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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 케네스 골드스미스
117 × 190밀리미터 / 392쪽 / 사철 소프트커버 / 2023년 11월 1일 / 25,000원 / ISBN 979-11-89356-99-6 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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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골드스미스의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온라인 아방가르드 아카이브 우부웹(UbuWeb)의 창립 편집자이며 온라인 시 아카이브 펜사운드(PennSound)의 책임 편집자이기도 한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시학과 시적 실천을 가르치면서 시집 몇 권과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2011), 『인터넷에서 시간 낭비하기』(2016) 등을 펴냈고, 텍스트에 바탕을 둔 개념적인 미술 작업을 펼쳐 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에 “비독창적 천재(Unoriginal Genius)”로서 “비창조적 글쓰기(Uncreative Writing)”를 구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증명하고 실천한다.

비독창적 천재

“1969년 개념 미술가 더글러스 휴블러는 ‘세계는 대개 흥미로운 사물로 꽉 차 있고, 난 이 이상 추가할 생각이 없다.’고 썼다. 나는 휴블러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지만, ‘세계는 대개 흥미로운 글로 꽉 차 있고, 난 이 이상 추가할 생각이 없다.’고 다듬겠다. 이는 오늘날의 글쓰기가 놓인 새로운 조건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보인다. 전례 없이 많은 유용한 글에 직면한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글을 더 쓰고 싶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존재하는 거대한 양의 글을 뛰어넘는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뚫고 나갈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운영하고, 분석하고, 조직해서 배포할 것인지가 나의 글과 너의 글을 구분한다.”(13쪽)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는 「서문」의 시작부터 다른 작가의 문장을 빌리되 바꾸어 말하며 글쓰기와 관련해 이 시대의 무수한 글과 엄청난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이야기한다. 글을 처음부터 새롭게 쓰는 고전적인 방식을 넘어,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들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서의 창작 행위.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역사적으로 탁월한 ‘비독창적 천재’들의 시도를 통해 꾸준히 있어 왔다. 인용문들을 재구성한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제약을 문학의 도구로 삼았던 문학 단체 울리포, 일상을 녹음한 그대로 책으로 묶은 앤디 워홀, 누구나 작품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한 개념 미술가 솔 르윗…. 그리고 오늘날 어떤 글쓰기는 이러한 흐름의 극단에 가 있다. 저자가 (본인의 작업을 포함해) 발견한 예시들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전체를 매일 하루에 한 쪽씩 타자로 필사해 1년간 블로그에 올린 작업. 『뉴욕 타임스』 하루치 기사 전문을 전유해 900쪽 책으로 출판한 작업. 쇼핑몰 매장 안내도의 입점 매장 목록을 재구성한 데 불과한 목록 형식의 시. 그런가 하면 자신이 받은 모든 신용카드 가입서를 엮어 주문 출판 방식으로 800쪽 책을 만들었으나 비싸서 자신조차 한 권을 사지 못하는 가난한 작가. 색인까지 포함한 19세기 문법책 전체 문장구조를 자기 방식대로 분석한 시인. 본업 활동 중에 작성한 항소이유서 전문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시로 재현한 변호사.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 편』 영문 번역판을 전부 입수해 그 첫 구절을 차례차례 옮겨 적은 작가도 있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 업데이트된 상태 글을 복사하고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글쓰기 팀은 페이스북 페이지가 갱신되는 것처럼 스스로 고쳐 쓰는, 끝없는 서사시를 만들어 낸다. 플라프라는 전반적인 글쓰기 운동은 구글 검색 결과 중 최악에 기반을 두는데, 불쾌할수록, 말이 안 될수록, 터무니없을수록 좋다.”(16~17쪽) 이 책(영어판)이 처음 출간된 지 10년 이상 지났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문예 창작의 일반적인 흐름과 거리를 두는 급진적인 사례들이 이어진다. 특히 웹과 함께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현장은 오늘날 다른 땅에 펼쳐져 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하는 지금, 『문예 비창작』의 저자는 (자신이 “비독창적 천재”라는 용어를 빌려 썼던 문예비평가 마저리 펄로프의 말을 또다시 빌려) 이렇게 쓴다. “오늘날의 작가는 고통받는 천재보다는 글쓰기 기계를 멋지게 개념화하고, 구축하며, 실행하고, 유지하는 프로그래머를 닮았다.”(13~14쪽)

비창조적 글쓰기

『문예 비창작』은 이렇듯 아날로그적 방식과 디지털적 방식을 종횡무진하며 비독창적 천재들이 어떻게 비창조적 글쓰기를 실천해 왔는지 다각도로 살핀다. 그러면서 100년 전에 미술계에서 일었던 개념적인 움직임들이, 또 샘플링 등 음악계에서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 현상들이, 왜 문학계의 글쓰기에서는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질타한다.

“나는 기존의 글쓰기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훌륭한 회고록에 감동받은 적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문학이 (그 범위와 표현의 잠재력이 무한함에도) 틀에 박혀 있다고 느낀다. 내가 보기에 문학은 되풀이해 같은 어조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고, 가장 좁은 영역에 자체를 국한하여,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우리 시대의 가장 생생하고 흥미로운 문화 담론에 참여할 수 없는 분야가 됐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심히 슬픈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문학적 창조성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 재활성화하기에 좋은 잃어버린 기회라고 생각한다.”(23쪽)

대학에서 (이 책의 원제인) ‘Uncreative Writing(비창조적 글쓰기)’라는 수업을 진행해 온 저자는 학생들에게 독창성이나 창조성 대신 “표절, 신원 훔치기, 다른 목적으로 다시 쓰기, 짜깁기, 샘플링, 강탈, 도용”을 강권해 왔는데, “놀랍지 않게도 학생들은 잘 해낸다. 그들이 이미 비밀리에 전문가가 된 일이 갑자기 열린 공간으로 나와 안전한 환경에서 탐구되고, 무모함 대신 책임이라는 점 아래 재구성된다.”(25쪽)고 밝힌다. 일정 부분 수업 내용에 기반한 『문예 비창작』은 디지털 시대에 문예 창작을 가르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자신을 증명해 나간다. 웹과 디지털 언어와 글쓰기의 관계를 살피고, 글의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특성을 조명하면서 상황주의와 구체시 운동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포스트정체성 문학으로서 극사실주의 시학을 펼치고, 시각예술의 여러 사례를 분석하면서 콜라주와 패스티시를 넘어선 전유를 문학에 적용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특히 솔 르윗과 앤디 워홀의 생산 방식과 생산량을 주목하고, 베낀다는 행위를 새롭게 바라보고, 읽히지 않되 사유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글쓰기를 논하고, 정보를 다루는 아카이빙의 방식과 역할을 고찰하며, 나아가 기계 스스로 읽고 쓰는 로보시학까지 바라본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 방식이 어느덧 낯설지 않게 된 지금, 『문예 비창작』은 ‘창작’이 아닌 ‘비창작’의 방식으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론을 펼쳐 나간다.

추천사

“멀티미디어 예술가이자 말의 ‘고급 관리자’인 케네스 골드스미스가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위해 내놓은 도발적 선언. 글쓰기를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귀한 아이디어와 기술과 예시가 가득하다.”

— 마커스 분(『복제 예찬』 저자)

“학자의 역작 못지않은 사용자의 설명서.”

— 애들레이드 모리스(아이오와 대학교 명예교수)

“인터넷의 부상이 어떻게 글쓰기에 대한 관념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꿔 놓았는지,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집중하며 급진적 예술 실천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동원한 재치 있고 지적인 글. 예술가이자 비평가로서 흥미진진한 실천을 해 온 케네스 골드스미스의 『문예 비창작』은 작가, 예술가, 문학사가, 매체 이론가 사이에서 활기찬 논쟁을 일으킬 책이다.”

— 시앤 응가이(시카고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소리와 소음, 시와 미술, 글과 말, 재연과 낭독을 두루 관통하며 전위적으로 활동한 이들의 비창조적 작업을 소개한다. 대부분 영어권에 해당하는데, 읽다 보면 어느새 각자의 책장과 컴퓨터에서 한국어로 말하거나 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로도 번역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동안 전 세계적 유행병으로 인해 디지털 환경에서 소통했다.”

— 길예경·정주영(번역가)

“이 혁명적인 책은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창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촉발한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그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서 우리가 이미 행하고 있는 창작 행위의 의미를 새롭게 짚고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도구 상자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 임경용(출판인)

“『문예 비창작』은 말한다. 전유하고 모방하고 약탈하고 복사하고 붙여 넣고 배치하고 인용하고 다시 쓰고 공유하라. 그렇게 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진실 따위는 없다는 진실을, 독창성이란 환금화가 용이한 가상 자산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진짜 글쓰기가 시작된다. 진실도, 창조성도, 내면도 없는 텅 빈 황무지 같은 백지에서 고유의 비독창적인 문학이 탄생하는 것이다.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이 과정을 조금의 과장도 없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건대 모든 새로운 글은 새롭지 않으며 모든 새롭지 않은 글은 유일하다.”

— 정지돈(소설가)

“창작과 비평과 편집이 하나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책.”

— 김뉘연(시인, 편집자)

발췌

작가 경력과 문학의 정전은 전통적 방식으로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학작품은 오늘날 웹상에서 밈(meme)이 작동하는 방식과 같이 기능할 수도 있다. 단어, 사진, 하이퍼링크, 해시태그 등으로 이뤄진 밈은 삽시간에 퍼지고, 종종 서명도 없고 저자가 밝혀지지 않으며, 다음 물결에 밀려난다. 작가가 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저자성은 개념적 방법으로 사유될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가장 뛰어난 저자는 가장 뛰어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시인 크리스천 북이 주장한 대로 미래의 시는 기계가 쓰고 다른 기계가 읽게 될 것이라 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는 누군가 몰래 그런 무인기(드론)를 발명할 것이다. 그래서 문학이 단지 코드로 축소된다고 해도, 실은 멋진 생각인데, 배후의 지성들이 가장 위대한 작가로 여겨질 것이다.(29쪽)

문예에 관한 전통적 개념이 주로 ‘독창성’과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디지털 환경은 기존의 언어와 나날이 늘어나는 엄청난 양의 언어를 ‘조작’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능력을 기르도록 만든다. 오늘날 작가는 글의 급증을 상대로 ‘도전하고’ 주의를 끌기 위해 겨뤄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이런 현상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용해,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 낸 작품만큼이나 표현과 의미가 풍부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34쪽)

우리가 스크린 세계에서 그래픽, 소리, 움직임이라 여기는 것은 한낱 얇은 외피일 뿐이고, 그 아래에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언어가 존재한다. 내가 비행기에서 겪었듯 때로 외피에 구멍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잠시나마 그 덮개 밑을 엿볼 기회를 얻어 디지털 세계 즉 이미지, 영화와 동영상, 소리, 글, 정보가 언어에 의해 작동함을 목격한다.(36쪽)

말라르메가 보여 준 문자의 물질성에서 영감을 얻어 다른 이들도 이를 탐구했다. 열을 맞춰 반복적으로 등장해 시각을 자극하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어든, 에즈라 파운드의 후기 『칸토스』든, 저자들은 20세기를 거치며 계속해서 단어들을 물질적으로 다뤘다.(39쪽)

우리가 이토록 많은 물질성, 즉 유동성, 유연성, 가소성을 지니고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다뤄 주기를 요청하는 언어를 소유한 적이 있었던가? 디지털 언어가 나오기 전에 글은 거의 언제나 지면에 구속된 채로 존재했다. 오늘날에는 디지털화한 언어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용기에 쏟아부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달라졌는가.(50쪽)

구체시는 글자가 겹겹이 쌓여 무리를 이루고 지면 한가운데 자리 잡은 모습 때문에 시보다는 기업 로고에 더 가까워 보였다. 구체시가 시각예술이나 그래픽디자인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실제로 자주 그런 작업으로 오인됐다. 그러나 어떤 때는 형식이 당대를 상당히 앞서고 뛰어난 예견력을 보여 이를 따라잡는 데 여러 해가 걸린다. 구체시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92~93쪽)

그러나 비창조적 글쓰기는 진정으로 대중주의적이다. 왜냐하면 피터먼의 비창조적 글쓰기는 우리가 읽기도 전에 그것이 무엇인지, 즉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정확히 말하며 처음부터 의도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왜? 그리고 이 의문과 함께 우리는 우리를 그 대상에서 떼어내 사변의 영역으로 데려가는 개념의 영토로 이동한다. 우리가 마음 편히 책을 던져 버리고 논의와 함께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즉 비창조적 글쓰기가 환영하는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다. 책은 사고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다. 우리는 독자 됨(readership)을 맡는 것에서 사유자 됨(thinkership)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동한다. 읽기(와 그에 따른 독자 됨)라는 짐을 버리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창조적 글쓰기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단순한) 개념을 이해하면, 지리적 위치, 소득 수준, 교육 혹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이런 글쓰기를 활용할 수 있다. 비창조적 글쓰기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157~158쪽)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르윗은 우리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깨닫게 한다. 항상 독창적이고, 새롭고, 중요하고, 심오한 말을 하려고 애쓰다가 거대한 난관을 맞이하는 걸 보면 작가들은 아마도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이리라. 르윗은 우리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완벽한 기계를 만들고 그것을 가동시킴으로써, 작업 방법 스스로 창조한다. 그리고 결과는 그 기계의 품질을 반영할 것이다.(218쪽)

워홀의 모든 작품은 비창조성이라는 개념에 기반한다.(219쪽)

1962년의 한 인터뷰에서 워홀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내가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기계가 되고 싶기 때문이고, 내가 무얼 하든 또 무얼 할 때 기계처럼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236쪽)

북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언어에 길을 터 줘 언어가 그 자체를 온전히 표현하도록 했다.(276쪽)

감사의 글
서문

1 글의 역습
2 물질로서의 언어
3 불안정성을 예측하기
4 극사실주의 시학을 향해
5 왜 전유인가?
6 오류 불가능한 과정: 글쓰기가 시각예술에서 배울 수 있는 것
7 『길 위에서』 타자 필사
8 새로운 비가독성 구문 분석하기
9 데이터 클라우드에 파일 배포하기
10 기록 목록과 주변적인 것
11 교실 속의 비창조적 글쓰기: 반(反)오리엔테이션
12 잠정적 언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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