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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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

이영준 지음

기계 비평가 이영준, 이번엔 우주다!

이영준. 그는 기계 비평가다. 교수라는 직업도 있고 사진 비평이라는 부업도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기계 비평을 자신의 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부터 하늘을 나는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정교하고, 육중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계를 보면 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그 호기심이 어느 정도냐 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에 타기 위해 무려 5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신비로운 기계에 속하는 우주선에 매료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우주선과 우주비행에 대한 비평을 하자니 한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그의 기계 비평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기계가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과 물질세계 사이를 이어주는 기계라는 표상을 분석하고, 해부함으로써 그것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밝혀주는 것이 그의 기계 비평의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주선이나 우주비행은 뉴스에서나 접하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서 영 우리의 삶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인 우주 기계 비평에 앞서 사람들의 우주 감각을 키워주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이 책, 『우주 감각』을 통해서 말이다.

NASA가 기록해온 우주 이미지의 역사

이 책은 1958년 설립된 이래, NASA(미국항공우주국, 이하 나사)가 기록해온 과학 이미지들을 실은 책이다. 각종 우주선, 실험 장비, 기계 장치, 인물 사진을 비롯해 우주에서 보내온 천체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광범위하다. 이영준은 그 이미지들 가운데 우주 감각을 키워줄 수 있는 이미지들을 골라 책으로 묶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한다. 나사는 우주 개발만큼이나 기록에도 열심이어서 지난 57년간 쌓인 이미지의 수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는 그 수많은 사진을 어떻게 정리해서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다, 최초로 생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던 칼 폰 린네를 따라 이참에 과학 사진을 분류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로 한다. 어쩌면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이영준의 과학 사진 분류법은, 어느 정도나 과학적인가에 따라 19가지로 나뉜다. 예를 들어 화성 탐사 로봇 스피릿이 찍은 화성 표면 사진은 ‘원래부터 과학적인 사진’의 하위 항목에 속한다. 그러나 1970년대 루이스 우주센터에서 열린 ‘미스 나사’ 선발대회 사진은 ‘비과학적인 과학 사진’에서도 ‘과학의 언저리를 찍은 사진’, 그중에서도 하위 항목으로 분류된다. 나사의 전신이었던 ‘NACA’가 1951년에 찍은 실험 장면은 원래는 최첨단 과학 사진이었지만 ‘과학 자체가 오래돼서 유물이 된 사진’에 속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과학적이고, 어떻게 보면 대단히 임의적인 그의 분류법에 따라 엄선된 사진이 실려 있다.

현대 우주 항공 기술이 낳은 시

그런데 이영준이 말하는 우주 감각이란 무엇일까? “먼 우주와 연관된 감각이란 뜻의 우주 감각이란 말은 미국에도 없는 것 같다. [...] 그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저 멀리 계속 가면 언젠가는 안드로메다 성운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우주왕복선의 선체는 어떤 재질로 만들어져 있을까 추정하는 것까지, 우주 감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이어서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지구출’, 즉 달의 지평선 너머로 지구가 떠오르는 장엄한 장면을 찍어 보냈을 때 비로소 인류의 우주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평생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보아오던 우리의 눈에 일어난 이미지의 빅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 발사된 허블 천체망원경이 먼 우주의 이미지를 찍어 보냈을 때, 우리의 망막은 또 한 번 이미지의 빅뱅을 경험한다. “허블 천체망원경이 보내온 먼 우주의 모습은 인류가 이제껏 보지 못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인류의 감각적 삶은 허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말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말머리성운으로 불리는 성운에서부터 용골자리의 에타 성운 등, 허블이 보내온 이미지들은 차라리 화가가 그린 유화라고 하면 쉽게 믿을 수 있는 초현실적인 것이었다.” 과학적 데이터이면서, 아름답고, 또 역사적인 나사의 이미지들은 “우주 항공 기술이 낳은 시”이자 “이미지의 빅뱅에 동반하는 눈부신 섬광”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 말 우리나라에 불었던 로켓 붐

책에 함께 실린 안형준 박사의 글 「스푸트니크 쇼크와 1950년대 말 우리나라 로켓 붐」은 이영준이 말하는 우주 감각이 실제로 어떻게 우리 삶과 연관을 맺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을 때, 세계는 커다란 충격에 빠진다. 드디어 우주개발이 허황된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특히 “미국은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군사뿐만 아니라 과학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 범위에 걸쳐 대대적인 변혁에 나서게 되는데, 이를 흔히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부른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다른 형태로 변주되며 우주개발을 꿈꾸던 이들에게 큰 동기부여를 했다.”

이어서 안형준 박사는 1950~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우리나라에 불었던 로켓 붐을 소개한다. 스푸트니크 발사 소식에 고무된 충북 영동에 사는 19세 김기용 군이 1958년 독학으로 로켓을 제작, 발사한 일화를 시작으로, 새턴 5호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박사가 보냈다는 초청장을 앞세워 각계에서 로켓 연구비를 지원받은 오석근 군의 사기극,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등 사회 변동 속에서도 1960년대 꾸준히 로켓 개발의 명맥을 이어온 인하공대 우주과학연구회의 노력까지, 우리나라 아마추어 로켓티어들이 꾸었던 꿈은 한낱 역사의 에피소드로 치부하기엔 아쉬운 이야기이다.

아름답고 숭고했던 이영준의 우주여행기

앞서 말했듯, 기계를 향한 이영준의 호기심은 집요하기 이를 데 없다. 컨테이너선을 타는 데 5년 정도 투자했으면, 우주선을 타는 데는 10년 정도는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터이다. 이를 반증하듯, 실제로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부터 우주선을 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책 말미에 실린 이영준의 글 「나의 아득하고 숭고했던 우주여행기」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우주인이 아닌, 대한민국 안양 시민인 그가 우주선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시도들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숭고했던, 어떻게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그의 우주여행기를 듣고 있자면, 언젠가는 그가 이 책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난 사람들의 우주 감각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본격 우주 기계 비평서를 쓰고 말리라는 생각이 든다.


발췌

1958년 나사가 생긴 이래 57년간 찍고 만들어진 수많은 사진들을 본다는 것은 시각의 빅뱅을 체험하는 일이다. 아마도 160여 년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의 의미가 이렇게 확장되고 심화된 적이 없을 것이다. 세계관 정도가 아니라 우주관을 바꿔놓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나사의 사진들을 본다는 것은 역사를 기록한 사진들을 들춰가며 과거를 확인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9쪽)

결국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엄청난 공간, 지구상에는 없을 듯한 신비로운 색깔, 그것들을 탐사하고 관측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신기한 장치, 그것들에 몸을 맞추기 위해 훈련하는 인간의 노력 등이 우주에 대한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우주 감각은 근본적으로 사진적이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18쪽)

이렇듯 로켓은 과학기술을 통해 잃어버린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젊은이의 이미지와 중첩이 되었는데, 이런 로켓의 이미지는 한 젊은 과학도의 치기 어린 사기극에 이용되기도 했다. 1961년 6월 11일 자 『동아일보』에는 “한국의 과학도 세계 무대로”라는 제목의 기사 아래 미국의 저 유명한 폰 브라운 박사의 사진과 예쁘장하게 생긴 한 젊은이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내용인즉 부산의 과학 연구학도인 20세 오석근 군이 나사에 있는 폰 브라운 박사의 초청을 받아 1963년부터 그곳 미사일 학교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354쪽)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역사는 1992년 우리별 1호를 시작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나라에 한참 로켓 붐이 불다가 사그라진 1950년대와 60년대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우리나라는 왜 로켓 개발을 꿈꾸었으며, 그 꿈은 왜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일은 우주강국을 꿈꾸는 현재 우리에게 한낱 잊힌 옛날이야기를 들춰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줄 것이다.(382쪽)

마지막으로 안내된 곳은 케네디 우주센터에 있는 것과 비슷한 통제실이었다. 수많은 모니터들이 옛날에 발사되어 지금도 우주 공간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우주선들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디스플레이를 보니 보이저 2호를 추적 중이라고 나와 있었다. (…) 제트추진연구소는 35년간의 비행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사는 무슨 끈기로 이렇게 긴 세월 이 우주선을 추적하고 있는 것일까? (…) 2025년에는 전력이 완전히 떨어져 대부분의 장비들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29만 6000년 후에는 시리우스를 4.3광년의 거리에서 지나가게 된다. 아마 인류는 그때까지 살아 있지 못하리라. 먼 외계의 누군가가 그때 가서 보이저를 발견한다면 그들은 주인 없이 외계를 떠도는 방랑하는 화란인 같은 유령선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모두 다 꿈같은 얘기다.(409쪽)


차례

서문: 인간이 우주를 감각해온 역사
과학을 기준으로 한 사진의 분류

천체
우주선
실험 설비
풍동

비행체
X-15
우주왕복선 / 국제우주정거장
화성
인물과 생활
제임스 웹 천체망원경
기이한 나사

스푸트니크 쇼크와 1950년대 말 우리나라 로켓 붐 / 안형준
나의 아득하고 숭고했던 우주여행기


지은이

이영준은 기계 비평가이자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사랑하는 그는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업이다.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재봉틀에서부터 첨단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구조와 재료로 돼 있으면서 뭔가 작동하는 물건에는 다 관심이 많다. 원래 사진 비평가였던 그는 기계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설명해보고자 기계 비평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 (2012), 『조춘만의 중공업』 (공저, 2014)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사진 비평에 대한 책 (『비평의 눈초리』, 2008)과 이미지 비평에 대한 책 (『이미지 비평의 광명세상』, 2012)도 썼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1999), «서양식 공간예절»(2007), «xyZ City»(2010), 2010 서울사진축제, «김한용—소비자의 탄생»(2011), «우주생활»(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표지 사진

김상길, KVN 연세전파천문대, 2016.

편집

박활성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