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율? 그리고 의미? / 헝클어진 이야기』는 루이스 캐럴의 시집과 수학 우화를 엮은 책이다. 책의 1부를 이루는 시 파트에는 캐럴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스나크 사냥」이 수록되었다. 2부에 실린 수학 우화(10개의 수학 문제와 그 답안)는 당시 잡지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 교수였던 찰스 럿위지 도지슨(루이스 캐럴의 본명)의 수학자로서의 재능을 드러낸다.
시인 루이스 캐럴의 종합 선물 세트
2015년 출간 15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기념판을 출간하는 등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실비와 브루노』 등 동화로 유명해진 작가이지만, 생전에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던 시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루이스 캐럴의 시인으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세 번째 시집인 『운율? 그리고 의미?』(1883)를 번역한 것이다.
『운율? 그리고 의미?』는 캐럴이 가족 신문, 학내 문예지, 대중잡지에 기고한 시들과 신작 시를 모아 펴낸 첫 시집 『판타즈마고리아 그리고 다른 시들』 중 1부에 실린 익살스러운 시들을 일부 수정하고, 여기에 유명한 장편 이야기시 「스나크 사냥」과 네 편의 신작 시를 추가한 뒤 아서 B. 프로스트의 삽화를 새로 곁들여 펴낸 시집이었다(다만 「스나크 사냥」의 경우 헨리 홀리데이의 기존 삽화를 그대로 썼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오래전부터 루이스 캐럴의 팬으로서 관련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각종 정보를 소개하고 틈틈이 그의 시를 번역해왔던 옮긴이 유나영이 이 책에 대한 글에서 밝힌 대로, “루이스 캐럴이 직접 선정한 난센스 시의 정수를 그로테스크한 유머가 깃든 삽화와 더불어 종합 선물 세트로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캐럴은 주로 재미를 위해,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시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의 재능은 난센스 시와 재치 넘치는 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귀신들의 존재 이유와 그들의 고충을 설파한 장편 시 「판타즈마고리아」, 영국 빅토리아시대 중산층의 속물성을 꼬집는 동시에 초상 사진을 즐겨 찍었던 자기 자신까지 풍자한 듯한 「사진사 히아와타」 등이 인상적이다.
한편 “보다시피, 그 스나크는 부줌이었으니까”라는 희대의 문장을 남긴 시 「스나크 사냥」은 19세기 모험담의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일체의 논리와 질서를 뒤로하고 파국으로 향한다. 캐럴은 이 시의 의미를 밝힌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150년간 무수한 분석을 낳아왔듯이, 「스나크 사냥」 또한 다양한 알레고리로 해석되고 있다.
수학? 그리고 게임?
루이스 캐럴은 자신이 다녔던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 교수로 거의 평생 근무했다. 캐럴은 수학 계산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가며 애썼는데, 수학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자연히 파악할 수 있다. 그중 수학 우화 『헝클어진 이야기』(1885)는 수학과 논리 지식을 언어와 결합해 부조리하게 웃기는 상황을 창출해내는 루이스 캐럴의 재능을 비교적 손쉽게 만끽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헝클어진 이야기』는 루이스 캐럴이 1880년 4월부터 1885년 3월까지 월간지 『더 먼슬리 패킷』에 연재한 10편의 수학 퀴즈와 그 해답에 아서 B. 프로스트의 삽화를 곁들여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캐럴은 한두 개의 수학 문제 또는 난센스 퀴즈가 포함된 이야기를 잡지에 게재하고, 그다음 호에서 독자들이 다양한 가명으로 보내온 답안을 유머를 섞어 신랄하게 논평한 다음 등수를 매겨 발표했다. 이 책을 옮긴 이의 견해에 따르면 이 수학 문제들은 “중학생 정도면 풀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지만, 간혹 상당히 머리를 써야 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굳이 문제를 풀지 않고 유머와 말장난 가득한 이야기 부분만, 또는 오답을 제출한 독자들에 대한 캐럴의 비아냥만 골라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사실 이 헝클어진 이야기들과 그 매듭의 풀이는 평소 소녀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던 명문가와 익명 뒤에 숨은 독자가 주고받은 편지들이기도 하다. 남의 편지를 엿보는 즐거움은 아마도 남의 일기를 엿보는 즐거움 다음으로 흥미진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발췌
“말씀드리자면, 모든 집들은
그 집이 수용할 수 있는 귀신의
숫자에 따라 등급이 나눠집니다.
(세입자는 석탄 및 잡동사니와
합쳐서 그냥 무게로 환산됩니다.)
이곳은 ‘귀신 하나짜리’ 집이랍니다.
지난여름 선생이 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령 하나가 새로 온 사람을 환영하려고
귀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시도했었던 걸 알아차리셨는지 모르겠군요.
(중략)
빈집을 차지할 일 순위 권리는
당연히 유령에게 돌아갑니다.
다음으로 허깨비, 고블린, 엘프, 잡귀 순이죠.
이들 중에 없으면, 주변에 있는
개중 괜찮은 굴을 데려옵니다.
유령들은 이 집 수준이 좀 떨어지고
당신이 싸구려 와인만 갖다놓는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허깨비가 들어와야만 했고
그중 제가 일 순위로 뽑힌 겁니다.
알다시피 제가 거절을 잘 못 해서요.”
(26~7쪽)
“그때 그분이 말하길,” 유순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스나크가 스나크이면, 그땐 괜찮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잡아서 데려오너라 — 푸성귀를 먹이면 된다.
그것은 성냥불을 켜는 데도 요긴하지.
골무를 기울여 그것을 찾고,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찾아라.
포크와 희망으로 그것을 쫓아라.
철도 주식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미소와 비누로 그것을 홀려라.
(“바로 그거야”, 뻔뻔스러운 종잡이가
성급히 끼어들어 외쳤다.
“그게 바로 내가 항상 들었던
스나크 잡는 방법이야!”
하지만 오, 내 해밝은 조카야, 그날을 조심하여라,
스나크가 부줌이 되는 때를! 그 순간
너는 소리 없이 돌연히 꺼져버리고
우린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193쪽)
“매티 고모!” “왜 그러니, 얘야?” “이거 지금 바로 적어주시면 안 될까요? 안 그러면 저는 분명히 잊고 말 거예요!” “얘야, 마차가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이렇게 사방이 덜컹거리는데 어떻게 글씨를 쓸 수 있겠니?” “하지만 저는 정말로 잊어버릴 거예요!”
클라라가 간곡한 목소리로 애원하자 그녀의 고모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이 든 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상아로 된 메모첩을 꺼내, 방금 클라라가 과자점에서 지출한 액수를 기록할 준비를 했다. 그녀의 지출은 항상 고모의 지갑에서 빠져나갔지만, 이 가여운 소녀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조만간 자기가 쓴 돈을 단 1페니도 빠짐없이 미친 마테시스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이 든 부인은 ‘잡비’라는 제목이 붙은 장이 나올 때까지 메모첩을 계속 넘겼다.
“여기로군.”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여기에 우리가 어제 먹은 점심 내역이 정확히 기입되어 있군. 레모네이드 1잔(너도 나처럼 그냥 물을 마실 수는 없니?), 샌드위치 3개(겨자가 채 반도 안 들어가 있었지. 내가 그 젊은 여자 얼굴에 대고 그 말을 하니 고개를 홱 돌리더라니까. 뻔뻔한 것!), 비스킷 7개. 도합 1실링 2펜스. 그럼 오늘은?”
(315~6쪽)
총 45개의 답안이 들어왔고, 그중 44개가 어떤 식으로든 풀이 과정을 적었으므로 이름이 언급되고 잘한 점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한 점을 지적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13명은 근거가 없는 가정을 했기 때문에 12개 답안 중 10개가 정답을 맞혔음에도 등수에 들지 못했다. 나머지 28명 중에서 적어도 26명은 요행에 의존한 풀이를 보내왔으므로 1등을 주기엔 미흡했다.
이제부터 개별 답안에 대해, 내가 늘 하는 대로 최악의 답안들부터 논평하겠다.
‘개구리’는 딱히 풀이 과정을 적지 않고 그저 이렇게 썼다. 그는 주어진 방정식을 기술한 다음 “따라서 그 차(差)는, 샌드위치 1개 + 비스킷 3개 = 3실링”이라 쓰고 바로 지출액을 적었는데, 이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해 그 이상의 단서를 밝히지 않았다. ‘개구리’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못할 위험을 매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383~4쪽)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시
— 운율? 그리고 의미?
판타즈마고리아
메아리들
바다 장송곡
洋毯子騎士
사진사 히아와타
멜랑콜레타
밸런타인
세 목소리
주제와 변주
다섯의 게임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스나크 사냥 — 여덟 경련(經聯)의 사투
몸집과 눈물
캠든 타운의 아탈란타
오랜 구혼
네 개의 수수께끼
명성의 싸구려 트럼펫
수학 우화
— 헝클어진 이야기
매듭
1번 매듭. 보다 높이
2번 매듭. 괜찮은 방 있음
3번 매듭. 미친 마테시스
4번 매듭. 추측항법
5번 매듭. 공표와 가위표
6번 매듭. 찬란하신 여왕 폐하
7번 매듭. 잡비
8번 매듭. 합승 마차의 수수께끼
9번 매듭. 똬리 튼 뱀
10번 매듭. 첼시 번
부록
1~10번 매듭의 풀이
옮긴이의 글
루이스 캐럴 연보
저작자 소개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
본명은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으로, 루이스 캐럴은 필명이다. 그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수학자였고 사진작가였으며 작가였다. 1832년 1월 27일 도지슨은 영국 체셔 지방 데어스베리에서 시골 교구사제 집안의 자녀 열한 명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난다. 1851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진학한 그는 학위 취득 후 이곳의 수학 교수로 임명되어 평생을 보낸다. 또한 사진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던 시절 유명 인사들과 아이들을 주로 촬영한 사진가였는데, 특히 소녀들의 초상 사진을 즐겨 찍었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2), 『실비와 브루노』(1889)와 『실비와 브루노 완결편』(1893), 시집 『판타즈마고리아 그리고 다른 시들』(1869), 『스나크 사냥』(1876), 『운율? 그리고 의미?』(1883) 등 여러 편의 소설과 시를 남겼다.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속했던 칼리지 학장의 딸인 앨리스 리델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다듬어 출간한 것이다. 한편 그는 잡지에 연재했던 수학 퀴즈와 그 해답을 한 권의 책 『헝클어진 이야기』(1885)로 펴내기도 하고, 논리학 입문서 『논리 게임』(1887)과 『기호논리학』(1896)도 집필했다. 말을 조금 더듬었고 수줍음이 많았으며 각종 게임과 퍼즐에 능했고 오페라와 연극을 애호했고 소녀들을 즐겁게 해주는 기쁨을 누릴 줄 알고 이를 만끽하며 평생 독신으로 산 작가는 1898년 1월 14일, 『세 번의 일몰 그리고 다른 시들』 교정쇄와 『기호논리학』 2부를 마무리하던 중 기관지염에 걸려 길포드에서 숨을 거뒀다.
유나영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고 삼인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 리처드 플래너건의 『굴드의 물고기 책』, 토머스 드 퀸시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루이스 캐럴의 『운율? 그리고 의미? / 헝클어진 이야기』 등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lectrice.co.kr)’에서 오탈자와 오역 신고를 받고 있다.
박정일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리 철학, 수학 철학,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관심이 크다. 지은 책으로 『튜링 & 괴델: 추상적 사유의 위대한 힘』이, 옮긴 책으로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괴델』, 『수학자, 컴퓨터를 만들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