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서프 브레이크 밴드
서프 브레이크 프롬 자메이카
시비에스/소니
1976년
인간은 접영을 한다. 아름다움이 위험을 무시하고 기능을 초과한다. 바이닐의 ‘버터플라이 스트로크’이자 ‘돌핀킥’은 재킷이다. ‘서울레코드페어’가 처음 개최된 2011년, 턴테이블이 있는 가정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매출이 극적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바이닐 재킷을 커다란 아트워크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프 브레이크 프롬 자메이카』(Surf Break from Jamaica)의 표지는 누아르 영화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혼란을 수습하고 떠나려는 ‘천국’, 달력이나 포스터를 통해 그리는 어느 이국의 풍광 같다. 아사이 심페이가 1976년 5월 10, 11일 양일간 자메이카 몬테고베이의 파도 소리를 녹음하고, 그곳의 사진을 찍고, 라이너 노트를 적어 한 장의 앨범으로 만들었다. B면에 간간히 생뚱맞은 우쿨렐레 연주가 있지만 약 40분의 재생 시간 중 극히 일부다. 처음엔 ‘자메이카의 파도 소리’에 혹해 샀다. 이후 500엔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반복적으로 마주쳤고, 선물용으로 쓸만해 여러 장 구비했다.
턴테이블이 없는 친구들에게도 바이닐을 선물한다. 주로 장식으로 쓸만한 공간을 가진 친구들이다. 예를 들어 서핑 샵 ‘서프코드’를 운영하는 친구들에게는 우아(UA)의 『프라이빗 서퍼』(Private Surfer) 12인치였다. 천국은 달력에 있으면 멀지만, 바이닐에 있으면 가깝다. 재킷에서는 천국을 만질 수 있고 유추할 수 있다. 밀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천국의 전형성을 현실의 구체성 쪽으로 보낸다. 『서프 브레이크 프롬 자메이카』를 선물하고 싶은,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이 생각 났다.
K는 조용하고 명석한 사람이었다. 음악 모임에서 알았다. 별로 대화를 나눠 보진 못했다. 다만 수줍게 웃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화제로 나오자 고조됐던 몇몇 순간은 기억한다. 그의 이름도 아련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K가 망상증을 앓는다 했다. 여러 음악가들을 ‘스토킹’하고 있었다. 어쩌다 공연장에서 만나 인사를 건넨 일도 있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사건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어떤 검색어를 통해 K의 블로그를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증상 보고서 자체였던 여러 게시물들 가운데 짧은 문장 하나가 뚜렷했다. “누가 나를 꺼내줘, 제발.” 그리고 얼마 뒤 그의 때늦은 부고를 들었다.
그 부탁의 말을 잊지 않고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혔다. 스스로 나오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모든 곳은 지옥이다. 누군가 도울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는 실천이 있고, 당사자에게는 새에게 날지 말라는, 바람에게 파도를 멈추라는 요구다. 그의 고통이, 그 말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나는 천국을 믿지 않는다. 다만 천국이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믿는다.
참고
에디터.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코리아』(Dazed & Confused Korea)와 『지큐 코리아』(GQ Korea)에서 일했다. 음악 페스티벌 ‘서울 인기’, 잡화점 ‘우주만물’, 음악 바 ‘에코’, 온라인 음악 플랫폼 ‘버드엑스비츠’(BUDXBEATS)를 좋은 동료들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했다. 영몬드(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페어브라더(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