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 한국 문학 ‘입장들’의 네 번째 책, 배수아의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낭송극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중편소설이다. 3부로 구성된 소설 속에서 여러 인물들이 한 명의 인물로, 여러 시간대가 하나의 시간으로 향한다.
목소리의 춤
“지금 나는 낯설고 놀라운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쓸 수밖에 없는 그 일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유일한 일, 눈부신 일, 압도하는 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비범한 일, 매혹하는 일,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거나 혹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때가 되면, 불현듯 기나긴 망각을 깨고 터져 나오게 될 일, 의미 있는 일, 혹은 아무런 의미를 찾아낼 수 없는 채로, 모든 의미를 몰아내 버리는 일, 의미와 모순되는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일, 오직 예감으로 이루어진 일. 그 일이 지금의 나 자신과 어떤 맥락을 형성하는지 절대 알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의 존재가 그 일이 있기 위한 어떤 맥락이었음을, 지금 현재 분명히 직관하는 일. 그 일은 잃어버린 시간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갖는 것은 삶의 가장 놀라우며 신비한 사건에 속한다.” (본문 83쪽)
잃어버린 시간. 소설은 기억을 잃은 여자와 남자가 머무는 여관방에서 시작된다. 오후 네 시. 탁자에는 1월 23일 자 신문이, 96세로 죽은 어느 영화감독의 부고 기사가 놓여 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려 무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고 알려온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결혼식 배가 곧 출발하니 바다로 와야 한다고 알려온다. 이들은 무녀의 집을 방문한다. 여자의 이름은 아마도 우루,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 중이고, 여자와 남자는 먼 길을 떠난 결혼식 하객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바다로 간다. 그리고 남자가 사라진다.
다시 여자. 여자는 방에서 즉흥적으로 걷다가, 춤을 추다가, 글을 쓰다가, 라디오를 켠다. 동물원에서 한 남자가 코요테 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됐는데 남자와 코요테의 이름이 같았다는 뉴스와 표류하는 몽상가들의 배 이야기. 그러다 오후 네 시가 되자, 라디오 전파가 교란되다 비명과도 같은 한 구절이 들려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 여자는 몸을 일으켜 요리를 하고 이미 와 있는 손님과 음식을 나눈 다음,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대해, 소녀들 네 명의 즉흥 연극에 대해. 그리고 즉흥 연극을 둘러싼 이야기와 우루라고 알려진 여자의 이야기가 섞여 들기 시작한다.
작가가 낭송하기 위해 써내려간 이 소설에는 도처에 목소리들이 산재해 있다. 산재한 목소리들은 우회적으로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중첩되며 하나가 되어 간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춤과 같이 순간순간 드러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과정. ‘목소리-소설’로 읽혔던 글은 이제 ‘춤-소설’로 읽히기 시작한다. 인물들은 물론 실제로 목소리를 주고받고 구체적인 몸짓을 취하기도 한다. 목소리에서 목소리로, 몸짓에서 몸짓으로, 목소리에서 몸짓으로, 몸짓에서 목소리로. 현실은 연극이 되고, 연극은 현실이 되어 간다. 그렇게 소설은 다층적으로 뒤섞이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존재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의미일까.”(본문 45쪽)
하나의 시간
우리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말하며 시작되는 소설 속에서 흐트러진 말들은 하나의 시간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 단 하루의 기억이 일생을 사로잡는 모습을, 맞닿아 있는 하루와 일생의 관계를 조금씩 드러낸다. “내가 가진 일생의 기억은, 자신을 유일하고도 온전한 전체로 주장하는 단 하루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의 기억이, 살을 찢듯이 강렬하게 망각 속에서 분출했다. 마치 내가 일생 동안 그 하루를 살아왔던 것처럼. 내 일생이 오직 그날 하루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태어난 이후 매일매일, 오직 그 하루를 반복해서 조금씩 다르게 살아왔던 것처럼.” (본문 59쪽) 소설 속 여자는 “오래전에 있었던 놀라운 일들, 젊은 날의 자신을 모종의 충격에 빠뜨렸던 일들에 대해서 점점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며 자신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주저하면서, 그러나 곧 읽기에 몰두하여. (본문 82쪽)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듯한 여자의 모습은 역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이제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 간다.
발췌
마치 이 세계와 우리들 자신이 정확히 오후 네 시에 창조된 것 같았다. 이전의 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런 기억 없는 의식, 그리고 텅 빈 오후 네 시라는 형식, 그것이 있을 뿐. (…)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을 기억해 내려는 행위는 무용하며 오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감각을 따라가는 것만이 최선임을, 우리는 곧 알아차렸다. (10–11쪽)
“갑자기, 나는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나와 내 일행, 우리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한 기억이 모두 없어요. 그냥 막연하고 희미한 느낌이 있을 뿐, 그런데 그 느낌도 우리들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요. 알아요, 무척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오늘 오후 네 시에 일어났어요. 마치 그 시간에, 우리 둘이 함께 이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여기로 오려고 했을까요?” (25쪽)
그런데 나, 내가 어째서 폐허를 유발하느냐고? 일곱 살 때, 나는 집을 부수었다. 속옷을 태웠고, 책가방을 태웠고, 가족을 태웠고, 잠든 머리를 깊이 숙이고 걸어갔다. 나는 누구도 살게 하지 않는 집이 되고 싶었다. 내 집의 화덕은 차갑고 거울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으며, 정원에 있는 그 무엇도 꽃피우거나 열매 맺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입술은 닫히고 모든 눈꺼풀은 덮인다. 나는 창 없는 집이다. 나는 돌 던져진 집, 불태워진 집이다. 경외심을 일으키는 추문의 집이다. 나는 페스트가 발발한 집이다. 주방 화덕에서 건져 낸 불붙은 장작으로 모든 벽과 문을 그슬리는 정화 의식을 행한 집이다. 나는 최후까지 유예된 서류이며 영영 읽히지 않은 원고다. 영원히 되풀이해서 새로이 쓰여야만 하는 한 권의 책이다. 나는 홀로 집에서 나와 홀로 집으로 들어가고, 그 누구도 식사에 초대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전복하지 않는 전복의 음모를, 목적지 없는 내 여행을 숨긴다. 내 음모와 여행은 무기한 연기되거나 혹은 영원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게 될 산등성이의 굽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친 말을 타고 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투성이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 꺼진 집 안으로 스며든 달빛 속에서 두 팔을 늘어뜨리고 홀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매장되지 않은 죽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우루이기 때문이다. 우루는 잠든 머리를 완전히 숙인 자세로, 어린 시절에 부러진 목뼈를 흔들며 간다. (51~52쪽)
여자 안에서 발화된 그 무엇이 여자를 태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저절로 발생한, 춤추는 자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인 춤이다. 여자의 육체는 자신을 지탱하는 매질을 의식하고, 매질과 호응하고, 매질을 버리고, 매질을 창조하고, 그 매질을 반역한다. 그것이 곧 춤이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 이후에야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당황하면서 놀라워한다. 여자는 오직 내면에서 우러난 즉흥적인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냈을 뿐인데! 여자는 이렇게 춤을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자신의 걸음걸이가 춤이 될 것이라 생각한 적도 없다. 왜 추는가? 아마도 여자는 혼자이고, 여자는 맨발이므로. 아마도 여자는 혼자이고, 여자는 맨발이므로. 한번 여자의 몸에 실린 춤은 스스로 추어진다. 여자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불꽃처럼, 파도처럼 저절로 너울거린다. 그런데 너울거리는 것은 여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 내면의 말이다. 여자는 자신이 해독하지 못하는 그 말이 마음껏 발화되도록 놓아 둔다. 여자는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의 언어에게 자신을 내어 준 매개물이다. 하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는다. (66–67쪽)
여자는 아마도 기억하리라. 아무런 사건도 몸짓도 없이, 소리도 무게도, 심지어 냄새도 없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어떤 위대한 하루를 기억하리라.
여자는 잠이 들었을까. 그런데 잠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상의 죽음이라는 사실 말고 우리는 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긴,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잠과 함께 여자는 스며들듯 사라진다. 여자가 스며든 곳은 가장 먼 바다, 그것은 소리로 이루어진 무다. 여자가 없는 여자의 세계가 흐른다. 여자의 몸 위로 무언가가 덮인다. 그것은 꿈이다. 여자는 꿈을 꾸지만, 그것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여자에게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시계가 오후 네 시를 알린다.
불현듯 라디오의 전파가 교란되며 한동안 잡음과 함께 여러 방송의 목소리가 불균일하게 섞인다. 한꺼번에 밀려온 조각난 목소리의 파도가 물러간 순간, 갑자기 놀랍도록 선명하게, 마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한 구절이 들려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 (76–77쪽)
우루는 보는 눈이다. 우루는 그림자들 사이에서, 춤을 추면서, 걷고 혹은 걷지 않으면서 본다. 눈을 뜨고 있을 때, 그리고 심지어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을 자면서도 본다. 우루는 결코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 관찰하지도 않고, 응시하지도 않는다. 우루는 단 한 번도 뚫어지게 들여다보거나 시선으로 파헤친 적이 없다. 단지 옆으로 흐르듯 보이는 것을 볼 뿐이다. 우루는 보지만, 보지 않으면서 본다. 우루는 비치는 것, 간접적인 시각의 진술, 빛 속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형체들, 그렇게 보이는 말과 현상에 끌린다. 우루의 애정은 그런 종류다. 보이는 것은 고정된 현재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나 수평선처럼 허구다. (125쪽)
만약 언젠가 이 글이 완성된다면, 우루는 이것을 멀리 썼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144쪽)
I
II
III
저자 소개
배수아
소설가. 『철수』, 『붉은 손 클럽』,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뱀과 물』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