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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한 가족

UNE FAMILLE À BRUXELLES

  • 샹탈 아케르만 지음
  • ,
  • 이혜인 옮김
110 × 175밀리미터 / 168쪽 / 사철 하드커버 / 2024년 6월 25일 / 16,000원 / ISBN 979-11-93480-15-1 04800 / 978-89-94207-33-9(세트)
  • 김뉘연 편집
  • ,
  • 김형진 디자인
  • 소설
  • 영화
  • 가족
  • 브뤼셀

원래 가격: ₩16,000.현재 가격: ₩14,400.

샹탈 아케르만의 『브뤼셀의 한 가족』(이혜인 옮김)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29권으로 출간되었다.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영화감독 샹탈 아케르만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글은 그의 첫 소설이기도 하다. 한국어판에는 샹탈 아케르만의 영화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긴 인터뷰를 부록으로 실었다.

말과 글

『브뤼셀의 한 가족』은 제목 그대로 브뤼셀의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듯 바라본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브뤼셀의 거의 텅 빈 넓은 아파트를 바라본다. 통상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 한 명만 있는 그곳을.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여자.”(11쪽)

‘나’는 ‘여자’를 계속 바라본다. 내가 바라보는 여자는 텔레비전 앞 소파에 누워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모습이다. 마침 오늘은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고, 문장은 자연히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여자는 남편을 잃었고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으며 딸이 둘 있다. 그리고 가깝고 먼 친척들과 오가며 지낸다. 이어지는 문장들은 이 가족을 둘러싼 이런저런 서술을 조금씩 흘려 가는데, 누군가가 기억나는 대로 또는 말이 나오는 대로 쓴 듯한, 구어체에 가깝게 진행되는 글은 떠오르는 대로 말하다 보면 종종 횡설수설하게 되듯이 뒤섞이고 길게 늘어진다. 그러다 어느새 화자가 바뀌어 있기도 하다. ‘나’와 ‘그녀’는 때로는 딸이 되고 때로는 어머니가 되는데, 이러한 화자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곱씹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말이 글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문체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한 남자의 죽음이, 홀로코스트의 여파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의 면면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소설과 영화

브뤼셀의 한 가족에 대해 제법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의 글쓰기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듯한 인상”(「옮긴이의 글」 중에서)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알려진 만큼 이미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는 서사를 조각내듯 펼쳐지는 문장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말과 글이 혼재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글은 한때 실제로 존재했다고 알려진 가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분명히 소설의 양식을 취한다. 내밀하면서도 보편적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 그 양극단을 오가며 “종종 꾸민 듯 들리지만 가끔은 진짜 같기도”(11쪽) 한 진술이 쓰여 가며, “내 생각에는 내 딸이 이 이야기를 모두 지어낸 것 같았다”(76쪽)는 말은 “내 딸이 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 모두가 진실은 아니지만 개중 진실인 것도 있고 그건 보통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보다는 슬픈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 애는 우리가 함께 모여 있고 기억이 날 때면 웃긴 이야기도 하는데 그 이야기들도 항상 진실은 아니지만 가끔 진실이기도 하다.”(76쪽)는 열린 문장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픽션적인 속성을 이용해 필요할 때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듯 보이는 글은 이를테면 가까이 들이댔던 카메라의 렌즈를 다시 뒤로 빼듯이 움직이고, 이렇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대상과 거리를 두는 시선은 “도입부에서만 영화 「잔 딜만」을 연상시키는 게 아니라 (…) 서술 방식에서도 표면적인 묘사에 머물면서 인물과의 거리를 없애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아케르만의 영화와 닮았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브뤼셀의 한 가족』은 말, 글, 소설, 영화 등 이야기를 담는 여러 매체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발췌

그리고 나는 다시 브뤼셀의 거의 텅 빈 넓은 아파트를 바라본다. 통상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 한 명만 있는 그곳을. 얼마 전에 남편을 잃은 여자.
이상한 건 그녀가 가끔 외출을 하고, 길을 걷고, 트램을 기다리는데도 이 여자가 밖에 있는 걸 내가 못 본다는 거다.
내가 그녀를 볼 때면 그녀는 주로 통화를 하면서 텔레비전 앞 소파에 누워 있는데, 때로는 그 앞에 신문이 놓여 있기도 하다. 전화 통화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크고 쾌활한데, 그 쾌활함은 종종 꾸민 듯 들리지만 가끔은 진짜 같기도 하다. (11쪽)

멀리서 사는 그녀의 사촌에게 연락하는 건 메닐몽탕에 사는 딸뿐이다. 딸은 여행 중에 그곳에 가기도 하는데, 돌아와서 소식을 전해 주곤 한다. 그녀의 사촌도 먼 곳에 사는 가까운 가족에 속한다. 메닐몽탕에 사는 딸 덕분에 그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그렇게 모종의 연락을 유지하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녀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데 능한데, 적어도 그러려고 애쓰고, 애쓰는 건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항상 아주 피곤하다. 만약 그녀가 생각해야 할 모든 것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에 너무 전념하는 바람에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건 물론 통화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13~14쪽)

이 모든 걸 떠올릴 때면 이건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다. (19쪽)

메닐몽탕에 사는 딸은 아니지만 나도 그 애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똑같이 하고 싶은데 그냥 머릿속으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로 내뱉고 싶지만 만약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테니까 하지 않는 편이 낫고 특히 메닐몽탕에 사는 내 딸이 있을 때는 그러는 편이 낫다 아니면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할지 알게 될 거고 그 애도 그걸 알아차릴 텐데 어쩌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 애는 이미 알고 있을 수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그 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는 알지 못하고, 나도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26쪽)

그이는 밤에 잠을 자긴 했지만 이른 새벽에 네 시면 눈을 떴고, 나는 그이가 깬 걸 곧 알아차리고는 일어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그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봤고 그이는 아무 말 없었고 내가 무슨 일이 있네라고 말하면 그이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애썼고 비록 그이의 말이 점점 더 어눌해지긴 했지만 나는 그이가 나 곧 죽어와 비슷한 말을 했다고 알아차렸는데 그이는 이 말을 프랑스어로 하지 않았고 우리말로 했는데 이 말에 내 가슴이 저며 왔고 나는 그이에게 그런 말 하지 마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라고 했다, 나는 또 아니야라고도 했는데 그이는 나를 믿지 않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 나는 진통제를 찾으러 갔고 메닐몽탕에 사는 딸이 일러 준 대로 효과를 빨리 보기 위해서 그의 혀 아래에 진통제를 뒀는데 그러면 그이는 가끔 다시 잠이 들었고 안 그럴 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눈물을 덜 흘렸고 내게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 후 나는 잠이 깼고 아침이면 내 안색은 다시 안 좋았다. (39–40쪽)

그이의 다른 딸은 얼굴이 둥글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이랑 손이 그이를 닮았고 뭐 그게 가까운 친척들이 하는 말이긴 했는데 그들은 어디서든 항상 닮은 점을 찾으려 했고 심지어 개와 견주 사이에서도 닮은 점을 찾으려 들었다 그이는 어쨌거나 견주와 개에 관한 거라면, 견주가 개를 닮게 되는 건지 그 반대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닮긴 닮았다는 걸 알았고 메닐몽탕에 사는 딸이 자기 개를 닮게 될지 아니면 그 반대로 개가 그 애를 닮게 될지 상상해 보곤 했다. (43쪽)

얼마 안 있어 내 딸은 다시 일하러 가 봐야 했다. 그 애가 다시 떠났을 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애의 파란 눈이 거의 하얘진 걸 봤는데 지금은 일하러 갈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애는 밤에도 부엌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고 나는 자면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는데 내 큰딸은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걸 멈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끔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그 애의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가까이 있는 게 보였고 그 애의 파란 눈이 하얘져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그 애 곁에 다가갔지만, 그 애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내가 마침내 그 애의 어깨에 손을 얹자, 고개를 들고 오늘 밤은 정말 고요하네라고 했다. 그래 고요하네.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지가 않아서 그 애 맞은편 식탁에 앉았고 딸이 일하는 걸 쳐다봤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 애는 낮은 목소리로 거의 아침인데 같이 아침 먹을까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부엌으로 가서 둘이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부엌 창문으로 정원을 내려봤다. 정원은 꽁꽁 얼어 있었고 우리 둘이서만 아침을 먹은 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나는 버터 바른 빵 한 조각을 다 먹었고 별 탈 없이 소화했는데 그때 그 애는 내게 엄마 말이 맞았어라고 했다 아빠가 잘생겨 보였어 입도 안 비뚤어져 있고 얼굴도 평온해 보이고 그런 뒤 또 말하길 이제 뭘 해야 하지.
이건 질문이 아니었고 답할 건 없었다. (70–71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브뤼셀의 한 가족

부록
파자마 인터뷰

옮긴이의 글
샹탈 아케르만 연보
저역자 소개

샹탈 아케르만(Chantal Akerman, 1950–2015)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영화감독, 작가. 아케르만의 부모는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에 벨기에로 이민 온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어머니 나탈리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과거에 관해 함구했지만, 그의 침묵은 아케르만의 삶과 작품 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케르만은 평생 파리, 브뤼셀, 뉴욕 세 도시를 오가며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살았다. 노마드적이면서 순환하는 양상을 띠는 그의 삶의 궤적은 다채로우면서 반복적인 모티브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창작 활동과 맞닿아 있다. 1968년 단편영화 「내 도시를 날려 버려」로 데뷔한 이후 201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아케르만은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을 넘나들며 4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나 너 그 그녀」, 「잔 딜만, 코메르스가 23번지, 1080 브뤼셀」, 「집에서 온 소식」, 「안나의 랑데부」, 「동쪽에서」, 「갇힌 여인」, 「노 홈 무비」 등이 있고, 생전에 발간된 문학작품으로는 희곡 『밤의 로비』와 자전적 소설 『브뤼셀의 한 가족』, 『어머니가 웃는다』가 있다.

이혜인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파리3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파리8대학에서 아니 에르노, 엘렌 식수, 샹탈 아케르만의 애도하는 글쓰기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다.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을 한국어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