설립에 착수했고, 박물관은 1925년 1월에 창립되었다. 1925년 2월 괴팅겐 대학을 졸업한 마리 노이라트는 1925년 3월 1일부터 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마리 노이라트는 오토 노이라트와 함께했던 ‘변형’ 작업의 이모저모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빈 시절 우리의 작업실은 보통 감독 한 명과 변형가 두 명, 미술가 두 명, 공정에 익숙한 기술자 몇 명으로 구성되었다. 노이라트가 조언이나 연구를 위해 불러들인 전문가 중에는 통계학, 역사학, 의학, 지도학, 지리학, 공학, 경영학, 미술사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팀이 일한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노이라트가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면 그는 전문가와 상의해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적절한 자료를 확보한다. 변형가는 그 토론에 참석해서 주제를 익힌다. 그다음 변형가는 자료를 넘겨받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제시할 방법을 개발한다.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두고 노이라트와 (때로는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모두가 동의하는 최종 스케치를 만든다. 결정된 스케치를 먹지 공책에 옮겨 그리고, 채색한 첫 장을 미술가에게 넘겨주면 그는 노이라트와 변형가에게 확인을 받아가며 디자인과 최종 작품을 완성한다.” (본문 78쪽)
이어 이들은 오스트리아 내전을 피해 빈에서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어 영국 옥스퍼드로 옮겨 아이소타이프 연구소를 설립해 시각언어 변형 작업을 이어가게 되고, 자연히 아이소타이프를 세계 각지에 알리게 된다.
변형가, 오늘날 디자이너의 원형
“글과 숫자로 주어진 자료에서 핵심 사실을 추출하고 도형으로 변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료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문가에게 모두 얻어내고, 공공에 전파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결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지, 어떻게 일반 상식이나 다른 도표와 연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변형가’의 책임이다. 그러한 뜻에서 변형가는 공공의 대리인에 해당한다. 그는 규칙을 잘 기억하고 지켜야 하며, 필요한 경우 새로운 변칙을 가하되 혼란만 낳을 불필요한 변칙은 삼가야 한다. 그는 제목, 기호의 배열과 유형, 수, 색, 캡션 등 여러 세부 사항이 확정된 도표 스케치를 만들어야 한다. 미술가가 하는 작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 마리 노이라트
『트랜스포머』는 ‘변형가’ 마리 노이라트가 말년에 쓴 글을 처음 소개하는 아이소타이프 관련서다. 이 책을 만든 이는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인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다. 런던의 출판사 하이픈 프레스(Hyphen Press) 설립자로서 그간 다양한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펴내온 로빈 킨로스는 자신이 다녔던 영국 레딩 대학교에서 마리 노이라트를 만났다. 마침 마리 노이라트는 남편 사후 레딩 대학교를 자료를 보존할 안식처로 정한 후, 아이소타이프에 관한 전시를 연 참이었다. 곧 로빈 킨로스는 오토 노이라트가 시각적 소통에 끼친 공헌에 관해 학위논문을 썼고, 수년 후 마리 노이라트에게 아이소타이프 입문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 생전에 책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대신 그간 마리 노이라트와 상의해가며 고쳐 써두었던 글들을 이렇게 펴내게 됐다.
로빈 킨로스에 따르면, 아이소타이프는 ‘말할 필요가 있는 사안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었다. 아무 사실이나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제시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다뤘으며, 보는 이는 거기에서 사실뿐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관계도 배울 수 있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아이소타이프는 단지 숫자를 통계도로 바꾸는 기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상의 아이소타이프 도표는, 일부 암묵적 원칙을 바탕으로 삼되 매번 새로 개발해야 하는 지성적 시각언어였다.
이러한 지점에서, 아이소타이프는 오늘날 우리가 ‘디자인’이라 부르는 행위와 일견 같아 보인다. 정보, 자료, 개념, 의미를 분석, 선택, 정렬하고 결국 시각화하는 활동. 그러나 아이소타이프 주창자 오토와 마리 노이라트는 이러한 활동을 하는 이들을 굳이 ‘변형가’라 명명했다. 당시 노이라트 부부는 ‘디자이너’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았다. 이들 생각에 디자이너란 철마다 유행에 따라 물건의 형태를 바꾸는 장식가를 뜻했기 때문이었다. (‘디자이너’가 내용에 물질적 형태를 부여하고 이를 계획하는 전문가를 뜻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로빈 킨로스는 이 ‘변형가’ 개념을 직접적으로 자세히 정의하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아이소타이프 사례와 관련 논의들이 제 스스로 변형가 개념을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또한 아이소타이프를 확장하고자, 또는 더 넓은 디자인 사유에 아이소타이프를 포함하고자, 인접 분야에서 이뤄진 작업들도 끌어들였다.
아이소타이프의 무한한 확장성
아이소타이프 주창자 마리 노이라트의 글들을 펴내게 된 로빈 킨로스는 또한 여기에 아이소타이프에 대한 자신의 글을 더하고, 이어 그 글에 마리 노이라트가 생전에 남긴 의견을 덧붙였다. 그리하여 글들은 마치 대화를 나누듯 완성되었다. 이어 로빈 킨로스는 책 말미에서 아이소타이프의 시각적 전통에 대해 고찰하고, 그 규칙과 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아가 런던 지하철 다이어그램, 얀 치홀트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해설, 막스 빌의 울름 디자인 대학 건물 드로잉 등과 아이소타이프를 연결시킨다. 저자는 이렇게 이미 한 세기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해온 아이소타이프가 앞으로도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린다.
이렇듯 『트랜스포머』는 우선 오토와 마리 노이라트가 벌인 시각 작업의 핵심으로 들어간 후, 이에서 빠져나와 타이포그래피와 건축 등 인근 영역으로 확장해 나아간다. 그 가운데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아이소타이프의 주요 성과를 짚어내고, 더불어 자료를 시각적으로 배열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아이소타이프의 가치를 알린다.
추천사
“정보를 시각적으로 변형하는 작업이나 디자인 사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책이 필요하다. 책상 위에 늘 두고,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클라이언트와 나눠 읽을 책이다.” —에릭 슈피커만
“아이소타이프가 표준 픽토그램을 활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소타이프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기호의 디자인이 아니라 도형 문법을 개발하는 데 있다.” —제시 오닐
발췌
나는 학생들에게 기꺼이 박물관 견학을 시켜주곤 했다. 내가 질문을 던지면 어린이들이 도표에서 답을 찾았다. 격실은 그러한 단체 관객을 수용하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전시된 도표들은 쉽게 비교해보며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고, 그러면서 정보도 풍부해졌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어떤 도표가 이해하기 어려운지 알아낼 수 있었고, 이는 우리 제작자에게도 좋은 공부였다. 때로는 스스로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를 관찰하기도 했다. 어떤 도표를 조용히 관람하던 학생이 기억난다. 그의 손을 잡은 여동생은 지루해하지 않고 기호들을 보며 수를 세고 있었다. 이는 우리의 도표가 누구에게나 의미를 전한다는 사실,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 여러 수준의 이해를 돕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였다. 노이라트는 그 점을 자주 강조했다. 그가 박물관의 또 다른 교육적 가치로 꼽은 것은 그것이 중립적이라는 점, 즉 객관적 사실을 제공하되 가치판단과 평가는 관람객에게 맡긴다는 점이었다. (25쪽)
쉬운 영어 책 두 권을 만들면서 우리의 통계 도법에도 새 이름이 필요해졌는데, 그때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쉬운(BASIC: British American Scientific International Commercial)’이라는 조어법이었다. 어느 날 오후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나는 ‘국제 도형 교육법(International System Of Teaching in Pictures)’, 즉 ‘아이소팁(Isotip)’을 떠올렸지만, 첫음절 외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에서 ‘아이소타이프(Isotype)’까지는 한 걸음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잘 풀어 쓸 길을 찾지 못하고 썩 만족스럽지 않은 ‘국제 활자 도형 교육법(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에 머물렀다. 그날 저녁 암스테르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노이라트는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고, 다음 날 아른츠에게 그것을 표시할 기호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름과 기호는 모두 『국제 도형 언어』에 처음 선보였다. (47쪽)
우리는 쉬운 영어를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것을 읽기가 얼마나 쉬운지 배웠다. 그러나 그 점은 우리의 도형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모두 국제적 소통을 위해 애쓴다는 점에서 한가족이라고 느꼈다.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이 길 찾는 일을 돕는 것이나, 지식을 공유하는 기초를 다지는 일이나 그 목표는 같았다. 여기에서 노이라트는 도형 언어의 특징을 구술 언어와 연관해 설명했다. 그는 아이소타이프가 언어를 돕는 언어라고 묘사했다. 어떠한 도표에든 몇 마디 말은 필요하다. 한자처럼 기호로만 이루어진 언어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가 하려던 일이 아니었다. (49쪽)
아이소타이프 용어로, 마리는 ‘변형가’였다. 시각 표현을 만드는 사람이자, 전문 지식인이자, 최종 산물 제작자이자 — 어떤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 일반인과 매개하는 핵심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오토와 마리는 (영어로건 해당 독일어로건) ‘디자이너’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내용에 물질적 형태를 부여하고 이를 계획하는 전문가를 뜻하게 된 것은 겨우 최근 일이다. 레딩에서 우리가 변형가를 디자이너라는 뜻으로 쓰면, 마리는 의심을 내비치곤 했다. 그녀 생각에 디자이너란 철마다 유행에 따라 물건의 형태를 바꾸는 장식가를 뜻했다(불행히도 이 믿음에는 뚜렷한 근거가 있다). 반대로, 이름이 암시하듯 아이소타이프는 표준을 지향했다. 숱한 발명과 실험을 거쳐 만족스러운 기호나 배열을 마침내 얻었는데, 왜 굳이 그것을 바꾸려 하는가? (119쪽)
머리말
감사의 말
1 빈 통계 도법과 아이소타이프
2 변형가가 하는 일
3 아이소타이프가 남긴 교훈
4 마리 노이라트, 1898~1986
참고 자료
참고 문헌 서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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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저역자 소개
마리 노이라트(Marie Neurath, 1898–1986)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을 졸업한 후, 1925년부터 오토 노이라트의 빈 사회 경제 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34년 오스트리아 내전을 피해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주한 오토 노이라트와 마리 노이라트는, 1940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다시 영국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이듬해 결혼한 그들은 옥스퍼드에 아이소타이프 연구소를 설립했다. 1945년 오토 노이라트가 사망한 후에도 마리 노이라트는 아이소타이프 작업을 이어갔다. 1971년 실무에서 은퇴한 그는 오토 노이라트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하고 그의 글을 편찬, 번역하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
레딩 대학교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학부(1975)와 대학원(1979)을 졸업하고 편집자 겸 디자이너로 활동해왔다. 1980년 노먼 포터의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재출간 작업을 계기로 하이픈 프레스를 설립했다. 『블루프린트(Blueprint)』, 『아이(Eye)』, 『인포메이션 디자인 저널(Information Design Journal)』 등에 기고했으며, 1992년 『현대 타이포그래피(Modern typography)』를 써냈다. 2002년에는 그간 쓴 글을 엮어 『맞추지 않은 글(Unjustified texts)』로 펴냈다.
최슬기
중앙대학교와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최성민과 함께 ‘슬기와 민’이라는 디자인 듀오로 활동 중이다. 써낸 책으로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최성민 공저, 안그라픽스, 2008)이 있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정보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