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치 히로시
보이스 오브 나가
롤러스
2019
이미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가 운영하고 있고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의 무대이기도 한 동교동 아메노히커피점은 경매 사건으로 인해 2024년 9월 22일에 14년간의 영업을 마쳤고 현재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덕분에 휴업에 들어가기 전인 2주일 동안은 여태껏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손님이 방문해 주었다. (시간 내서 일부러 오셨는데 만석으로 입점하지 못한 분들께 죄송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아메노히커피점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룰 CD 『보이스 오브 나가』(VOICE OF NAGA)는 이전 직전의 바쁜 나날에 왠지 맞아떨어져 낮은 볼륨으로 반복해 틀었던 음반 중 하나다.
이 음반은 리코딩 엔지니어인 이구치 히로시(井口寛)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인도 국경과 가까운 미얀마 오지의 나가족 마을을 찾아가 필드 리코딩을 진행한 작품이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 사는 그들의 마을은 지금도 전기, 수도, 통신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급자족하며 살고, 근년까지 문명사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길러 왔다. 또 옛날에는 적대 부족의 목을 베는 풍습이 있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독창과 합창, 피리와 드럼 연주 등을 수록한 것이 이 음반이다. 축제와 민속 의식에서의 연주를 비롯해 이야기를 전하는 노래, 모내기 노래와 자장가, 마을 사람이 무심코 흥얼거린 노래, 생활 속 소리까지, 삶에 밀착한 다정한 소리를 세 장짜리 CD로 듬뿍 들을 수 있다.
이구치 히로시의 레이블 롤러스(Rollers)에서 발표된 몇 장의 음반, 그리고 음반 『새겨진 음악과 소음: 미얀마 음반의 역사』(Engraved Music and Noise: History of Records in Myanmar) 등을 통해 미얀마의 오래된 레코드를 현지에서 수집해 소개해 온 무라카미 교주(村上巨樹)의 활동에 영향을 받은 나는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미얀마 음악을 자주 듣게 되었고, 커피점에서도 많이 틀었다. 2024년 6월에 발매된 나의 책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에서도 미얀마 음반을 몇 장 소개한 바 있다. 서양음악에 익숙했던 귀에 미얀마 음악만의 신기한 리듬과 선율이 자극적인 한편 어딘가 따뜻하고 세련미도 느껴져서, 커피점에 잘 어울린다고 여겼다.
『보이스 오브 나가』도 미얀마 관련 음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시적인 힘이 센 것 같아 구입 당초에는 커피점에서 자주 듣지 않았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이들에게 설명하자면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에서는 카페에 어울리는 배경음악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2020년부터의 이상한 시기에 자주 들었던,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이 드는 음반도 소개한다. 그런데 롤러스의 음반을 이미 두 장 소개하기로 했기에 고민 끝에 『보이스 오브 나가』는 제외했다.
다시 들어 보니 이 음반은 역시 일반적인 카페 배경음악으로는 이질적이다. 마을 사람들이 작업하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소음이 될 수도 있고, 게다가 자장가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도 나오는데, 이 트랙이 시작되자 손님들의 대화가 일순간 멈춘다. (그런 점 또한 커피점답다고 느낀다.) 휴업 전의 2주 동안에 왜 갑자기 이 음반이 커피점에 익숙해졌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가족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는 음악의 힘이 그 비일상적인 축제의 시간에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가족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은 것은 2019년에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화 「산을 휘감는 노래」에서가 처음이었다. 나가족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그룹이 포함되는데, 이 영화는 인도 쪽 나갈랜드주에 사는 나가족 사람들이 농사일을 하며 합창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설명이 많지 않고, 아름다운 계단식 논을 배경으로 남녀의 소박한 목소리 화음이 울려 퍼지는 모습은 언제까지라도 볼 수 있기에, 또다시 극장에서 관람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다. 코로나 전이었던 당시 나갈랜드에 한번 가 보고 싶어서 인근 도시 임팔로 가는 여행 경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참고로 CD 『보이스 오브 나가』에 나오는 미얀마 쪽 나가족의 노래는 이 영화에서 체험한 노래보다 더 소박하고 힘찬 느낌이다.
미얀마의 나가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우연히 같은 시기에 읽은 책, 일본의 모험가 다카노 히데유키(高野秀行)가 세계의 낫토(그런데 왜 낫토일까?)를 탐색하는 논픽션 『수수께끼의 아시아 낫토』(謎のアジア納豆)에서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다카노는 나가 자치구를 포함한 미얀마 벽지를 모험해 일본에서도 미얀마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2015년에 다시 나가 자치구를 방문해 마을마다 계승된 전통적인 낫토 문화를 조사했고, 그 여정을 책에서 스릴 있게 그렸다. 실제로 예전에 방문했을 때 목을 벤 경험이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다카노는, 나가족에 속하는 20개 이상의 그룹은 문화도 언어도 제각각인데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옛날에 누군가의 목을 벴다”라든가 “같은 낫토를 먹고 있다”라는 것뿐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가 극찬하는 나가족의 세련된 낫토, 나도 꼭 먹어 보고 싶다.
그리고 『보이스 오브 나가』에서 다시 나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이 음악은 내가 아는 한 음원 스트리밍에는 없고 실물 음반을 구매해야만 들을 수 있다. 박스 세트에는 세 장의 CD 외에 열여섯 장의 그림엽서, 그리고 나가 자치구의 지도가 봉입되어 있다. 엽서에는 각 마을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과 장소 소개, 방문기, 녹음한 소리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어서 여행 책처럼 읽을 만하다. 나가 자치구 지도는 이구치가 여러 지도와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귀중한 자료임이 틀림없다. 여행을 동경하는 나는 이 지도와 그림엽서를 펼쳐 CD를 재생한다. 정보에 쫓기지 않고 노래와 함께 평온한 생활을 누릴 것 같은 나가 사람들의 마을로 마음이 날아간다.
군부 쿠데타로 2021년부터 이어지는 미얀마의 혼란은 2024년이 끝나 가는 지금도 진정될 것 같지 않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적어도 미얀마에 관심을 두는 것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
덧붙여 동교동에 있던 아메노히커피점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음악 행사는 앞서 언급한 미얀마 음악 연구가인 무라카미 교주와 스터디스트(‘계속 공부하는 사람’)를 자칭하는 기시노 유이치(岸野雄一)가 진행한 미얀마 음악에 대한 토크쇼였다. 어떨 때는 흥미롭고 어떨 때는 웃긴 영상을 보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미얀마 음악의 매력을 듬뿍 알 수 있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행사는 조기 매진되었고, 관객들이 신기한 미얀마 음악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매우 인상 깊은 자리였다.
그때처럼 재미있고 다정한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참고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2010년부터 서울 동교동에서 서예가인 아내와 함께 작은 커피숍 ‘아메노히커피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 저서로 『한국 타워 탐구생활』(2015)과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2024)이 있고, 일본어 번역서로 윤성근의 『헌책방 기담 수집가』(2023),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2020) 등이 있다. 『페이퍼』, 『빅이슈』, 『조선일보』 등에서 칼럼을 연재했고, 현재 『호쿠리쿠 주니치 신문』에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