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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금 있는 문학

SO LITTLE LITERATURE

  • 강보원 지음
120 × 190밀리미터 / 220 쪽 / 사철 소프트커버 / 2026년 4월 27일 / ISBN 979-11-94232-35-3 04810 / 978-89-94207-87-2(세트)
  • 김뉘연 편집
  • ,
  • 김형진 디자인
  • 비평집
  • 문학
  • 형식

원래 가격: ₩17,000.현재 가격: ₩15,300.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보원의 첫 번째 비평집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은 문학을 문학의 형식을 통해 바라보고 읽어 낸다. 문학에 필수적인 형식은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도록 이끄는 틀이 되며, 다른 생각이야말로 대화의 출발이 될 수 있기에, 이는 비평에도 필요한 것이 된다. 강보원은 이러한 문학의 형식에 연유하게 되는 것으로서 문학의 내용을 살펴 가며, “잘 들리지 않는” 말의 형식으로서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을 이야기한다.

책의 1부는 ‘비평’이라는 대상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비평의 모습을 부분 부분 드러낸다. 2부는 몇몇 작가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피며 비평적 읽기를 전개한다.

비평의 쓰임과 운명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이란 무엇일까?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이 말하는 문학의 형식을 폭넓게 말하자면 “매체적 조건이나 관습” 등으로, 이러한 형식은 그에 따른 “내용적 지향”을 갖는다. 이는 문학이라는 담론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따라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강보원은 이 “이유 없음”을 오히려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을 주목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없기에 어떠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는 문학, 그렇게 “잘 들리지는 않는 말의 형식 중 하나로서의 문학”, 그것을 강보원은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이라고 말한다.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은 부분적으로 그리 많이 읽히지 않는 책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적게 팔리거나 적게 읽힌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문학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라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 해서 반드시 그 말을 우리 사회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러한 정당성을 특별히 지니고 있지 않고, 지녀야 할 이유도 없지만 어쨌든 잘 들리지는 않는 말의 형식 중 하나로서의 문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는 산발적이고 파편적인 방식으로나마 우리가 그러한 형식과 어떤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했다.” (강보원, 「서문」 중에서)

『아주 조금 있는 문학』 1부의 소제목이 가리키는 “비평의 쓰임과 운명”은 이러한 “아주 조금 있는 문학”에 복무한다. 이 책은 비평을, 나아가 문학을 바라보는 상대적으로 ‘조금 있는’ 관점과 태도를 드러내면서, 비평적 전개를 통해 이 ‘조금 있음’을 남겨 간다. 책을 여는 첫 글 「타협으로서의 비평」은 비평이라는 글쓰기 형식이야말로 타협을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비평이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글에 따르면 비평가는 구분할 줄 모르는 자로서, 다만 구분하기 위한 기준이 결여되어 있음을 생각하는 이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보편성이 없을 때, 즉 누군가의 보편적이지 않은 선택을 접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강보원은 “우리가 타인을 그냥 좀 내버려두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묻는다. 이러한 ‘내버려두기’는 각자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을 자신의 신념과 타협해 가면서, 즉 자신이 일관되지 않은 사람이 되어 감을 받아들여 가면서 이루어진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그 생각” 다시 말해 보편성이라는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도 지킬 수 있는,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각자의 ‘작은 것’. 그것이 타협으로서의 글쓰기인 비평을 통해 얻게 되는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의 부분이다.

이후 펼쳐지는 비평의 여러 국면은 여러 갈래이면서 결과적으로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문학에 대한 결정적인 사랑으로 읽힌다. 강보원은 문학을 둘러싼 모종의 오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러한 오해 내지 비난 혹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문학의 어떠한 속성이야말로 문학을 이루는 핵심임을 설파한다. 문학이 문학이기에 지적받게 되는 속성은 이 책에서 문학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문학의 핵심으로 이해된다. 이를테면 ‘문학성’이라는 말이 그러하다. 문학에 본질적인 혹은 내재적인 ‘문학성’은 문학이 갖는 ‘이질성’이며, “서로 다른 두 담론의 이질성”은 “대화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내재적 문학성”이자 “본질적 문학성”은 문학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된다. 더불어 ‘자가 진단’이라는 말 역시 정당성 없는, 이해될 수 없는 말의 형식으로서 비평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자가 진단으로서의 비평은 “어떤 한 작품을 위해 아직 쓰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쓰일 수 없는 법을 창안”하며, 이 법은 “보편적으로 편파적이며 따라서 어떤 정당성이나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고, 이에 따라 말해진 “사랑” 역시 그러하다. “도대체 문학과 같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 착각” 속에 기꺼이 머물며, “백조가 되는 것을 미루고 지연시키는 날갯짓에 가까울”, 미운 오리 새끼로 착각되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의 ‘비평이라는 쓰기’는 그렇게 자신의 이유 없는 사랑을 향해 간다. 그러면서도 강보원은 (오규원을 따라) 문학을 “할 만한 일 가운데 하나”로 한계 지어 바라보는 태도를 견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문학은 어떤 특정한 생각”이며 “그 생각은 다른 생각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다시 한번 밝혀 둔다.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은 문학과 비평을 향한 여러 오해를 풀어 나가는 지나가는 사랑의 과정이면서, 그럼에도 남아 있는 잔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다가올 사랑의 과정에 열려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이 되지 않는 말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촉발하는 이질성을 사유해 보자고 권한다. 이러한 사유를 위해, 무언가는 풀려야 할 문제이겠지만, 무언가는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을 문학이라는 형식이 우리에게 안기는 질문이자 비평이 쓰이는 방식이고, 그 운명이라고 말해 본다.


『아주 조금 있는 문학』은 워크룸 한국 문학 ‘입장들’의 여섯 번째 책으로, ‘입장들’의 세 번째 책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를 쓴 소설가 정지돈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보원을 추천했다.

워크룸 한국 문학 ‘입장들’

우리가 당면하게 된 이름들.

이상우, 『warp』
정영문,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정지돈,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배수아,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한유주,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
강보원, 『아주 조금 있는 문학』
김유림,
윤해서,
김예령,


발췌

굳이 ‘타협으로서의 비평’이라는 말로 이 글의 제목을 정한 이유는 비평이 아닌 글쓰기가 비타협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비평이 이러저러한 글쓰기의 형식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이 타협을 의식하고 또 그것을 직접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비평에 있어서 타협은 제1의 원칙이자 목표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12쪽)

사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모든 이성적 존재가 지닌 힘에 대한 정당한 느낌”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문학이 있다는 것이다. 문학은 바로 그 정당한 느낌, 인간 전체를 하나로 묶어 주는 영혼—자신 안에도 분명히 있어야 할, 혹은 분명히 있는 그 영혼이 스스로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필요하다. 문학은 형식에 대한 것이며, 형식은 영혼만 가지고서 소통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육체 바깥에 존재하는 영혼, 공유되는 사물로서의 영혼이다. (18쪽)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모두가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그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설득하기를 포기하라는 말을 의미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타협이란 어떻게든 어떤 의미에서의 설득을 포함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것은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22쪽)

무엇 때문에 타협을 할까? 그것은 행위, 즉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타협에서 생존이 주된 목표가 되는 까닭은 아무튼 살아 있어야 무언가 일을 진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원칙을 비타협적으로 고수하는 것이 실은 단순히 행위에 대한 거부에 지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마주친다. (22쪽)

이제 문학과 관련하여 이 점이 암시하는 바는 문학 담론 내부에 어떤 내재적이고 폐쇄적이며, 외부 현실과 소통 불가능한 무엇인가가 없다면 문학을 경유한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리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두 담론의 이질성은 대화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이 갖는 그러한 이질성을, 우리가 그토록 꺼리고 해체하고자 하던 ‘내재적 문학성’ 혹은 ‘본질적 문학성’이 아니라면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34쪽)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총체로서의 문학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로 문학의 내재적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글을 쓰는 이가 하필 문학이라는 장르를 선택해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문학이 그 표현의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주체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전혀 생각할 수 없다면, 문학이란 담론은 그 어떤 대화도 생성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문학은 단순히 자신을 생성하는 현실과 현실적 주체를 단순히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이란 다른 어떤 것이라기보다 단지 그러한 직접적 반영에 저항하는 작인을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본질은 대상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총체성이 아니며, 단지 총체로서의 대상을 이루는 하나일 뿐이다. 요컨대 문학을 이루는 많은 요소 중 그러한 의미의 본질도 아주 조금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금의 요소로 인해 문학은 현실과 전적으로 같지는 않은 무엇인가가 된다. (35쪽)

말하자면 예술은 작가의 생각을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아니다. 실상은 정확히 반대다. 도대체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그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으며,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자 할 때에도 그것이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다.
즉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왜곡 자체다. 매체가 나의 생각과 별도로 그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어떤 생각의 질서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리하여 나의 생각을 왜곡할 그 어떤 편향도 이미 그 안에 지니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과하여 무엇을 표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46~47쪽)

그렇기에 비평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필요하고 딱 맞는 시간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라캉은 주체가 항상 너무 이르거나 이미 늦은 시간에만 도착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체가 정해진 시간에 맞추는 데에 실패한다는 의미보다는,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성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읽혀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비평은 바로 그러한 시간에 속해 있으며, 또 속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아름다운 백조가 되기 전의—미운 오리 새끼의 시간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미운 오리 새끼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비평은 새끼 백조가 오리로 착각되는 시간에, 잘못 붙여진 이름으로서만 지탱되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머문다. 그리고 비평을 쓴다는 것은 백조가 되는 것을 미루고 지연시키는 날갯짓에 가까울 것이다. 사람들의 말처럼 도대체 문학과 같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착각 속에 머물 이유가 있는 것이다. (56~57쪽)

그래서 나는 시적이라는 말과 관련해서 그것의 특성을 실정적으로 말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나는 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사실상 참혹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시도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헛소리를 하지 말 것 2. 거짓말을 하지 말 것 3. 올바른 정서를 가질 것.”(「이 책이 더 많이 대출되기를 바랍니다」) 1번과 2번은 ‘무엇을 하지 말 것’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만 이를 뒤집으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묶어서 표현할 수 있다: 사실일 것.
나는 그것을 ‘맞는 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시적인 문장은 맞는 말을 한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말이 있다. 동어반복은 그 한 예로, 역시 내 생각이지만 시가 동어반복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언제나 맞는 말을 생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맞는 말은 힘이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시적인 문장을 쓰기 어려운 이유이다. 시적인 문장이란 맞는 말이면서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그것은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한다. (99~100쪽)

카프카는 언젠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물론이지. 희망은 충분히 있고 무한히 많이 있다네—그러나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지.” (166~167쪽)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걸까? 가령 나는 어떨까? 아주 사적인 예를 들어도 괜찮다면, 나는 항상 대중을 향해 쓴다고 생각한다(그렇지 않은─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작가들도 분명히 있다). 대중이 쉽게 읽고 재밌어 할 만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나에겐 있다(아마 이 욕망도 어떤 시점에서, 또한 어떤 수준에서는 포기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애초에 그 대중이 지금 이곳에는 없는 대중이라면 어떨까? 말하자면 100년 전의 대중이라면 어떨까? 혹은 100년 후에도, 그 이후에도 결코 존재할 리 없는 내 상상 속의 대중일 뿐이라면? 그런 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 글을 쓴다면 나는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209쪽)

차례

서문

1부 비평의 쓰임과 운명에 대하여
타협으로서의 비평
자가 진단으로서의 비평
미운 오리 새끼로서의 비평
아주 조금 있는 문학
결과로의 환원
시적이라는 말의 쓰임과 운명에 대하여—『별세계』의 시 몇 편을 중심으로

2부 충분히 있고 무한히 많이 있는
마틸드와 함께 김수영을
예외적인 것의 완전한 포기
Quiz. 그래서 이 시의 ‘나’는 앙코르 와트에 입성을 했을까 못 했을까?
모든 것들의 평면—박솔뫼, 『인터내셔널의 밤』
낭만적인 개들—금정연, 『서서비행』
충분히 있고 무한히 많이 있는 희망—정지돈, 『인생 연구』
자가 진단으로서의 소설—김유림, 『갱들의 어머니』
미래가 너무 가까이 있다—김홍, 『엉엉』
그래도 사랑해—민병훈, 『금속성』
만들어진 세계를 사랑하기—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

부록
박탈당할 수 없는 것
독립 출판, 변증법, 패터슨

발표 지면

저자 소개

강보원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완벽한 개업 축하 시』, 산문집 『에세이의 준비』,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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