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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현실
Art and Reality

N55

사람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타인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상황과 상관없는 미술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람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 없는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람, 사람의 행동, 사물,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하지 않고서 미술에 관해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이 타인 및 사물과 관계 맺는 행동에 관해 말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데 대한 전제 조건으로서, 우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느낀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이는 곧 우리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이 타인 및 사물과 관계 맺는 의미 있는 행동에 관해 말해야 함을 뜻한다. 미술에 관해 말할 때 이것이 늘 유효하다고 추론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말이 가능할 것이다.

사람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누구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미술, 따라서 의미 없는 미술

사람의 행동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타인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사물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구체적인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사람과 그들의 행동, 의미, 타인, 사물,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미술.

따라서 이제 우리는 미술을 말할 때,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 타인 및 사물과 관계 맺는 의미 있는 행동에 관해,

혹은 그와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그들의 관계 또한 동일하게 필수적인 요소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함을 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경험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습관적 개념, 사회적 관습, 권력 집중을 배제하고 이치에 맞게 미술을 논할 수 있게 해 준다. (···)

구체적 상황

구체적 상황은 모든 언어 사용의 전제 조건이다. 왜냐하면 주장이란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한 개인이 만들어 낸 어떤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주장이 있지만 이 주장은 구체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상황을 참조하지 않고 우리는 그 무엇도 언급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그들이 저기 앉아 있어, 그들은 괜찮아.” 일상의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상태, 사물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규명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동시에 하나의 상황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똑같은 상황을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은 상황이 지닌 우연한 속성이 아니라 반대로 상황을 특징짓는 요소다. 한 가지 방법으로 설명되는 상황은 상황이 아니다. 단 하나의 설명에 기초해서 상황을 정의하려 들면 우리는 그 상황을 경험하기 힘들다.

미술이 계속해서 새로운 조형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타당하다는 근거는 없다. 그러한 요구가 밑바탕을 이루는 역사적 고찰은 상황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역사는 특정한 관점을 가진 설명과 관계가 있지 현실이 아니다. 여러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하나의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가진 상황에 대한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미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만의 설명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결코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

정치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을 부정한다면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에 도달한다. 이는 정치인의 기본 임무 가운데 하나가 예를 들어, 그들과 타인의 권리에 대한 포기일 수 있음을 뜻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혹은 정치에는 사람과 관계없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고, 따라서 사람의 권리와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는 분명 상식에 어긋난다. 따라서 정치의 근본 목적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다시 말해 정치의 근본적인 목적이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상정 없이 상식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력 집중은 사람의 권리를 반드시 존중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사실을 부인한다면, 권력 집중은 사람의 권리를 반드시 존중한다에 도달한다. 이는 우리의 경험상 틀린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고 싶으면, 가능한 한 권력 집중을 최소화해야 함이 명백하다. 정치의 근본 목적이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권력 집중의 최소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치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권리를 남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소수의 사람을 선출해서 수많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개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수의 사람을 선출한다는 뜻은 곧 권력이 집중된다는 말과 같으며, 따라서 우리는 권력 집중의 최소화가 아니라 그 반대를 이야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 집중이 사람의 권리를 늘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람과 그 권리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함이 분명하다. 만약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사람의 권리를 자각하고 있다면, 가능한 한 권력 집중울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해짐이 분명하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사람의 권리에 대해 알고 있는 바에 따라 살아가고 행동하는 법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해진다. 모든 존재가 위협을 받을 때 이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것이 분명하다.

미술가 역시 사람, 사람의 권리, 권력 집중에 따른 영향을 자각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함은 명백하다. 스스로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함은 명백하다. 미술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이에 관한 의식에 눈뜨고 가능한 한 권력 집중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근본적인 도덕률, 즉 미학을 위해서는 윤리학을, 미술 실천을 위해서는 정치를 기본으로 삼는 상황을 확보할 수 있다. 미학은 무엇보다도 권력 집중을 최소화하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우리 자신을 조직하기 위한 가능성들을 검토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이는 사람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고 일상의 삶에서 의미를 갖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N55

N55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미술가 협업 집단. 1994년 창립한 이래 일상생활을 공공 이벤트와 협업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며 ‘안으로부터 도시를 재건설’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마이크로 주택’(Micro Dwellings), ‘걸어다니는 집’(Walking House) 등 이들이 진행한 사회적 프로젝트들은 사용 조건과 지침이 적힌 매뉴얼이 딸린 형태로 대중에게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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