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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가스파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

GASPARD DE LA NUIT: FANTAISIES À LA MANIÈRE DE REMBRANDT ET DE CALLOT

  •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지음
  • ,
  • 조재룡 옮김
110 × 175밀리미터 / 368쪽 / 사철 하드커버 / 2023년 8월 31일 / 18,000원 / ISBN 979-11-89356-98-9 04800 / 978-89-94207-33-9(세트)
  • 김뉘연
  • ,
  • 신선영 편집
  • ,
  • 김형진 디자인
  • 산문시

원래 가격: ₩18,000.현재 가격: ₩16,200.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조재룡 옮김)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0권으로 출간되었다. 최초의 산문시로 알려진 이 책은 도입부의 정형시, 단편소설 「밤의 가스파르」, 밤의 가스파르의 「서(序)」, 「빅토르 위고 씨에게」에 이어 「밤의 가스파르의 환상곡」이라는 여섯 개의 ‘서(書)’로 구성되며, 「샤를 노디에 씨에게」라는 시로 마무리된다. 한국어판에는 베르트랑의 초고에서 발췌한 작품과 여러 문헌, 본문과 연관된 도판, 번역가의 상세한 주해를 부록으로 더했다.

최초의 산문시

산문시 『밤의 가스파르』는 전통시의 형식과 규칙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로서 산문을 시에 끌어들인 선구자적 작품이었다. 프랑스 상징시의 선구자 샤를 보들레르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작품 중 세 편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썼다.

『밤의 가스파르』의 배경은 프랑스 중부의 도시 디종이다.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이 어린 시절을 보낸 디종을 예찬하는 정형시로 문을 여는 이 책은 디종의 아르크뷔즈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사내 ‘밤의 가스파르’에게서 화자인 ‘나’가 건네받은 원고다. 밤새 예술을 논하면서 신과 사랑이 예술의 감정이라면 사탄은 예술의 사상이 될 수 있겠다고 말하는 밤의 가스파르 씨는 알고 보니 지옥의 악마임이 밝혀지고,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는 설정이다.

본격적인 본문으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서(書)’는 각각 ‘플랑드르파’ ‘옛 파리’ ‘밤과 그 매혹’ ‘연대기’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잡영집’이라는 제목 아래 정형시도 운문시도 아닌 당대의 새로운 산문시를 밤과 몽상의 환상 문학적인 그림자 아래 회화적으로 펼쳐 보인다.

상반되는 양면의 예술 너머

이 책의 부제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에는 두 명의 화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한 베르트랑의 관점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베르트랑은 예술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본다. 즉 예술에 ‘은둔하는 철학자’ 렘브란트의 이미지 같은 면이 있는 한편, ‘거리를 누비는 독일 용병’ 자크 칼로의 이미지 또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 책을 옮긴 번역가 조재룡은 「옮긴이의 글」을 통해 이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 속 산문시들이 어떻게 렘브란트의 빛을 다루는 기술을 차용했고 자크 칼로의 동판화 속 환상과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함을 반영했는지 면밀히 분석하면서 새로운 산문시의 탄생과 구현 방식을 세세히 안내한다.

또한 베르트랑은 네덜란드 플랑드르파의 회화 역시 적극적으로 빌려와 변주한다. 일상의 삶을 그리는 이들에게서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낯선 앵글로 포착하는 기법”을 취하되, 화가들의 “작품들을 시로 ‘번역’하는”것을 넘어 “수많은 ‘비(非)계층적’ 파편들”을 흩뿌려 둔다(옮긴이의 글, 329~331쪽). 그러면서 베르트랑의 시들은 “소진되지 않는, 기이하고 회화적인 이미지들을 만화경의 반짝임처럼 발산”(332쪽)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제공”(333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독자는 “장면의 한복판”(334쪽)에 서서 환상의 세계 안팎을 두루 조망하게 된다.

제목과 부제가 드러내듯 ‘밤’과 ‘환상곡’이라는 주제어 아래 꿈과 환상의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몽환적으로 펼쳐 보이는 시들은 그럼에도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베르트랑이 과거의 대중적인 설화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즉 “대중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던 일상적인 ‘환상 이야기’”(338쪽)로서 “무엇보다도 인간들 삶의 세계”(342쪽)에 관심을 두고 써내려간 시편들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어 더욱 기이하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환상곡들을 “대중 시”(355쪽)로 펼쳐 나간다.


발췌

우리는 말입니다, 선생님, 우리는 고작해야 창조주를 모방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우리의 덧없는 작품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제아무리 의기양양하고, 제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고작해야 보잘것없는 위조물에, 신이 만든 불멸의 작품 중 가장 하찮은 작품의 꺼져 버린 반짝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독창성이란 숭고하고 벼락이 내리치는 시나이산의 둥지에서만 제 알의 껍질을 깰 뿐인 새끼 독수리와 같은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오랫동안 절대적인 예술을 찾아다녔습니다! 아아! 착란이었습니다! 아아! 광기였습니다! 불행이라는 무쇠 화관으로 주름진 제 이마를 한번 보십시오! (36~37쪽)

예술은 언제나 상반되는 양면을 지니는데, 예를 들어 한쪽 면은 파울 렘브란트의 모습을, 그리고 반대쪽 면은 자크 칼로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나타낼 한 닢의 메달과도 같다. — 렘브란트는 자신의 누추한 집에 달팽이처럼 은둔하고, 명상과 기도에 제 생각을 빼앗겨 버리고, 집중하기 위해 두 눈을 감고, 아름다움, 학문, 지혜와 사랑의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신비로운 상징들을 꿰뚫으려고 온 힘을 다하는 백발 수염의 철학자이다. — 반대로 칼로는 거만하게 마을 광장을 싸돌아다니고, 주점에서 소란을 피우고, 집시 여인에게 추근거리고, 자신의 뾰족한 검과 나팔 총을 걸고서만 맹세를 하고, 자신의 콧수염에 광을 내는 일 외에 다른 걱정거리라곤 갖고 있지 않은, 허풍쟁이에 추저분한 독일 용병이다. (41쪽)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42쪽)

그리고 거기 푸른 물이 일렁이는 운하, 그리고 거기 금빛 유리창이 불타오르는 교회, 그리고 거기 햇볕에 빨래가 마르고 있는 스토엘, 그리고 거기 홉으로 푸르른 지붕들. (51쪽)

그는 본다, 회색 한 점으로, 꼼짝하지 않는 숫매의 깊이 팬 날개에 얼룩을 입히는 석조 타라스크들이, 회랑, 창, 삼각홍예, 작은 종루, 소탑, 지붕과 골조가 어지러이 뒤섞인 어둠 속에서 지붕 석판에 흐르는 물을 토해 내고 있는 모습을. (53쪽)

나는 멀리서 불어오는 향로의 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신께서는 풍요로운 당신의 수확물 뒤에서 내가 빈자(貧者)의 이삭을 줍는 걸 허락해 주셨다. (86쪽)

그러나 저것은 스카르보, 내 목을 깨물고 있는, 그리고, 피 흐르는 내 상처를 지져 버리려고, 화덕에서 새빨갛게 달군 자신의 쇠 손가락을 거기에 찔러 넣고 있는! (102쪽)

인적 끊긴 도시를, 밤마다, 떠도는 미치광이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한쪽 눈은 달을 보고, 다른 눈은 — 터진 채로! (105쪽)

— “들어 봐요! — 들어 봐요! — 저예요, 저 달의 구슬픈 빛으로 반짝이는 그대의 마름모꼴 창문을 물방울로 살짝 스쳐 소리를 낸 것은 바로 저 옹딘이에요; 물결무늬 드레스를 입은, 성의 주인이 여기 있어요, 발코니에 서서 별이 총총한 아름다운 밤과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요. (117쪽)

중세 음유시인의 연주, 중세 요정의 마법 주문, 그리고 중세 용자의 영광과 함께, 기사도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는데도, 어찌하여 벌레에게 파먹힌 먼지투성이 중세 이야기를 되살려 내려 하는 겁니까? (148쪽)

그대, 젊은 은둔자여, 홀로 그대의 독방에 틀어박혀, 그대 기도서 저 하얀 종이 위로 악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일로, 그리고 죽은 자의 두개골 같은 그대 두 뺨을 불경한 황금색 분으로 치장하는 일로 그대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대의 위안인가? (157쪽)

내게 초가 한 채 있다면, 여름에는, 나무들 잎새를 그늘로 가지리라, 그리고 가을에는, 창가 저 네모난 정원에, 진줏빛 빗방울 머금은 이끼를 조금, 그리고 아몬드 향내 풍기는 꽃무를 조금, 가지리라. (179쪽)

10월, 겨울의 전령이, 우리들 거처의 문을 두드린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뿌연 유리창을 흥건하게 적신다, 그리고 바람은 플라타너스의 낙엽들을 고적한 돌계단에 흩뿌린다. (183쪽)

오, 나의 젊은 시절이여, 너의 기쁨은 시간의 입맞춤으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너의 고통은 제 가슴에 파묻어 질식시킨 시간에 살아남았구나. (187쪽)

나의 책이 여기 있습니다, 주석자들이 저마다 주해로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기 전에, 내가 만든 그대로, 그리고 있는 그대로 읽어야만 하는 책입니다. (195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밤의 가스파르
— 밤의 가스파르
— 서(序)
— 빅토르 위고 씨에게

밤의 가스파르의 환상곡

제1서 플랑드르파(派)
I. 하를럼
II. 석공
III. 라자르 대장
IV. 뾰족한 턱수염
V. 튤립 장수
VI. 다섯 손가락
VII. 비올라다감바
VIII. 연금술사
IX. 마연(魔宴)을 향한 출발

제2서 옛 파리
I. 두 유대인
II. 밤의 걸인들
III. 각등(角燈)
IV. 넬 탑
V. 세련된 남자
VI. 저녁 예배
VII. 세레나데
VIII. 장 경(卿)
IX. 심야 미사
X. 애서가

제3서 밤과 그 매혹
I. 고딕식 방
II. 스카르보
III. 미치광이
IV. 난쟁이
V. 달빛
VI. 종 아래 원무(圓舞)
VII. 꿈
VIII. 나의 증조부
IX. 옹딘
X. 살라만드라
XI. 마연(魔宴)의 시간

제4서 연대기
I. 오지에 경(卿)
II. 루브르궁의 쪽문
III. 플랑드르인
IV. 수렵
V. 독일 기병
VI. 대부대
VII. 나환자
VIII. 어느 애서가에게

제5서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I. 독방
II. 노새꾼들
III. 아로카 후작
IV. 엔리케스
V. 경보(警報)
VI. 교부 푸냐치오
VII. 가면의 노래

제6서 잡영집(雜詠輯)
I. 나의 초가(草家)
II. 장 데 티유
III. 10월
IV. 셰브르모르트의 바위 위에서
V. 다시 또 어느 봄
VI. 제2의 인간
샤를 노디에 씨에게

부록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의 초고에서 발췌한 작품
I. 고결한 알칼데
II. 천사와 요정
III. 비
IV. 두 천사
V. 물 위의 저녁
VI. 몽바종 부인
VII. 장 드비토의 마법 선율
VIII. 전투가 끝난 밤
IX. 볼가스트 요새
X. 죽은 말
XI. 교수대
XII. 스카르보
XIII. 조각가 다비드 씨에게

『밤의 가스파르』에 관한 문헌
— 조판자에게 보내는 당부 사항
— 『밤의 가스파르』 그림의 배치에 관한 노트
— 『밤의 가스파르』를 위한 빅토르 파비의 안내문
— 『밤의 가스파르』의 출간에 대한 베르트랑의 알림

도판과 주해
옮긴이의 글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연보
저역자 소개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Aloysius Bertrand, 1807~41)
산문시의 효시인 『밤의 가스파르』를 쓴 프랑스의 시인이다. 본명은 루이자크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Jacques-Napoléon Bertrand)으로, 루이 베르트랑(Louis Bertrand)이라고 불렸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루이 베르트랑은 1815년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은퇴한 후 가족과 함께 프랑스 디종에 안착한다. 1826년 고등학교 수사학 반 2학년으로서 디종 연구회에 입회해 여러 산문과 운문, 그리고 산문시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루이 베르트랑은 여러 잡지의 편집장을 일시적으로 역임하면서 작품 상당수를 발표하고 디종을 떠나 파리에 정착해 빅토르 위고나 생트뵈브 등 유수의 작가 및 비평가들과 교류하지만, 내내 질병과 궁핍에 시달린다. 와중에 급진적인 사상 등으로 잡지사와 불화하기도 하고, 완성된 작품 『밤의 가스파르』를 책으로 출간하려 애쓰지만 좀처럼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가 첫 수고본을 보낸 출판사는 파산하고, 또 다른 출판인은 『밤의 가스파르』의 출간을 수락했다가 거절한다. 주변에서 출간을 도와주려고도 하지만 결국 그의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한다. 1841년 4월 루이 베르트랑이 숨을 거두고, 그해 10월 『밤의 가스파르』의 출간을 알리는 안내문이 제작된다. 그 1년 후인 1842년 11월에 『밤의 가스파르』가 출간되었다.

조재룡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시학과 번역학, 프랑스 문학과 한국문학에 관한 논문과 평론을 집필해 왔다. 시와사상문학상과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시학, 번역, 주체』 『번역의 유령들』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번역하는 문장들』 『시집』 등이, 역서로 앙리 메쇼닉의 『시학을 위하여 1』, 제라르 데송의 『시학 입문』, 장 주네의 『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 레몽 크노의 『떡갈나무와 개』 『문체 연습』,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어렴풋한 부티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