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신곡–파우스트–에덴동산–괴테–그레첸–메피스토펠레스–실낙원–알레그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며 동시대 음악에서 맞춰지지 않은 채 남겨진 조각들을 찾는 ‘악보들’ 일곱 번째 책이다. 서양 음악의 역사에서 노래의 선율과 다른 선이 형성되는 장면을 포착했던 『비정량 프렐류드』, 서로 다른 것이 어떻게 한 음악 안에서 양립할 수 있는지 살핀 『판타지아』, 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의 변주를 관찰했던 『리토르넬로』,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분화하는 여러 점들을 따라간 『멜로디 과잉』, 노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구성의 언어로서 서양음악을 읽었던 『모티프』, 그리고 그 자체로서 자기 충족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음형들의 움직임을 좇은 『틱, 톡, 촉』에 이어, 『소나타–신곡–파우스트–에덴동산–괴테–그레첸–메피스토펠레스–실낙원–알레그로』에서는 프란츠 리스트가 남긴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이자 단 하나의 악장으로 구성된 「소나타」 B단조, S. 178번을 따라 음악의 해석, 혹은 확장 가능성을 묻는다.
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예컨대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악보들’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양 음악사에서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두 경향의 운동, 즉 음악의 조건을 극복하려는 움직임과, 반대로 먼 곳으로 향하는 운동을 우리 신체와 맞닿은 ‘노래’라는 틀로 바라본다.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운동성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협력한다. 때때로 간단히 분리해 내기 어려운 상태로 뒤얽힌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의 흐름에서 특정 경향이 더 강하게 또는 독특하게 운동하는 순간들이 도래했고, ‘악보들’은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움직이는 음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 간다.
소나타와 알레그로 사이
로베르트 슈만이 프란츠 리스트에게 피아노 독주곡 「판타지」를 헌정하고 14년 뒤, 리스트는 그에 화답하듯 「소나타」 하나를 슈만에게 헌정한다. ‘교향시’라는 장르를 창시한 리스트에 어울리지 않게 ‘B단조의 소나타’라는 간결한 이름이 붙은 곡이었다. 단 하나의 악장으로 이뤄진, 한 번의 멈춤도 없이 한 호흡으로 30분가량 연주해야 하는 이 곡은 발표된 이래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곡의 진행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은 리스트의 다른 작품을 해석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음악 외적인 것에서 음악의 논리를 찾았다. “이해할 수 없는 진행을 단번에 ‘말이 되는’ 진행으로 만들어” 줄 서사가 필요했다.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신곡, 파우스트, 에덴동산, 괴테,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 실낙원 등은 바로 사람들이 곡의 바탕이 된 ‘소나타-알레그로’ 형식 안에 리스트가 넣었다고 여긴 것들이다.
이 곡의 초연을 들은 음악미학자 한슬리크는 “이 곡을 듣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 곡을 이루는 질서가 한슬리크 자신이 말했던 ‘음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의 형식들’이라면, 그것이 음악 너머를 상상하게 할 정도로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했던 것이라면, 그것이 소나타를 극단까지 끌고 간 결과라면, 우리는 이 곡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소나타」를 찬찬히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발췌
이 이름 없는 B단조의 「소나타」도 다분히 논쟁적인 해석과 연결되어 왔다. 널리 알려진 해석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 소나타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관한 음악적 초상이며, 여기에는 파우스트와 그레첸, 메피스토텔레스라는 주인공들을 상징하는 테마들이 있다.” “이 소나타는 신성과 악마적인 것에 관한 것이다. 이는 성경과 존 밀턴의 『실낙원』에 기반한다.” “이 소나타는 에덴동산을 배경으로 한 우화다. 이는 인간의 타락을 다루며 신과 루시퍼, 뱀, 아담, 그리고 이브의 테마를 포함한다.” 음악에는 늘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곤 했지만 리스트의 표제 없는 단악장 피아노곡, 「소나타」에 뒤따른 서사의 규모는 유독 거대했다. (13쪽)
리스트의 「소나타」에는 그 어떤 표제도 없고, 리스트 또한 이 곡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덧붙이지 않았다. 주제들은 제시되고, 전개되고, 자라나며, 한데 엮여 움직인다. 때론 그 과정에서 비대칭적인 프레이즈들이 산만하게 흩어지고, 예상치 못한 영역으로 나아간다. 「소나타」는 정립된 형식을 뒤로한 채 한껏 흐트러진다. 이 프레이즈 다음에 저 프레이즈가 왜 오는지에 대한 당위를 따져보기는 쉽지 않고, 이 곡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들리기보다는 계속해서 그 흐름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16쪽)
이 음악이 그렇게 구체적인 서사에 비견되는 것은 그 말 없는 음악만으로 특정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할 정도로 섬세한 음악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나타」는 반대로 ‘음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의 형식들’이 특별히 더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에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닐까. 표제음악이 아닌, 오히려 절대음악의 언어가 극대화된 상태였을 가능성은 없을까. (17쪽)
이 소나타는 음악사의 앞선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청중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어떤 모호함 속에 머무르는 것은 어쩌면 작곡가 자신에게도, 당시의 청중에게도 결코 편안한 감각은 아니었겠다. 이후 이 소나타가 결국 오늘날의 청중에게 깊은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당대의 음악이 간과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배양하는 동안, 양분된 개념의 세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어떤 새로움의 가능성이 촉발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18쪽)
총론
노래하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
서문
소나타
프란츠 리스트
소나타 B단조, S. 178
문석민
작곡가. 일반적인 악기 소리부터 소음까지 감각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발굴하고 또 그 소리 재료들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미술가, 안무가 등과의 협업을 통해 비음악적인 재료를 음악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각지에서 디베르티멘토 앙상블, MDI 앙상블, 네오 콰르텟, 앙상블 미장, 앙상블 TIMF 등에 의해 연주되었다.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종종 기획자,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오민
예술가. 시간을 둘러싼 물질과 사유의 경계 및 상호 작용을 연구한다. 주로 미술, 음악, 무용의 교차점, 그리고 시간 기반 설치와 라이브 퍼포먼스가 만나는 접점에서 신체가 시간을 감각하고 운용하고 소비하고 또 발생시키는 방식을 주시한다. 『포스트텍스처』, 『토마』(공저), 『부재자, 참석자, 초청자』, 『스코어 스코어』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