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이혜인 옮김)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2권으로 출간되었다.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학자, 소설가, 극작가 엘렌 식수는 1970년대에 발표한 에세이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를 널리 알린 페미니스트이다. 현재 파리8대학인 뱅센실험대학의 창립 멤버였던 식수는 이후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 연구소를 신설하고 여성학 박사 학위 과정을 도입했다. 70여 편의 픽션과 에세이, 희곡을 쓰는 한편 40년간 서양 고전 작품을 면밀히 읽어 나가는 문학 세미나를 진행해 오기도 한 엘렌 식수의 이 책은 식수의 문학관이 특유의 문체로 집약된 에세이이다. 식수는 문학의 비명과 외침을 책의 형태로 함께 기억하기 위한 동반자로 자신의 눈에 “고통의 예술가이자 잔혹함의 조련사”(16쪽)로 비친 알제리 출신 미술가 아델 압데세메드를 불러들여 단상의 사이마다 타 버려 잿더미가 되고 짓뭉개지고도 다시 발을 떼는 이미지들을 더했다.
다시-생각하는 문학
문학을 다시-생각하기(Re-thinking Literature). 2013년 뉴욕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여한 식수는 당시의 주제에서 촉발된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죽음과 망각에 저항하는 문학을 곱씹기 시작한다. 환각에서 깨어나 자신이 저지른 살육을 보고 외치는 그리스신화 속 영웅 아이아스의 외마디 “아야이!”를 문학의 비명을 잊지 말라는 부름으로 받아들이고, 소포클레스, 셰익스피어,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카프카, 블랑쇼 등 시대와 언어를 망라한 작가와 작품을 종횡무진 인용하며 죽음을 살리는 글쓰기를 논하고 입증한다.
엘렌 식수, 샹탈 아케르만, 아니 에르노의 애도의 글쓰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옮긴이가 읽기에 식수가 다시-생각한 문학, 실천하고 이야기하는 문학은 “무조건적인 환대”(데리다)를 실현하는 글쓰기이며, 그 환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고루 품으면서 끝을 유보한다. “「메두사의 웃음」이 여성주의적 견지에서 (저자의 젠더와 무관하게) 새로운 여성을 도래하게 하는 글쓰기를 ‘여성적 글쓰기’라 명명하고, 여성의 ‘또 다른 양성성’으로부터 환대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을 역설했다면, 『아야이!』는 환대의 범주를 망자(亡者)에로, 다시 말해 삶이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존재에까지 확장한다. 이 글에서 식수는 애도를 품는 문학, 즉 망자에게 죽음을 주지 않고 삶을 주는 문학을 그린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애도 작업이 부재를 받아들이고, 떠난 이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면,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문학은 애도 작업을 완수하지 않고, 끝내기를 끝내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설 자리를 잃은 온갖 감정과 인물에게 끊임없이 자리를 내어 주고 삶을 고수하는 것, 그것이 엘렌 식수가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문학이다.”(「옮긴이의 글」 105~106쪽)
환대하는 애도
한 편의 연극처럼 수많은 문학가들과 그들이 창조해 둔 인물들을 또 다른 무대에 새로운 등장인물로 불러들이는 이 에세이는 방대한 문학사에 식수 자신의 개인사를 겹치며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애도한다. 첫 장편소설에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다루었던 식수는 문학사와 개인사를 글쓰기의 전면에 고루 내세우며 삶 속에서 죽음과의 동행이 문학을 통해 가능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식수의 시도는 삶과 죽음을 둘러싼 작은 역사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주목하려는 면밀한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여러 언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중의적인 의미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새로운 단어를 생성하는 데 거리낌 없는 식수의 글쓰기 방식과 결합되면서 읽는 이에게 극도로 세심하고 적극적인 독서를 요구한다. 저자의 글쓰기를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만은 없는, 독자 스스로 읽는 방식을 만들어 가기를 요청하는 이 책은 환대로서의 애도의 방식을 펼쳐 나가며 삶과 죽음 사이의 문을 열어 둔다.
발췌
우리는 죽어 가면서 우리의 삶을 산다.
우리는 간혹 죽음 한참 이전에 이미-죽는다. 때로는 죽기를 그치지 않기도 한다. 사람은 하나 이상의 죽음으로 죽는다. 가끔 엘페노르처럼 죽음에 이르지도 못한 채, 삶을 잃어버려서 참혹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사람은 죽는다.
사람은 삶 없이 살아간다. 그게 삶이다. (30~31쪽)
문학은 분노가 송가가 되고, 리듬이 되고, 문장이 된 것이다. (45쪽)
누군가 내 비명을 앗아 갔다! 누가 내 비명을 빼앗았지? 내가 도로 가져와야지!
그런 다음 글을 쓴다. 우리는 글쓰기라는 극단의 침묵(ultrasilence)에서 현실에 울려 퍼지는 날카롭고 짧은 비명을 해석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울부짖기 위해, 음악이 될 때까지 비명을 내지르기 위해 존재한다. 문학에의 권리 혹은 현실과 공동체 안에서는 금지된 비명을 지를 권리. (59쪽)
문학이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문학은 사형에 맞서 결집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우리의 살인 행위를 담은 장면이고 심복이며, 우리의 망상에 대한 관대함이다. 우리가 저주하는 삶, 즉각 회신으로 증오에
찬 고함을 내지르게 한 그 삶을, 사실은 우리가 열렬히 사랑한다는 방증. (72쪽)
삶이 없어도 살 수 있음을 안다는 것,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더 이상 원치 않을 때조차 삶을 갈구한다는 건 삶이 지닌 경이로운 공포 (73쪽)
우리는 폐허와 묘지에서 공연한다. (83쪽)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잿더미에서 나를 꺼내 줘!
아야이!
영원히—꿈(Ever—Rêve)
59
살인이 일어난 방을 환기하기
우선 테올레폰(Théoléphone)에게 호소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내가 네게 말했던 그(녀)(El Que Te Dije)
발송
옮긴이의 글
엘렌 식수 연보
저역자 소개
엘렌 식수(Hélène Cixous)
영문학 교수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학자다. 1937년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바칼로레아 취득 후 프랑스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1967년 단편집 『신의 이름』으로 문단에 데뷔하고 1968년 ‘제임스 조이스의 망명 혹은 대체의 예술’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논문을 마친 뒤, 같은 해 뱅센실험대학(파리8대학)의 창립 멤버로 활동한다. 이후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1974년 파리8대학에 여성학 연구소를 신설하고, 여성학 박사 학위 과정을 도입했다. 1970년대 중반 발표한 에세이 「메두사의 웃음」과 「출구」는 ‘여성적 글쓰기’를 알리는 선언으로 읽히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식수는 현재까지 70여 편의 픽션과 에세이, 희곡을 저술하며 집필 활동을 왕성히 이어 가고 있다.
이혜인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파리3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파리8대학에서 아니 에르노, 엘렌 식수, 샹탈 아케르만의 애도의 글쓰기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