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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꿈에서 본 모든 것을 꿈꾼다 4: 유년에 대한 의문 3
유운성

2026년 1월 28일 게재

영화를 둘러싼 장소의 안팎을 오가며 영화의 시대가 어떻게 끝나 갔는지 증언하는 책, 유운성 평론가의 『너는 내가 꿈에서 본 모든 것을 꿈꾼다』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 네 번의 연재 이후 단행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오래전의 한 영화 잡지에 실린 기사 하나를 복사한 사진을 앞에 두고 조용히 바라본다. ‘내일의 방화계를 이끌 주역을 찾아서’라는 제목이 달린 이 기사는 『영화잡지』 201호의 52쪽과 53쪽에 걸쳐 수록되었다. 『영화잡지』 201호가 발간된 것은 1980년 5월이다. 그렇다. 광주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다.

이 기사는 독일문화원 중심으로 운영된 동서영화연구회, 프랑스문화원 중심으로 운영된 시네클럽서울, 한양대학교의 영상연구회, 연세대학교의 영상미학반,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영화연구회 얄라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나는 1993년에 얄라셩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이 기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20년이다. 김동빈, 문원립, 홍기선 등 공과대학 재학생 중심으로 얄라셩이 결성된 것이 1979년이고 정식 본부 서클로 등록한 것이 이듬해이니, 이 기사는 서클 초창기의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다. 처음으로 모집 공고를 냈던 이가 이봉원과 김랑이라는 것, 그리고 초기에는 서클 이름이 ‘얄라셩’이 아닌 ‘얄라성’이었다는 사실 등도 확인할 수 있다. [*] 원래 ‘얄라성’은 1979년 서클 창립 당시 이미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던 이봉원이 대표로 있던 극단의 이름이었다. 1947년생인 그는 본문에서 언급한 스필버그, 린치, 워터스와 동년배로 영화연구회 얄라셩의 창립 회원인 김동빈, 문원립, 홍기선 등보다 열 살 정도 많다. 1986년에 그는 이태원이라는 예명으로 연출한 장편영화 「엘리베이터 올라타기」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1987년에 개봉한 두 번째 장편영화 「내일은 뭐할거니」의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얄라성 창립작품’이라고 표기돼 있다. 그는 ‘Yalra Yi’라는 유튜브 채널에 자신이 연출, 제작했거나 극본을 집필한 영화 및 방송물 등을 업로드하고 있다(www.youtube.com/@yalrayi5779).

“서울대 공대생만으로 조직된 다소 특이한 클럽으로 ‘얄라성’ 극단에서 연극을 하던 이봉원(현 현진영화 총무부장) 씨와 김랑(현 합동통신 기자) 등이 79년 4월 서울대 학사 신문에 광고를 내어 회원을 모집 79년 6월 공대생 6명이 모여 클럽을 결성하게 되었다. 불란서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영화감상을 해왔으며 이와 병행해서 영어영문서적 강독, 영화 분야별 주제 발표회 등을 가져 영화이론의 기반을 다져왔다. 작년 10월에는 창경원 소개 「겨울의 문턱」이란 영화를 직접 제작, 이론에만 치우치는 회의 성격을 보완하였다. 올해의 활동 계획은 1) 써클로서 정식 등록을 하고 신입생을 대거 모집하며 2) 1주일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갖고 3) 방학 중에 회원 전원이 참가하는 워크샵을 추진하며 회원의 개인 영화제작도 이와 병행한다. 현재 회원은 8명이며 회장은 김동빈(조선공학과 3년).”

이 기사는 2020년 11월 20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지하 학예연구관과 함께 동국대학교 연구실로 찾아뵈었을 때 문원립 선생께서 꺼내 보여 주신 스크랩북에 있던 것이다. 문원립은 얄라셩 초기 회원 가운데 훗날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김동빈, 김홍준, 박광수, 송능한, 홍기선 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각양각색의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와 고전 영화 및 예술영화 상영회 등이 20세기 후반부터 대대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었는지를 (가령, ‘행위자–연결망 이론’의 교훈을 따라) 추적해 보는 이라면 그의 이름을 지나쳐서는 안 될 터다. 그는 지금도 쓰이고 있는 뛰어난 자막 영사 프로그램 큐타이틀(QTitle)의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가 35mm 필름으로 상영되던 때에, 영화 사운드트랙의 대사 부분과 자막 타임코드를 동기화하고 영화 상영 중 필름 릴이 교체 [*] 상영시간이 두 시간인 장편영화의 경우 대략 35mm 필름 릴 여덟 개 내외에 담긴다고 보면 된다. 릴을 원활히 교체하기 위해 영사기 두 대를 나란히 비치해 두고, 영사기사가 릴을 교체해야 하는 시점을 가늠할 수 있도록 릴 각각의 말단 부근에 위치한 프레임 구석에 동그라미표나 가새표 등으로 스크래치를 내서 표시해 두기도 했다. 될 때마다 대사와 자막을 손쉽게 재동기화할 수 있도록 한 큐타이틀은 영화제와 시네마테크 운영에 필수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외국 영화들은 대여한 35mm 프린트에 담겼기에 그 위에 한글 자막을 직접 입히기도 곤란했고, 그렇다고 1–2회 상영을 위해 프린트를 구매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1998년 큐타이틀 프로그램이 나오기 한 해 전, 당시 갓 출범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개발해 활용한 판타캡션(FantaCaption)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개발한 최초의 자막 영사 프로그램인 이것 또한 문원립이 관여해 나왔다.

그렇다면 이들 프로그램이 있기 전에 영화제에서 외국 영화를 상영할 때 자막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다. 파워포인트 같은 프로그램을 써서 모든 자막을 1천여 개에 달하는 페이지에 나눠 미리 입력해 두고, 영화 상영 중 대사가 나올 때마다 일일이 수동으로 엔터 키를 눌러 자막을 스크린에 (또는 스크린 하단이나 옆에 설치된 전광판이나 모니터에) 비추는 방식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스크린 옆에 마이크를 들고 서서 대사가 나올 때마다 관객에게 한국어로 들려주는 것이다. 가령, 나는 필리핀의 거장 리노 브로카의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를 이처럼 실시간 통역(이라기보다 번역문 낭독)으로 처음 보았다. 이런 이유로, 판타캡션이나 큐타이틀 같은 프로그램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35mm 필름 상영이 주를 이루었던 21세기 초반에 한국에서 영화제나 상영회가 활성화되기는 대단히 어려웠을 터다.

판타캡션 프로그램 메인 화면.

『영화잡지』 201호의 기사로 돌아가자.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던 역사의 지체자인 나는 이 기사가 1980년 5월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저 끌리는 사람이다. 이런 식의 단순함은 진정 역사적인 것으로 향하는 인식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알기는 알지만, 그럼에도 끌린다. 이게 바로 몸의 의지라는 거다. 내가 대학 시절의 상당 부분을 보냈던 서클의 초창기 회원들은 내가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 광주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을까? 이런 물음이 나를 역사로 이끌어 줄까?

나는 문원립 선생을 찾아뵙기 열흘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실에서 만나 뵈었던 김홍준 감독, 박광수 감독 두 분께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김홍준은 1978년 4월에 입대해 1980년 7월까지 군에서 복무했는데, 1979년 말에 얄라셩에 가입한 경기고등학교 동창생인 황주호를 통해 이미 서클 사람들과 알고 지내던 터였다. 그는 1980년 5월 17일에 군대에서 외출을 나왔다가 비상계엄 확대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창립 회원 가운데 한 명이자 초대 회장인 홍기선은 이때는 입대해 군 복무 중이었고 1982년에야 제대할 터였다. 박광수가 서클에 가입한 것은 1980년 가을이라 이때는 아직 활동하기 전이었다. (그가 가입할 때 면담자는 제2대 회장을 맡고 있던 김동빈이었다.) 이미 졸업한 상태였던 문원립은 주 1회 정도 서클에 방문해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런 사정과 『영화잡지』 기사 내용을 고려하면 1980년 5월 얄라셩 서클 룸은 적이 한산한 편이었을 거다. 그 한산한 서클 룸에 모인 대학생들은 어떤 영화들을 보고 있었을까? 무궁화문고나 서울동화가 만들어 내는 ‘국책 서브컬처’는 나 같은 지방 출신 코흘리개들의 불량 식품쯤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청년들은 과연 어떤 영화들을 열망했을까?

『영화잡지』 기사 왼쪽 하단에 누군가 손으로 써서 붙여 둔 메모 하나가 눈에 띈다. 아마 서클 룸의 게시판에 붙여 두었던 것이리라.

“스웨덴” 영화 ─ 꼭 봅시다
잉그마르 베르이만 감독, 흑백 film

제7의 봉인 (’57년 작, 96분): 22(화)~28(월)
여름밤은 세 번째 미소한다 (’55년작, 108분): 29(화)~5/5(월)
산딸기 (’57년작, 90분): 6(화)~12(월)

* 토・공휴일은 안 함
* 매일 1시, 4시 2회 상영
* 장소 – 영화진흥공사

이 메모는 1980년 4월부터 5월까지 당시 남산에 자리해 있던 영화진흥공사(현재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열린 잉마르 베리만 상영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상영회라고는 하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한 작품을 매일 두 차례 상영하는 형식이었으니 작은 규모로 ‘개봉’한 것이나 다름없다. 메모 오른쪽에는 얄라셩 회원들이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자 하는 날짜가 적혀 있고, 1980년 5월 2일 금요일 4시 「여름밤의 미소」(상영 당시 제목은 ‘여름밤은 세 번째 미소한다’) 상영 후에는 정기 모임을 갖는다고 되어 있다.

문원립 선생의 스크랩북에서 이 메모를 보았을 때, 나는 1993년 봄, 얄라셩에 가입해서 비로소 보게 되었던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을 떠올렸다. 한국어로 더빙해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을 누군가가 녹화해 둔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화면 구석에 있었던 KBS 로고가 기억나서 옛 신문을 찾아보니 1981년 2월 17일 화요일에 KBS2에서 방영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본 베리만 영화였다. 「제7의 봉인」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는 화질은 조악하지만 한글 자막이 입혀져 있던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즈카: 제2요새의 사람들」과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과 두산 마카베예프의 「연애 사건, 혹은 체신국 직원의 비극」 같은 영화들, 그리고 1980년대 한국 비제도권 영화 운동의 ‘유물’들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었다.

1980년대 학번 중심으로 얄라셩이 본격적으로 정치화된 이후인 1984년에 나온 「불청객」, 「얼어붙은 땀방울」, 「민주화투쟁 25년」, 「이 땅의 갈릴리 사람들」 등의 작품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도 기억이 난다. 얄라셩에 가입해 처음 이 영화들을 접했을 때, 역사의 지체자인 나는 그 영화들이 지니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사진 자료 및 보도 기사, 그리고 기록 필름과 결합해 재구성한 「민주화투쟁 25년」, 방배동 철거민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이 땅의 갈릴리 사람들」 등은 이후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소재와 양식을 선취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이 영화들을 언급했을 때, 「상계동 올림픽」과 「명성, 그 6일의 기록」의 김동원 감독은 「이 땅의 갈릴리 사람들」을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혹시 얄라셩 서클 룸에 아직 남아 있을까? 2024년 봄, 일정이 있어 오랜만에 서울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새로운 건물이 몇 있기는 해도 대부분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Upside Down)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원풍경에 해당하는 쪽이 과거의 풍경인지 현재의 풍경인지, 내가 뒤집힌 세계로 진입한 것인지 거기서 탈출한 것인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일정을 마치고 난 후, 문득 생각이 나서 학생회관 3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클 룸 문은 잠겨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유운성
영화 평론가.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사 및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후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으로 일했다. 2016년 비정기 영상 전문지 『오큘로』를 창간해 현재까지 공동 발행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 『유령과 파수꾼들』(2018),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2021), 『식물성의 유혹』(2023), 『물듦』(2025)이 있고, 조너선 크레리의 『지각의 정지』(2023)를 번역했다. 2025년 제4회 정점식미술이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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