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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체: 탈네모틀 한글의 기원

PROTOFORM: ORIGINS OF UNSQUARED HANGEUL

  • 최성민 지음
150 × 210밀리미터 / 256쪽 / 사철 소프트커버 / 2025년 4월 24일 / ISBN 979-11-94232-12-4 03600
  • 박활성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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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와 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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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어쓰기
  • 타자기

원래 가격: ₩30,000.현재 가격: ₩27,000.

품절

원형체(Protoform)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조영제가 1976년 발표한 짧은 논문에서 영감을 받아 슬기와 민(최슬기, 최성민)이 디자인한 서체다. 이 책은 한글 표현법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고 합리적인 형태를 추구한 조영제의 연구에서 출발해, 지금은 주로 서체 스타일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는 탈네모틀 한글의 기원과 그 함의를 탐구한 결과물이자 활자체 표본집이다.

탈네모틀 한글의 초기 역사

탈네모틀 한글의 뿌리는 근대 인쇄술과 타자기가 한반도에 도입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한글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지만, 주시경을 비롯한 일부 학자는 더 근본적인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낱자를 음절 단위로 묶지 않고 라틴 알파벳처럼 일렬로 배열하는 ‘풀어쓰기’ (ㅍㅜㄹㅇㅓㅆㅡㄱㅣ) 방식이었다. 기술적 제약으로 초기 한글 타자기에서 모아쓰기에 가까운 서체를 구현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겠지만, 풀어쓰기에는 한글을 개량하고 현대화하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일반인이 보기에 생소했던 풀어쓰기는 결국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잊히고 말았다. 이후 타자기를 통한 한글 기계화는 이원익, 송기주 등의 초기 발명을 거쳐, 특히 한국전쟁 이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시제품이 수십 대 팔리는 데 그쳤지만 1968년에 이르면 누적 판매량이 6만 2천 대에 다다랐을 정도다. 이후 널리 알려진 공병우 박사의 세벌식 타자기와 김동훈의 다섯벌식 타자기를 거쳐, 1969년 두 방식을 절충한 네벌식이 한국 표준 자판으로 지정되었다.

한글 타자기의 발전과 그를 둘러싼 논쟁에 디자이너가 응답한 것은 서서히 전문 직종으로 진화해 나가던 197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1976년, 타자기의 발전에서 한글을 더욱 효율성 있게 개혁할 가능성을 본 조영제는 자신이 재직하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술지 『조형』 1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새로운 한글 구조를 이용한 세 가지 서체 표본을 선보였다. 논문에서 그는 탈네모틀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모듈식으로 구성된 그 글자들은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정사각형 틀에서 확연히 벗어난 형태를 취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제안을 보완하기 위해 홀자의 유형을 통일하는 철자법 개정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맡게 된 슬기와 민은 이 의뢰를 평소 염두에 두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 탈네모틀의 기원을 탐구하는 한글 서체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원형체다.

폰트 형식으로 쓰인 대체 역사 소설

1980년대 이후 탈네모틀 활자체는 이상철, 안상수, 석금호, 한재준 등 후대 디자이너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한글 표현법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고 합리적인 형태를 찾고자 했지만, 동기와 정당화 논리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조영제가 영문 타자기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한글 타자기와 비교하며 선진화를 위해 디자인을 수단 삼아 문물을 개량하려는 개발 근대화론을 따른 결과 탈네모틀 한글에 이르렀다면,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은 주로 한글 고유의 자질을 복원하는 데 방점을 두면서 탈네모틀 활자를 개발했다.

원형체가 다른 탈네모틀 한글과 구별되는 측면 역시 그 동기에서 비롯한다. 최성민은 탈네모틀이 한글 창제 이념의 구현을 중시하는 전통적 민족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지난 세기에 특히 유럽에서 개발된,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도 개발되었을 법한 의미 중심 디자인 접근법과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탈네모틀 한글의 역사가 특정 민족이나 문화적 맥락을 넘어 현대성 자체에 대한 폭넓은 논의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슬기와 민이 “폰트 형식으로 쓰인 대체 역사 소설”이라고 부르는 원형체 개발 작업은 탈네모틀 한글의 초기 역사에 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머지않아 한글 조합 체계의 보편성을 실험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결과적으로 다섯 가지 굵기와 밑줄 변형체로 이루어진 폰트 패밀리로 완성되었다.

후대 탈네모틀 계열 활자체에서 더해진 시각 보정이나 양식적 변형을 일체 배제하고 순수한 합리적 서체의 특색을 보존한 원형체는, 탈네모틀 한글이 초기에 지녔던 ‘이념’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아가, 한글 음절 구조에 기반한 삼단 격자를 통해 라틴 알파벳 문자가 얼마나 생소한 형태로 그려질 수 있는지도 보여 준다. 만약 20세기 초반 주시경, 최현배 등이 주창한 풀어쓰기가 받아들여졌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1948년 문교부는 풀어쓰기가 이상적인 표기 방식임을 시사한 바 있으며, 1958년 국어심위회는 풀어쓰기를 포함한 철자법 개혁을 고려하기도 했다. 만약 1976년 조영제의 연구가 널리 알려지고, 활자체를 만드는 이들이 그 이념을 자신의 작업에 일부라도 반영했다면? 어쩌면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글자는 원형체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발췌

탈네모틀 한글의 뿌리는 20세기 초부터 일어난 한글 합리화와 현대화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미적 효과는 주된 관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탈네모틀 서체는 초기에 많은 사람이 내비친 거부감을 무릅쓰고, 타자기나 디지털 문자 인코딩 같은 글쓰기 기술을 최적화하려는 목적에서 꾸준히 개발되었다. 나아가, 탈네모틀 한글에 관한 논쟁은 중국과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 문자의 독자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에서 영향받기도 했다. (49쪽)

타자기의 발전에는—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에는—한국인의 생활에 관해 깊은 함의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디자인계 전문가들이 이에 응답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디자이너 가운데 한글의 기계화에 관심을 보인 인물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듯한데, 조영제(1935~2019년)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타자기의 발전에서 한글을 더욱 효율성 있게 개혁할 가능성을 보았다. (69쪽)

조영제가 인식한 것처럼, 홀자가 두 유형으로—세로 홀자와 가로 홀자로—구분되지 않는다면 글자 구성은 훨씬 단순해졌을 것이다. 초성 아래에는 가로 홀자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있는데, 홀자가 세로형이어서 초성 닿자 밑이 아니라 오른쪽에 붙는 경우에는 그 부분에 어색한 공백이 생긴다. 조영제가 세로 홀자 높이를 가로 홀자의 두 배로 설정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초성과 받침 사이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중 홀자 체계는 아마 조영제에게 상당한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는 홀자 유형을 통일하는 철자법 개정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79쪽)

어떤 면에서, 조영제의 논문은 한국 학자나 기술자의 한글 기계화 연구뿐 아니라 20세기 전반부에 유럽 아방가르드 디자이너가 내놓았던 급진적 제안들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공통점이 가장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시각적 표본이다. 필기 흔적을 제거하고 자와 컴퍼스를 이용해 기하학적으로 그린 단선적 형태는 요스트 슈미트, 헤르베르트 바이어, 얀 치홀트 등이 전간기에 내놓은 실험적 서체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두 작업은 외관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도 공진한다. 예컨대 조영제가 모아쓰기에서 한글 낱자가 다중 변형되는 점을 비판하고 철자법 개정을 주창하는 부분은 현대주의 디자이너가 정확한 음성 철자법과 ‘클라인슈라이붕’(kleinschreibung), 즉 소문자 전용 표기법을 옹호한 예를 연상시킨다. (87쪽)

가설을 하나 세워 보자. 기계적 효율성에 대한 주장 너머에서 탈네모틀 한글의 가치를 성찰할 때 대개는 “한글 창제 이념의 본래적 의미를 계승”한다는 다소 의아한 논리가 호출되곤 하는데, 그보다 형태에 구현된 보편적 현대성에 주목하면, 20세기 디자인의 더 넓고 풍부한 성좌로 탈네모틀 서체의 의의를 확장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이다. (101–103쪽)

조영제는 영문 타자기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한글 타자기와 비교하고 “한글이 영문자보다 적은 24자의 음소문자라고 자랑하고 있으나 그에 못지않은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라고 지적하는 등, 서구 선진국에 뒤떨어진 자국 현실을 개탄하고 디자인을 수단 삼아 자문화를 개량하고자 하는 개발주의적 근대화론의 흔적을 보였다. 이런 인식 틀에서, 재구성된 글자의 생소한 형태는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지만 선진화를 위해서는 치러야만 하는 대가일 뿐이었다. 반면, 새로운 세대 디자이너들은 국가 주도 근대화 캠페인과 긴장을 이루던 민중적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활동했고, 외세 영향을 받아 억압되고 왜곡되었다는 한글의 고유 자질을 복원하는 데 방점을 두면서 탈네모틀 활자를 개발했다. (103–105쪽)

관습이 아니라 의미에 따라 결정되는 형태로서, 들쑥날쑥한 탈네모틀 글자에는 현대 디자인 운동이 표방한 최상의 가치, 즉 명료성과 개방성이 구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개별 낱자가 제 정체성과 존엄성을 보존한 상태로 함께 일하는 모습은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탈네모틀의 기원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111–113쪽)

원형체는 우리가 처음 만든 한글 활자체이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활자체다. 기하학적인 탈네모틀 활자를 본문에 쓰는 일은 여전히 드물지만, 우리는 이 글을 원형체로 짰다. 읽는 데 별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끝내 글을 읽기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를 위해, 안상수의 명구를 인용한다. “심리적 거부감의 구름만 걷히면 가독성도 높아진다.” (209쪽)


에디션: 300부

1–100번 에디션은 2025년 7월 출시 예정인 원형체 폰트 패밀리와 함께 판매됩니다.

원형체 스탠실
https://workroompress.kr/product/218233

 

차례

머리말
탈네모틀 한글의 기원
원형체 표본
원형체 디자인 메모

참고 문헌

조영제의 「한글 기계화(타자기)를 위한 구조의 연구」 (1976년)

최성민
최성민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이다. 저서로 『재료:언어—김뉘연과 전용완의 문학과 비문학』, 최슬기와 공저한 『누가 화이트 큐브를 두려워하랴』 『작품 설명』, 김형진과 공저한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299개 어휘』, 역서로 『리처드 홀리스, 화이트채플을 디자인하다』 『왼끝 맞춘 글』 『레트로 마니아』 『파울 레너』 『현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최슬기와 공역한 『 알파벳의 발명』 『멀티플 시그니처』 등이 있다.

슬기와 민
원형체를 디자인한 슬기와 민(최슬기, 최성민)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인 팀이다. 2005년부터 여러 국내외 미술관, 작가, 기획자와 협력해 출판, 홍보,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그들의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홍콩 M+, 뉴욕 쿠퍼 휴잇 디자인 미술관, 파리 장식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트 미술관 (LACMA) 등에 소장되어 있다. 원형체슬기와 민이 처음 발표하는 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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