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전환기에는 과거의 세기들이 호출되기 마련인데, 2000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1900년 스타일』(Style 1900)이나 아르누보는 미술관 전시와 학술 서적들을 통해 맹렬한 기세로 복귀해 왔다. 아주 먼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운동은 ‘총체 예술’(Gesamtkunstwerk), 혹은 예술과 공예의 ‘통합’을 다짐하며 건축에서 재떨이에 이르는 모든 것을 화려한 장식의 대상으로 삼았다. 디자이너들은 마치 이런 수공예적 방식으로 사물을 살게 하는 것이 어떻게든 산업적 물신화의 진전에 대항하는 방법인 것처럼 생동하는 선으로 모든 종류의 사물에 자신의 주체성을 각인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1920년대 기계 미학이 기세를 떨치게 되자, 아르누보는 더 이상 ‘새롭지’(nouveau) 않았다. 이후 아르누보는 수십 년간 서서히 한물간 양식에서 통속적(campy)인 스타일로 변모해 갔으며, 그 후로는 반쯤 죽은 상태로 목숨을 연명해 나갔다. 그런데 최근 이렇게 아르누보의 출몰 현상이 줄을 짓는 가운데 놀라운 점은, 그것이 현재와 아주 강하게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즉 분야의 경계가 흐릿한 시대, 사물이 ‘주체의 분신’(mini-subject)으로 여겨지는 시대, 토털 디자인의 시대, ‘2000년 스타일’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직감 말이다.
근엄한 파사드를 설계했던 빈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아르누보의 심미적 혼성성을 다룬 뛰어난 비평가였다. 건축계에서 그는, 예를 들어 같은 시기 음악에서 쇤베르크,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 저널리즘에서 카를 크라우스가 했던 것처럼 오염된 것, 과잉된 것들을 처벌하는 가혹한 존재였다. 이런 점에서 아르누보 디자이너를 피부에 문신을 새긴 ‘파푸아인’이나 벽을 더럽히는 아이와 결부시킨 그의 글 「장식과 범죄」(1908)는 가장 냉혹하고 신랄한 비평문이었다. 로스에게 아르누보의 장식적 디자인은 에로틱하고 퇴폐적이었으며, 승화와 구별, 정화를 위한 문명의 온당한 행로에 대한 역행이었다. 따라서 그가 ‘장식과 범죄’를 연결시키며 “문화의 진화는 공리주의적 사물의 장식 제거와 동의어”라는 악명 높은 공식을 주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주 1) 이러한 반(反)장식에 대한 명령은 확실히 모더니스트들이 외는 주문이 되었으며, 후에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로스 같은 모더니스트들을 지탄했던 것도 그런 말들에 각인되어 있는 엄격한 규범 탓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시대가 다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순수와 규범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지지 않고도, 실천들 간의 구별을 복구하거나 리메이크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스가 아르누보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장식과 범죄」가 출간되기 10년 전이었다. 1900년 그는 “어느 것이나 모조리 예술”을 불어넣기 위해 아르누보 디자이너를 고용한 “가엽고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우화적인 풍자를 통해 날카로운 공격을 가한다.
“각 방은 그 자체로 완벽한 색채의 교향곡을 이뤘다. 벽이며 벽지, 가구 등을 비롯한 모든 물건들은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졌다. 모든 가재도구에게는 각각 특정한 위치가 부여됐으며, 서로 최고의 조합을 이루도록 묶였다. 건축가는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그러니까 재떨이, 식기 세트, 전등 스위치를 비롯한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주 2)
이 총체 예술은 그저 건축과 미술, 공예를 결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체와 객체를 뒤섞었다. “소유주의 개성은 모든 장식, 모든 형태, 심지어 못 하나에서도 표출되었다.” 아르누보 디자이너에게 이는 완벽함을 뜻했다. “당신은 완전합니다!” 그는 환호하지만 정작 부자는 확신이 없다. 이러한 완전함은 그의 “골치를 썩였다.” 그의 아르누보 인테리어는 현대의 스트레스를 푸는 안식처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스였다. “그 행복한 남자는 갑자기 깊고 깊은 불행을 느꼈다. (···) 그는 이제 미래의 모든 삶과 분투, 발전, 욕망을 잃게 되었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의 주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셈이 아닌가. 사실 그랬다. 그는 끝장난 것이다. ‘그는 완전하다!’”
아르누보 디자이너에게 이런 완전함은 예술과 삶을 재결합하고, 모든 죽음의 징후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반면 아돌프 로스에게 한계를 극복한 이런 승리는 파국적인 상실이나 다름없었다. 즉 “미래의 삶과 분투, 발전, 욕망”을 규정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인 제약들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한성의 상실은 죽음에 대한 초월은커녕 일상 속의 죽음을 뜻하는데, “자신의 주검과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정말이지 거기에 딱 들어맞는 궁극적인 비유였다.
그것이 바로 이 “가엽고 어리석은 부자”의 문제점이다. 차이나 구별이 결여된 완전함 속에서 그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곧 또 다른 빈의 논객이자 위대한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이 썼듯) 특성 없는 남자가 된다. 1912년 크라우스는 특유의 간결하고 함축적인 글을 통해 이것을 “미래의 모든 삶과 분투, 발전, 욕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차이의 결핍, 즉 ‘활동 여지’(running-room)의 결핍이라고 불렀다.
“아돌프 로스와 나는—그는 문자 그대로, 나는 언어학적으로—그저 단지와 요강은 다르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문화에 활동의 여지(Spielraum)를 제공하는 것은 이러한 구별 짓기란 것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다른 낙관적인 사람들은 (즉, 이런 구별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단지를 요강으로 쓰는 사람들과 요강을 단지로 사용하는 사람들로 나뉜다.”(주 3)
여기서 “단지를 요강으로 쓰는 사람들”이란 공리주의적 사물(요강)에 예술(단지)을 불어넣기를 원하는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이고, 그 반대의 무리는 공리주의적 사물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를 원하는 기능주의 모더니스트들이다(몇 년 후 마르셀 뒤샹은 고장 난 소변기 「샘」(Fountain)을 예술 작품으로 발표함으로써 양쪽 모두를 능가하지만, 이는 또 다른 이야기다). 크라우스에게 양쪽의 실수는 대칭적이었다. 모두 사용가치와 예술 가치를 혼동하며, 사물을 구별 짓지 않는 퇴행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똑같이 삐뚤어져 있다. 그들은 진보적인 주관성과 문화 형성을 허용하는 ‘활동 여지’를 위해 객관적인 제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로스가 아르누보의 토털 디자인뿐 아니라 그 가당치 않은 주관주의(“심지어 못 하나에서도 표출되는 개성”)에 반대하는 이유다. 로스와 크라우스는 모두 예술 본연의 ‘본질’이나 문화의 절대적인 ‘자율성’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다름을 만들어 내는 ‘구별 짓기’나 ‘활동의 여지’라는 잠정적인 공간을 통해 이를 설파했다.
이 진부한 논쟁은 미적인 것과 공리적인 것이 서로 융합할 뿐 아니라 둘 다 상업 속으로 포섭되는 오늘날 새로운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요즘에는 건축 프로젝트와 미술 전시는 물론이고 청바지부터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디자인’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아르누보 디자이너가 전성기를 맞은 후, 그다음 모더니즘의 영웅은 기술자로서 미술가, 혹은 생산자로서 작가였다. 그러나 이 영웅은 결국 그가 의지했던 산업적 질서로 인해 무너졌으며, 디자이너가 다시 우리의 소비주의 세계를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디자이너는 과거의 디자이너와 매우 다르다. 아르누보 디자이너는, 발터 베냐민의 말처럼, 건축과 예술에서 현대적인 콘크리트, 주철 따위가 그 “형태를 되찾기”를 그 역시 추구할 때조차도 산업의 효과에 저항했다.(주 4) 현대의 디자인에는 그러한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탈산업 시대의 기술에 기뻐하고, 디자인을 조작하기 위해 흔쾌히 건축과 예술의 준자율성(semi-autonomy)을 희생시킨다. 더욱이 디자이너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훨씬 넓어졌다. 그들은 (마사 스튜어트부터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매우 다양한 기업들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사회 집단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오늘날에는 디자이너로 비춰지거나 디자인이 되기 위해 더럽게 큰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 문제의 제품이 당신 집이든, 당신 사업이든, 당신의 처진 얼굴이든(디자이너 성형), 당신의 굼뜬 성격이든(디자이너 약품), 당신의 역사적 기억이든(디자이너 박물관), 혹은 DNA의 미래든(디자이너 아이) 상관없는 것이다. 이 ‘디자인된 주체’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그렇게 과시하는 ‘구축된 주체’(constructed subject)의 계획에는 없었던 자식일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당신이 소비주의의 순환 고리가 자기도취적 논리로 인해 더 이상 조여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디자인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충분한 ‘활동 여지’ 없이도 생산과 소비라는 완벽에 가까운 순환을 사주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토털 디자인의 세계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며 반박할 수도 있다. 미적인 것과 공리적인 것이 상업적으로 융합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프로그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이다. 그들이 옳을 수도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오래전에 주장한 대로 제1차 산업혁명이 물질 생산을 위한 합리적 이론, 즉 정치경제학 분야를 마련했다면, 제2차 산업혁명은 바우하우스가 양식화한 것처럼 “디자인의 이름으로 (···) 이 교환가치 시스템을 기호와 형태, 사물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켰다.(주 5)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바우하우스는 상품의 정치경제학에서 기호의 정치경제학으로 향하는 질적 도약을 알렸다. 상품과 기호는 우리 시대에 보다시피 ‘기호 교환가치’를 지닌 이미지-상품으로서, 하나처럼 순환될 수 있도록 서로의 구조를 개조했다.
물론 일부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던 바우하우스 선생들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이는 종종 역사의 계략 속에서 (T. J. 클락이 예전에 표현한 것처럼) “모더니즘의 악몽”이 되었다.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하라는 옛말처럼,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자면 오직 한 가지 모더니즘 도덕률만 작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뒤틀린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예만 들자면, 삶과 예술을 다시 연결하려는 그 진부한 프로젝트는 아르누보, 바우하우스, 기타 많은 운동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지를 받으며, 마침내 달성되고야 말았다. 아방가르드들의 자유주의적 야심이 아닌 문화 산업이라는 스펙터클한 지령에 따라 이뤄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이런 왜곡된 형태의 영합의 주인공이 바로 디자인이다.
그래, 맞다. 아르누보가 상상하고, 바우하우스에 의해 재편되었으며, 이후 유사 기관이나 상업적 짝퉁들을 통해 멀리 퍼져나간 토털 디자인의 세계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달성된 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범자본주의 시대인 듯하다. 그 이유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예전의 대량생산 체계에서 상품은 그 자신이 이데올로기였다. 즉 포드의 T 모델은 그 자체가 광고였다. 상품의 핵심적인 매력은 그 풍성한 동질성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곧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했고, 그들의 피드백이 생산에 반영되었다.(이는 현대 디자인 기원의 한 장면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별한 매력이 고안되어야 했고, 거의 상품만큼이나 포장이 중요해졌다(상품의 주체화는 이미 유선형 디자인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그 후에는 항상 초현실적이 되었다. 실제로 초현실주의는 광고에 의해 재빨리 차용되었다). 우리는 이런 질적 도약의 시대에 역사적인 목격자인 것이다. 후기포드주의의 “유연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 생산 체제에서 상품들은 계속해서 수정되며, 시장은 끊임없이 틈새를 찾아낸다. 덕분에 상품은 양적으로 대량일 뿐 아니라 최신이고, 개인적이며, 정밀해질 수 있다.(주 6) 오늘날의 제품은 욕망을 반영할 뿐 아니라 이를 특화시킨다. ‘이봐요, 그게 나예요’라는 식의 자가 질문서가 카탈로그와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을 반긴다. 소비자들의 분신(mini-me)에 관한 이런 끊임없는 상품의 정보 수집은 디자인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한 요인이다. 그러나 환경이 바닥을 드러내거나, 시장이 붕괴한다면, 혹은 전 지구적으로 산재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파업을 일으켜—이제는 편리하게도 상당 부분 우리의 시야 밖에 소재한—이 상품-기계가 산산이 부서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포장이 제품을 거의 대체하면서 디자인 역시 부풀려진다. 영국의 젊은 미술을 디자인하든, 대통령 후보를 디자인하든 주의력 결핍의 대중을 상대로 제품 이름을 브랜딩 하는 ‘브랜드 자산’은 많은 사회 영역에서 기본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상품이 사물이 아니라면 소비자의 관심과 이미지 정체(image retention)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거대한 합병으로 나타난 새로운 초대형 기업들이 자신들의 머리글자나 로고 말고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던 레이건-대처 시절 명백해졌다.
특히 경제 침체기였던 조지 부시 1세 시절, 이러한 브랜딩은 생산성과 수익성이라는 현실 말고도 주식 가치를 지탱하는 한 방책이었다. 더욱이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은 기업 인지도 그 자체만으로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닷컴 기업들에게 이런 브랜드 자산 가치는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최근 축출된 가상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이런 적자생존의 결과에서 기인한 것이다.
디자인이 과잉된 세 번째 이유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디어 산업의 비중 증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요인은 명백한데, 너무나 명백해서 보다 근본적인 발달을 흐려 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전반적인 ‘조정’(mediation)이다. 나는 이 용어를 ‘마케팅 문화’ 혹은 ‘문화 마케팅’ 이상의 의미로 사용했다. 즉 디지털화와 전산화를 둘러싼 경제의 재편성을 뜻한다. 여기서 제품은 더 이상 생산을 위한 사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만큼 조작되기 위한 정보가 중요해진다. 즉 디자인되고, 다시 디자인되고, 소비되고, 다시 소비되는 정보 말이다. ‘조정’은 또한 더 이상 디자인이 부차 산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점으로까지 디자인을 부풀린다. 어쩌면 우리는 ‘디자인의 정치경제학’을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짐작 중 일부는 1980년대 후반 잡지 『존』(Zone)과 몇몇 출판물을 통해 명성을 얻은 캐나다 디자이너 브루스 마우의 프로젝트 개요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을 대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다. 고전적이면서 선두적인 철학과 역사를 보여 주는 일련의 성공적인 출판물과 함께 그는 소위 ‘브루스 마우 디자인’이란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화려한 색의 이미지로 이뤄진 감미로운 표지, 독창적인 폰트와 함께 영화적 시퀀스를 보여 주는 페이지들이 차곡차곡 쌓인 그의 디자인은 북아메리카 출판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끔씩 그의 책들은 스캔받을 요량으로 디자인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이프 스타일』에서 거듭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책을 지적 매체를 넘는 하나의 디자인 구축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주 7)
『라이프 스타일』에서 마우는 렘 콜하스의 책 『S, M, L, XL』(1995)를 따른다. 이는 렘 콜하스의 건축 프로젝트들을 다룬 방대한 분량의 모노그래프로서 마우가 디자인을 도와준 책이기도 하다.(양쪽 모두 일종의 커피 테이블 책이다. 책 자체가 커피 테이블이니 말이다.) 콜하스는 재치 있는 제목을 통해 주택부터 도시에 이르는 다양한 규모의 작업 범위를 나타낼 뿐 아니라, 인기 있는 건축가란 오늘날 인기 있는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즉 그들은 모든 고객에게 맞는 상품 라인을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은 디자인계에 있어 『S, M, L, XL』이 되기를 열망한다. 이 책은 지나치게 거창한 자기 선언문이자, 과도한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을 곁들인 브루스 마우 디자인 스튜디오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미미한 신조들, 역사적 스케치, 디자인에 관한 실험적 연구, 여기에 콜하스, 프랭크 게리, 필립 존슨 같은 건축가(master builder)들과 관계된 몇몇 일화들을 편집해 보여 준다. 또한 여기서도 제목을 가지고 논다. ‘라이프 스타일’이란 말이 아마 마사 스튜어트 식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니체나 미셸 푸코가 이해했던 것처럼, 즉 장식에 대한 가이드가 아닌 삶의 윤리학으로 받아들이길 요청받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 스타일』이 조망하는 세상은 다른 어떤 것, 즉 ‘성찰적 삶’(examined life)을 ‘디자인된 삶’ 속으로 접어 넣을 것을 제안한다. 책은 디즈니가 계획적으로 건설한 ‘셀레브레이션’이라는 마을 사진으로 시작한다. 캡션을 보면 이렇다. “어떻게 살지 선택하는 문제, 즉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질문은 로고와 로고 이미지라는 지배 체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 시합은 공정한 싸움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마우는 여기서 스스로를 약자와 동일시하지만, 그의 디자인 실천은 반대편과 계약을 맺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의 성공담은 이렇다. 우선 학교나 미술관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엔 연예계나 여타 기업처럼 점점 큰 클라이언트가 이미지 디자인, 말하자면 브랜드 자산을 좇아 마우를 찾아온다. 그는 솔직하게 브루스 마우 디자인은 “아이덴티티를 창출”하고 “비즈니스 가치”를 위한 “관심을 끌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털어놓는다. 뭐 좋다. 이건 결국 사업이니까. 하지만 마우는 그쯤에서 멈췄어야 했다.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이러한 환경에서 진정한 자산을 쌓는 유일한 방법은 가치를 더하는 것이다. 제품을 지성과 문화로 포장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거래되는 사물이 제품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전혀 실제 제품이 아니다. 진짜 제품은 문화와 지성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 기념품 박물관의 설계 배치를 의뢰받은 마우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미국이 코카콜라를 만들었나, 아니면 코카콜라가 미국을 만들었나?” 생물학적 삶 또한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환경 속에서 개체는 어떻게 자신을 표명하는가?” 짐작대로 답은 디자인이다.
상품 이미지와 관련해 공간의 재구성은 게오르크 짐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베냐민, 상황주의자들,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나 사스키아 사센과 같은) 급진적인 지리학자들이 말해 온 바대로 자본주의 모더니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다. 오늘날 이는 상품과 기호가 하나로 합쳐지는 데 그치지 않고 때로 상품과 공간이 하나가 되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실제 상점 및 온라인 쇼핑에서 상품과 공간은 디자인을 통해 하나로 혼합된다. 브루스 마우 디자인이 이 분야의 선봉에 서 있다. 토론토에 있는 서점 체인을 위한 ‘아이덴티티 프로그램’에 대해 마우는 이렇게 적는다. “소매점 환경에서 (…) 브랜드 아이덴티티, 사인 시스템, 인테리어, 건축은 총체적으로 통합될 것이다.” 또한 콜하스가 디자인한 시애틀 공공 도서관에 들어가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제안의 핵심은 건축과 정보, 실재와 가상 사이의 경계 지우기와 관련 있다.” 이러한 통합, 이러한 말소는 바로 이미지와 공간의 탈영토화다. 사진은 사진대로 디지털화되면서 진부한 지시적 관계로부터 풀려났으며(언젠가는 포토숍 개발이 세계사적 사건으로 여겨질 것이다), 건축은 건축대로 컴퓨터화되면서 낡은 구조적 원리로부터 풀려나게 됐다.(오늘날 건축에서는 거의 뭐든지 디자인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걸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리와 그의 추종자들이 디자인한 그 모든 임의적 곡선과 유기체적 형상이 가능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말할 것도 없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오래전에 우리에게 가르쳐 준 대로, 이러한 탈영토화는 자본이 나아가는 길이다.(주 8)
마우는 그 오래된 통찰들을 마셜 맥클루언의 미디어로 전개해 나가지만, 자신과 같은 캐나다 사람인 맥클루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가 문화 비평가인가? 미래학 권위자인가? 아니면 기업 컨설턴트? 미디어 미래학에서 오늘의 비평 용어는 내일의 캐치프레이즈가, 그다음에는 클리셰(아니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콜하스는 자신의 책에 쓴 비평적 콘셉트들이 상업적으로 응고되었음을 시인하는 듯이, 이제 그의 캐치프레이즈에 대한 저작권 행사를 씁쓸하게 행동에 옮긴다. 그러나 마우와 같은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상황주의적 은어를 보자면, 그들은 그다지 ‘에두르지’(détourne) 않는다. 그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비평가를 넘어, “예술가의 지위(와) 비즈니스맨의 수표”로 그것을 타고 넘는 서퍼가 된다.(그야말로 그들의 담론이 선호하는 인물이도 하다.) 마우는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내 작업은 어디에 맞을까?” “이 행복하게 웃음 짓는 괴물과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 체제에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티모시 리어리를 따라 ‘흥분하고, 함께하고, 이탈해야’(turn on, tune in, drop out) 하나?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흡수되지 않을까? 내가 그 시스템을 능가할 수 있을까?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농담하나?
동시대 디자인은 예술과 분과의 경계를 다시 허물고, 관습에 대한 도전을 관례화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의 일환이다. 자율성, 혹은 준자율성조차 어쩌면 환영이거나, 기껏해야 허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는 100년 전 로스와 크라우스, 회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기적으로 유용하고 하물며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 주기적으로, 30년 전에 굳어 버린 모더니즘을 열어젖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처음 시작됐을 때처럼 억압적이거나 심지어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아마 지금이야말로 다시 “문화에 활동의 여지를 제공하기” 위해 자율성과 그 위반(transgression)의 정치적 상황성에 대한 감각을, 규율성(disciplinarity)과 그 쟁점의 역사적 변증법에 대한 감각을 되찾을 때인 듯하다.
『라이프 스타일』에서 보듯, 흔히 디자인은 우리의 ‘개성’에 ‘스타일’을 부여한다고들 한다. 디자인이 그런 준자율성이나 그런 활동 여지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디자인은 분명 동시대 소비 지상주의의 토털 시스템 속에 우리를 처넣으려는 주요 에이전트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온통 욕망에 관한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날 이 욕망은 주체를 거의 상실하거나, 최소한 결핍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디자인은 새로운 종류의 나르시시즘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한낮 이미지에 불과한, 내면을 갖추지 못한 나르시시즘, 역시 언제든 소멸할 수 있는 주체의 절정을 향해 말이다. 가엽고 어리석은 부자, 그는 이제 토털 디자인과 풍요로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아르누보의 세계에서 “미래의 모든 삶과 분투, 발전, 욕망을 잃게” 생겼다.
일찍이 베냐민은 ‘1900년 스타일’에 대해 “고독한 영혼의 변형은 그 목적을 드러낸다”라고 언급했다. “개인주의는 그것의 이론이다. (…) (그러나) 아르누보의 진짜 의미는 이 이데올로기에서 표출되지 않는다. (…) 아르누보는 자신의 내면성(inwardness)을 기반으로 기술과 전쟁을 벌이려는 개인의 시도가 스스로 몰락으로 이끄는 (헨리크 입센의 책) 『건축가』(The Master Builder)에 의해 요약될 수 있다.”(주 9) 그리고 로베르트 무질은 다가올 ‘2000년 스타일’을 위해 이런 생각을 완결하려는 듯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사람 없는 특성들의 세계, 체험하지도 않은 체험들의 세계였고 마치 이상적인 인간 경험은 더 이상 개인적으로는 체험될 수 없고, 개인적인 책임감이라는 그 친근한 부담감은 가능성 있는 의미라는 형식의 체계 속으로 녹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됐지만, 이미 한 세기 이전부터 인간 중심적인 태도는 사라져버린 듯했고, 결국 그것은 ‘나’ 자신이란 것에 머물고 말았다.”(주 10)
© Hal Foster, 2002
주
1. Adolf Loos, “Ornament and Crime,” in Programs and Manifestoes on 20th Century Architecture, ed. Ulrich Conrads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70), 20.
2. Adolf Loos, “The Poor Little Rich Man,” in Spoken into the Void: Collected Essays 1897–1900, trans. Jane O. Newman and John H. Smith (Cambridge, MA: The MIT Press, 1982), 125. 다른 표기가 없으면 모든 인용의 출처는 이 책이다.
3. Karl Kraus, Die Fackel (December 1912), 37; reprinted in Werke, vol.3 (Munich: Kösel verlag, 1952–66), 341. Carl Schorske, “From Public Scene to Private Space: Architecture as Culture Criticism,” in Thinking with Hist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참조.
4. Walter Benjamin, “Paris, Capital of the Nineteenth Century,” in Reflections, trans. Edmund Jephcott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ivich, 1978), 155.
5. Jean Baudrillard, For a Critique of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ign, trans. Charles Levin (St Louis: Telos Press, 1981), 186.
6. Ash Amin, ed., Post-Fordism: A Reader (Oxford: Blackwell, 1994) 참조.
7. Bruce Mau, et al., Life Style (London: Phaidon Press, 2000). 다른 표기가 없으면 모든 인용의 출처는 이 책이다.
8. 들뢰즈의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 미술가와 건축가가 이런 기본 사항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그것이 대단한 뭐라도 된다는 듯이 ‘자본논리적’(capitalogical) 입장을 취한다.
9. Benjamin, “Paris, Capital of the Nineteenth Century,” 154–155.
10. Robert Musil, The Man Without Qualities, vol. I. trans. Sophie Wilkins (New York: Vintage, 1995), 158–159.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1권, 안병률 옮김 (고양: 북인더갭, 2013), 268.
참고
-
― Hal Foster, “Design and Crime,” in Design and Crime (and other Diatribes) (London: Verso, 2002), 13-26. 알렉스 콜스 엮음,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장문정, 박활성 옮김(워크룸 프레스, 2013), 92–105.
-
―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살펴보기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현대미술 · 건축 · 이론을 가르치며 『옥토버』 (October)의 공동 편집자다. 저서로 『나쁜 새로운 나날』(Bad New Days), 『콤플렉스』(The Art- Architecture Complex), 『실재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al), 『강박적 아름다움』(Compulsive Beauty), 『미술, 스펙터클, 문화정치』(Recodings: Art, Spectacle, Cultural Politics), 『디자인과 범죄』 (Design and Crime) 등이 있다. 특히 그가 로절린드 크라우스, 벤저민 부클로, 이브-알랭 부아, 데이비드 조슬릿과 함께 써낸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는 현대미술을 응축한 기념비적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