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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커플랜드

5년 전, 나는 뉴욕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마침 사랑스러운 곡선을 가진 하얀색 의자가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보이기에 앉으려고 의자를 잡았을 때였다. 갑자기 친구가 내게로 돌진해 오더니 의자를 홱 잡아채 갔다. 그리고 말했다. “안 돼!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이 빌어먹을 의자는 먼지로 변해 버릴 거야. 지난주에도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1967년, 쌓아 올릴 수 있는 베르너 팬톤의 일체형 플라스틱 의자가 발표되었다. 이전에도 찰스와 레이 임스, 에로 사리넨처럼 당시 유명했던 디자이너들이 일체형 플라스틱 의자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들은 단 한 개의 프로토타입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팬톤은 9년에 걸친 시도 끝에, 최초로 성공했다. 그리고 팬톤 의자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그의 핵심 작업이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네오 모더니즘이 부활하기 전에 팬톤 의자는 희귀하고, 값비싸며, 섬세하고, 우월적인 아우라를 주변에 두르고 있었다. 동시에 이 의자를 소유한 사람은 교양 있고 까탈스러운 사람,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를 노화한 플라스틱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지금, 팬톤은 너무나 유명하다. 시장에는 강도 높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라이선스 복제품들이 폭주하고 있으며 인형의 집에 놓을 미니어처 제품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팬톤 의자만 파는 홈쇼핑 채널을 만들어도 될 기세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쩌면 벌써 홈쇼핑 채널을 기획하고 있을지도! 팬톤의 인기 급증에 상당 부분 관여한 비트라 디자인박물관은 이번 여름 벨 암 라인에서부터 시작해 베를린에 새로 문을 여는 분관까지 순회하는 대규모 팬톤 회고전을 열고 있다. 10월 중순까지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나는 이런 비트라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망스럽다.

왜 이런 복잡한 기분이 드는 걸까? 어쩌면 단순한 우월 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팬톤의 작업에 대한 추억을 생생하게 간직한 전문가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뭔가 근사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건 말하자면 1968년 즈음, 런던의 패션 촬영 현장에서 볼렉스 카메라가 페기 모핏의 왼쪽 젖꼭지를 찍어 대는 셔터 소리를 들으며 아보카도 조각을 먹던 추억처럼 부질없는 몽상 같은 것이었다. 팬톤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사회는 항상 존재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팬톤의 탐구 정신과 우주 시대에 걸맞는 획기적인 재료 사용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마라스키노 체리 색이나 퐁듀 세트 오렌지색처럼 특유의 활기차고 눈부신 색으로 도색된 그의 제품들은 은근히 유행 중인 캠프 취향의 냄새를 풍겼다.

1950년대 초반 덴마크의 유명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과 작업했던 팬톤은 의자를 의자처럼 만들고, 탁자를 탁자처럼 만드는 전통적인 개념에 의문을 가졌다. 사람은 자신의 엉덩이를 붙일 장소가 필요한 것이지 거기에 달린 다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발포 고무나 플라스틱 또는 크롬 와이어로 만든 팬톤의 작품들은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혹은 마치 바닥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그 재료들이 이전에 사용됐던 것과 비슷한 흔적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그가 주로 살았던 스칸디나비아반도 지역은 ‘모듈러’(modular)라는 낱말이 늘 ‘미래’라는 말과 같은 문장 속에 들어가곤 하는 그런 곳이었다. 밝고 굵은 원과 정사각형에 대한 그의 집착은 너무나 일관되게 현대적이고 유쾌해서 혹자는 그의 작품을 1950년대 기능주의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실수가 아닐까 궁금해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그의 작품은 분류와 상관없이 강력하고 매혹적이다. 아마 팬톤이 오로지 미술가로서 작업하는 쪽을 선택했다면 아주 잘 해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브리지트 라일리나 빅토르 바자렐리, 야코프 아감이 규정한 옵아트나 키네틱아트에 딱 들어맞는다면서 말이다(팬톤과 마찬가지로 현재 이들은 모두 재평가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한 팬톤의 그래픽 감각은 순수 미술이 아닌 직물 디자인으로 옮겨 갔다. 비트라 회고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텍스타일 작품은 현재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시각적으로 흥미진진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사실, 팬톤의 영향은 온 천지에서 목격할 수 있다. 1965년에서 1980년 사이 건설된 공항의 일등석 라운지나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 본 사람이라면 그의 특징적인 디자인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팬톤의 여러 디자인들은 영감을 주긴 하지만 같이 지내려면 불편하다. 팬톤이 집에서 그의 아내와 함께 찍은 유명한 사진이 있다. 그들은 이케아의 플라스틱 공으로 가득 찬 아이들 놀이방을 닮은 곳에서 주말 점심을 차리고 있는 중이다. 사진 속의 팬톤은 그 방을 기능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의 노력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비트라 전시를 보러 오는 관람자들은 팬톤이 가장 비실용적일 때 최고였다는 것과, 그의 작업은 여러모로 시대를 뛰어넘지만 역시 강렬했던 한순간, 한 장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이것이 그가 뛰어난 디자이너였음을 돌려 말하는 법이다.

© Douglas Coupland

참고

더글러스 커플랜드
소설가, 비주얼 아티스트, 디자이너. 1991년 첫 책 『X 세대: 점점 빨라지는 문화 이야기』(Generation X: Tales for an Accelerated Culture, 1991)를 출간한 이래 다수의 단편소설과 논픽션, 영화와 텔레비전을 위한 대본 및 시나리오를 썼다. 그의 소설과 시각 작업은 고급문화와 저급 문화, 웹 테크놀로지, 종교, 그리고 현대 기술이 야기한 인간 존재의 변화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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