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비릴리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당신 작업에 있는 상황적 특성입니다. 오늘날 미술의 문제는 미술의 비지역화에 있습니다. 해체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내게는 미술의 비지역화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미술은 더 이상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사회적 돌변 상황이 응축되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황은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미술은 ‘현상적인 세계’(welterscheinung)의 구성 요소 중 하나 즉,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내가 당신 작업을 처음 접한 곳은 거리였습니다. 만물이 변화하는 곳이지요. 내가 하는 학문은 ‘거리’에서 그 이름을 빌려 왔습니다. 거리는 급히 움직이며 돌진합니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드로모스’(dromos)라고 합니다. 드로몰로지(dromology)는 속도의 과학, 돌진의 과학이라는 뜻입니다. ‘길’(road, rue)의 어원은 ‘급히 움직이다’(rush, rueé)이고 ‘서두르는’(hurry) 역시 ‘길’과 어원이 같습니다.
처음 당신의 작업을 접했을 당시 나는 「도시 표지등대」(Balises Urbanies)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집이라기보다 전통적 의미의 키오스크에 가까웠지요. 당신 작업도 거리에 출현했는데, 장비들이 아주 충격적이고 무엇보다도 적절해서 흥미로웠습니다. 내 도시 표지등이 경보 신호인 줄 알았던 건축가들 사이에서 아우성이 있었던 것처럼, 나는 당신 작품을 새로운 인간의 허약함과 위태로움에 경종을 울리는 신호로 봤습니다.
그것을 ‘미술’이라고 불러야 할지 정말 모르겠군요. 이것은 위급 상황임을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미술이었고, 몸과 미술의 관계성을 생각해 보라는 간청이었습니다. 미술은 몸에서 발생했습니다. 춤추는 몸, 연극적인 것, 전쟁 회화와 문신에서 기원했죠. 전시장 벽으로 미술이 옮겨 가기 전에는, 몸을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몸 자체에서 미술이 이루어졌습니다. 내 눈에 당신 작품은 몸 주위로 그려진 동굴벽화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의 「난민복」(Refuge Wear), 즉 말 그대로 입혀진 몸은 자신을 향한 위협에 대한 일종의 목격자가 됩니다. 실업이나 사회적 불안이 야기한 위협뿐 아니라 가상현실이나 사이버 신체, 하이퍼 신체, 혹은 소위 ‘포스트-휴먼’ 기술 속으로 사라지는 신체의 위험을 봅니다. 나는 건축가로서 여기에 대단한 흥미를 느낍니다. 나 역시 시각화, 클론과 망령의 생성, 원격 현실을 통한 신체의 실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당신 작품은 시사적입니다. (···)
오르타: 우리는 인도주의적 미술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바로 이런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회와 관련하여 인간적인 문제를 다루고, 새로운 예술적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릴리오: 인도주의적인 질문은 사회적 차원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사회적 분열의 시대에 작업을 합니다. 이혼이 증가하는 때에 집합적인 옷을 만들고 있지요. 그리고 사람들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옷에 의한 일종의 결혼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작업은 아니지요. 독신 부모 가정이 점점 증가하는 때에 부모와 아이가 같은 옷을 공유하는 집합적인 옷을 만듭니다. 그 옷은 사회 상태에 대한 증상적 은유입니다. 그래서 당신 작업은 인도주의적이라기보다 사회적입니다. 실제로 이 옷이 도움이 되거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해도, 주요한 목적은 우리에게 사회적 분열, 사회적 이혼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당신이 하는 작업은 인도주의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작업은 사회적 분열 상황을 고발하지만 그 분열을 완화시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기능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만든 인물을 보면, 왜냐하면 내 눈에 당신 옷은 사람으로 보이니까요, 나는 히에로니뮈스 보슈가 생각납니다. 당신 작업은 그의 그림과 같습니다. 지옥을 그릴 때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참상, 사람들이 서로 대학살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과일 속에 살거나 레몬을 입은, 이상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여 줄 뿐이지요. 이것은 인도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오르타: 「난민복」은 모든 종류의 장소에 설치됐습니다. 예를 들어 군중이 들끓는 기차역 안에도, 세상에 노출되어 공격에 취약하고 소외된 기차역 밖에도 설치됐습니다.
비릴리오: 이런 의미에서, 당신의 작업에는 예언적 차원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작업의 중대한 소명입니다. 나는 예언적 관점이 현실적 관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요소가 있는데, 바로 ‘포장’(packaging)이라 일컫는 것의 전개입니다. 우리 사회에 포장의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는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동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포장은 우선 운반을 용이하게 하고 두 번째로 메시지를 촉진시킵니다. 포장은 상품을 파는 메시지를 싸는 것입니다. 그 상품 역시 포장되지요. 내가 보기에 당신 작품, 즉 옷에는 이 포장의 개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옷은 더 이상 신체를 보호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 번째 피부로서, 하지만 포장의 일종으로서 건축과 옷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여러 층의 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속옷, 옷, 외투, 나아가 침낭, 텐트, 화물 컨테이너, 주택 등등 양파 껍질처럼 끝도 없습니다. 당신 작업은 이런 다층적 피부의 일부입니다. (···)
© Lucy Orta, 200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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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 Virilio in conversation with Lucy Orta (Paris, December 1995), first published, trans. David Wharry, in Roberto Pinto, Nicolas Bourriaud, Maia Damianovic, Lucy Orta (London and New York: Phaidon Press, 2003), 118, 124. 알렉스 콜스 엮음,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장문정, 박활성 옮김(워크룸 프레스, 2013), 18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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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과 미술: 1945년 이후의 관계와 실천』 살펴보기
철학자, 문화 이론가, 영화 비평가, 큐레이터, 미술가. 주요 저서로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1977),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 1980), 『전쟁과 영화: 지각의 병참학』(Guerre et Cinema-Logistique de la perception, 1984), 『시각 기계』(La Machine de vision, 1988), 『탈출 속도』(La Vitesse de liberation, 1995), 『정보과학의 폭탄』(La Bombe informatique, 1998), 『무엇이 올 것인가』(Ce qui arrive, 2002) 등이 있다. 파리 건축전문학교와 파리 국제철학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루시 오르타
미술가. 영국에서 패션을 공부한 그녀는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시각 미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체와 건축의 경계를 탐색하는 그녀의 조각적 작업은 「난민복」(Refuge Wear), 「신체 건축」(Body Architecture)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파리 카르티에재단 현대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런던 예술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