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볼: 조선·타이완·만주에서 꽃핀 야구 소년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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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조선·타이완·만주에서 꽃핀 야구 소년들의 꿈
戦前外地の高校野球: 台湾・朝鮮・満州に花開いた球児たちの夢

가와니시 레이코 지음, 양두원 옮김

“저희는 지금, 수많은 선배님들로부터 용기를 전해받아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고시엔’이라는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섰습니다. 저희가 지금 여기 있는 건 고향에 계신 모든 분뿐 아니라 너무나 많은 분이 저희를 지탱해주신 덕입니다. 그 모든 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리고 전국의 모든 분이 ‘고교 야구를 보러 가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고교생답게, 거침없이, 시원하게, 정정당당히 플레이하겠습니다. 저희 모습이 모두에게 희망과 꿈과 힘을 전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이 다할 때까지, 전력으로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2014년 봄 고시엔 선수 선서에서)

새로운 여름, 플레이볼

아다치 미쓰루(安達充)의 만화 『H2』 등으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고시엔(甲子園, 정식 명칭은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은 일본에서 매년 8월 2주 동안 열리는 고교 야구 대회다. ‘고시엔’은 한신 타이거스의 홈 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온 명칭으로, 여기에는 여름에 열리는 대회 외에 봄에 열리는 선발 대회도 포함되지만, 봄의 대회는 주로 ‘센바쓰(センバツ)’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따라서 고시엔은 봄의 선발 대회에서 우승한 학교들이 겨루는 여름의 대회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2015년 제97회 대회의 캐치프레이즈는 ‘새로운 여름, 플레이볼’이었다.

고시엔은 각 지역의 대표 학교가 맞붙는다는 점에서 여름과 청춘을 상징하는 일본의 국민적 대축제다. 경기마다 4만 7,000석에 달하는 고시엔 구장이 가득 차며, TV 중계 시청률은 20퍼센트에 육박한다. 오는 2018년 제100회를 맞는 대회의 시작은 1915년 8월 22일 일본 도요나카시의 도요나카 구장에서 열린 ‘전국 중등학교 우승 야구 대회’였다. 당시 일본 전국의 일흔세 학교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는 예선을 거쳐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학교 열 곳이 토너먼트로 격돌했고, 초대 우승은 아키타 중학을 2:1로 꺾은 교토 이중(오늘날 도바 고교)이 차지했다. 이후 한신 고시엔 구장이 완성된 1924년 제10회 대회부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대회가 중단된 1941~5년을 제외하고) 줄곧 이곳에서 열리게 됐다.

하지만 한여름의 대축제는 일본인만의 몫은 아니었다. 1871년 도쿄 가이세이 학교 예과(오늘날 도쿄 대학)의 교수였던 호레이스 윌슨(Horace Wilson)이 일본에 야구를 전한 뒤 야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타이완·만주에도 서서히 퍼졌다. 물론 당시에는 제대로 된 유니폼이나 글러브, 미트도 없었지만 말이다. 1895년 일본의 첫 식민지가 된 타이완, 1905년 만주, 1910년 조선에서도 야구(특히 고교 야구)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921년 제7회 대회부터 1940년 제26회 대회까지 식민지 예선을 거친 학교가 현해탄을 건너 고시엔으로 향했다. 특히 조선에서는 경성 중학, 경성 상업, 부산 상업, 휘문 고보 등이 고시엔에 출전해 8강에 올랐고, 타이완에서는 ‘카노’로 불린 자이 농림, 만주에서는 다롄 상업이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의 초창기 야구에 관한 기록이자 흰 공에 청춘을 바친 야구 소년들의 이야기

‘어른들’이 정치 정세를 두고 논쟁할 때도 식민지 생활에는 분명 기쁨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잠시뿐일지 모르지만, 순진하리만큼 야구에 열중한 소년들이 있었고, 그들은 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도 여름방학 숙제를 안 해도 된다며 그저 즐거워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고교 야구사는 이제 거의 완전히 잊혔다. 이 책 『플레이볼: 조선·타이완·만주에서 꽃핀 야구 소년들의 꿈』은 전쟁의 먹구름에 가려진 조선·타이완·만주의 초창기 야구에 관한 기록이자 엄혹한 현실에도 한여름의 그라운드를 누비며 흰 공에 청춘을 바친 야구 소년들의 이야기다.

야구 소년을 가리키는 ‘규지(球児)’라는 명칭이 있고, 고교 야구를 다룬 책이 적지 않은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 이전의 식민지 야구사’라는 이 책의 주제는 희소하다. 지은이는 과거에 발행된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니시와키 요시토모(西脇良朋)의 ‘식민지 야구 3부작’, 학생 수기 등 각종 자료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아버지인 가와니시 요시오(川西良主夫)가 과거에 만주 대표로 고시엔의 흙을 밟기도 한 지은이의 개인사가 역사적 무대와 겹치는 부분은 일반 야구사를 다룬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에서 한층 더 매력적이다. 한편, 이 시기의 야구사를 다룰 때 고시엔 8강에 진출한 휘문 고보의 위상을 지나칠 수 없다. ‘야구 마니아’를 자처하며 매년 고시엔을 참관하는 옮긴이는 지은이가 미처 놓친 휘문 고보의 초창기 야구에 관한 글을 실었다. 당시 활동한 야구 소년들의 이름에서 소설가 상허 이태준, 간송 전형필, 화가 이쾌대 등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발췌

『타이완 야구사』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인 1900년대 초반에 이미 타이완 각지에서는 야구를 즐겼다. 최초로 만들어진 야구부는 총독부 국어 학교 부속 중등부, 뒷날 타이베이 일중, 지금의 지안구오 고급 중학(建國高級中学)이다. 1906년의 일이었다. (41~2쪽)

조선에서도 내지, 타이완과 마찬가지로 메이지 시대 말기부터 야구를 했다. 일본인이 한반도에 이주를 시작한 해는 이미 1876년으로, 한일수호조약이 체결된 무렵이었다. 이주민은 청일전쟁 이후부터 급증하고, 1910년 한일 합방으로 더욱 증가했다. 조선에 야구를 들여온 인물은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lip L. Gillette)로 알려졌다. 1904년 한성(오늘날 서울, 일본 통치 시기에는 경성)의 종로에 황성 YMCA 회관이 세워지고, 그곳에 선교사 질레트가 평양에서 부임해왔다. (67쪽)

조선의 몇 안 되는 사학이었던 만큼 휘문을 거친 선생과 학생 가운데 주시경, 최남선, 김두봉, 정지용 등 굵직굵직한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단편소설 「가마귀」(1936년)로 유명한 소설가 상허 이태준과 조선의 문화재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간송 전형필, ‘한국의 미켈란젤로’로 불린 화가 이쾌대도 휘문의 야구부원이었다. (88쪽)

1937년 고시엔은 대륙에서 루거우차오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열렸다. 전례에 따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열린 타이완 지구 예선 우승은 타이베이 상업을 꺾은 자이 중학이 차지했다. 고시엔 첫 출전이었다. 입장식에서 전년도 우승 팀인 기후 상업에 이어 입장했다. 학교 명판 아래 타이완 대표로 표시된 우승기를 걸고 아지사카(鰺坂) 주장을 선두로 들어왔다.

“카기다, 카기다!” 스탠드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박수갈채도 쏟아졌다. (140쪽)

일본의 조선 통치는 군과 경찰의 혹독한 탄압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 통치를 떠받치는 저변을 형성한 민간의 일본인에게는 강압 통치를 향한 자각이나 의식은 없었다. 그들은 대일본 제국의 기세를 타고 생활을 위해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고자 조선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하루하루 일상에 매진하며 필사적으로 살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후세의 일본인에게는 무거운 주제다. (156쪽)

한편, 1938년 고시엔은 사무라이 정신을 담은 선수 선서가 등장한 일로 유명하다. 4월에 이미 국가 총동원법이 공포되고, 7월에는 도쿄 올림픽 개최권이 반납됐다. 대회는 팡파르가 아니라 진군나팔로 막을 열였다. (208쪽)

내지에서는 이미 1938년에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됐다. 내지에 비해 통제가 느슨해 야구 선수와 영화인의 도피처가 된 만주에도 시대의 파도가 밀어닥쳤다. 스포츠 단체를 포함해 모든 민간 단체가 전시 체제를 향해 일체화됐다. (256쪽)

일본의 내지와 외지에서 귀중한 목숨을 수없이 앗아간 전쟁은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면서 겨우 종말을 고했다. 시즈오카 중학 야구부 출신 심판으로 뒤에 고교 야구 연맹의 회장을 맡기도 한 사에키 다쓰오(佐伯達夫)는 나라 고엔의 찻집에서 옥음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곧바로 오사카 아사히 신문사를 찾아 하루라도 빨리 야구가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95쪽)

타이완에서도 1943년 1월 전도 선발 대회를 끝으로 명맥이 끊겨 전쟁 전 중등학교 야구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세 민족이 혼성 팀을 이룬 자이 농림은 영광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패전 직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301쪽)


차례

서문

고교 야구는 왜 다이쇼 시대에 시작됐는가
타이완 야구의 여명기
조선과 만주에서 퍼져가는 야구 소년들의 꿈
1931년 준우승을 차지한 자이 농림
황금기를 맞은 조선 중등학교 야구계
대륙의 야구 소년들에게 번진 전쟁의 불길
완수하자, 성전을! 흥하라, 동아여!: 중일전쟁과 고시엔
통한스러운 대회 중단, 신기루 고시엔
야구부 해산, 전장에서 스러진 야구 소년들
패전에서 일어선 외지의 야구 소년들

에필로그
후일담
연표
역자 후기


지은이

가와니시 레이코(川西玲子)는 1954년생으로 주오 대학 대학원 법학연구과 석사 과정(정치학)을 수료했다. 1985년 재단법인 일본 시스템 개발 연구소(당시 재무성 관영)의 연구1부 사회 시스템 연구실에서 근무하다 양육 문제로 퇴직했다. 그 뒤 제4기 도쿄도 여성 문제 협의회 위원에 취임하고, 도쿄 학예 대학 비상근 강사로 근무하며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는 일본 근대사를 중심으로 저술 활동을 해왔고, 일본 근대사를 주제로 시부야에서 토크쇼와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 출생으로 1938~9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 대표 톈진 상업 투수로 출전했다. 지은 책으로는 『역사를 알면 더 재미있는 한국 영화(歴史を知ればもっと面白い韓国映画)』(2006년), 『영화가 말해주는 쇼와사(映画が語る昭和史)』(2008년) 등이 있다.

옮긴이

양두원은 KAIST에서 화학공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 이래 LG 트윈스의 오랜 팬이다. 2000년대에 들어 응원하는 팀이 암흑기에 빠지자 우울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스페인 축구와 고시엔(甲子園, 갑자원)을 파기 시작했다. 2010년 우연히 놀러간 고시엔에서 오키나와 대표 코난 고교의 기념비적 우승을 접한 뒤 본격적으로 팬이 되어 지금은 매년 여름 고시엔 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게 연례 행사가 됐다. 모 방송국에서 카메라 기자로 일하고 있다.


편집

민구홍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