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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 4: 말보다 발
정우영

2025년 10월 14일 게재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매주 화요일, 다섯 번의 연재 이후 단행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에이콘
론리
유니버설 레코드
2005년

똑같은 바이닐 두 장이 들어 있는 중고 12인치 싱글은 애호가의 바이닐이 아니다. 아마도 힙합 바이닐이고, 런아웃 그루브*에 스티커가 붙어 있고, 두 장 다 상태가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디제이 중에서도 턴테이블리스트를 꿈꿨던 사람의 바이닐이다. 턴테이블리스트는 힙합의 속주 기타리스트다. 스티커를 붙여 믹싱 지점을 표시한 것이고, 묘기에 가까운 스크래칭 기술을 연습하다 걷잡을 수 없이 손상된 것이다.

턴테이블리스트의 여러 기술 중 ‘비트 저글링’에서 두 개의 같은 바이닐을 사용한다. 두 개의 턴테이블을 옮겨 가며 같은 구간을 똑같이 혹은 조금 다르게 이어 붙여 그 음악을 재창조하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두 장이 들어 있는(한 장은 판매했고, 한 장만 가지고 있다.) 무수한 힙합 12인치 싱글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에이콘의 『론리』(Lonely)는 특별했다. 보통 비트 저글링은 비트가 도드라지는 음악을 선택해 청중들의 주목을 끄는데, 이 노래는 멜로디 중심이고 또 감상적이니까. 하지만 이전 소장자는 감상적인 사람이었다기보다 초보 턴테이블리스트였던 것 같다. 두 장 다 막 포장을 뜯은 상태였다. 기타 초보자가 G-Em-C-D를 먼저 쳐 보듯, 단순하고 느린 비트로 ‘비트 저글링’을 연습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한 번 해 보고 영영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음악가를 특수한 직업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직업인은 그들의 언어가 있고, 단지 음악가는 음악 언어를 다룬다. 그런데 음악이 종교적이다. 음악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 동떨어져 범접 못 할듯 보이지만, 자신을 뒤흔드는 리듬과 선율로부터 음악이 내 삶과 무관하다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 만큼 음악의 제단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모두에게 신이 깃들지는 않는다. 어릴 때는 다음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늙어서는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사가 있을 때마다 음악의 제단을 확인한다. 에어컨 설치 기사, 인터넷 설치 기사, 가구 설치 기사 분들 가운데 전직 음악가가 수두룩하다. 집에 있는 바이닐과 악기들을 보며 “음악 좋아하시나 봐요?”로 시작해, 한바탕 음악 이야기를 꽃피운 일이 적지 않다. 나는 매번 헤어지며 완전히 내려놓지만 않는다면 무슨 길이든 있을 거라 말씀드렸고, 그들은 웃거나 말끝을 흐렸다. 그 삶에서 음악이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Baby)가 흘러나왔다. 함께 식사하던 친구가 요즘 가장 듣기 싫은 노래라며, 경박하고 유치하고 지겹다는 악평을 쏟아 냈다. 논평 이후 어쩌다 탁자 아래로 고개를 돌리며 봤는데, 킥 드럼에 맞춰 쉴새 없이 그의 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런아웃 그루브(Run-out Groove): 레코드 가장 안쪽의, 음악이 담기지 않은 구간. 바늘이 레코드 중앙을 향하지 못하게 막으며, 해당 바이닐의 식별 번호, 제조 공장, 엔지니어 등의 부가 정보가 음각으로 담겨 있다.

정우영

에디터.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코리아』(Dazed & Confused Korea)와 『지큐 코리아』(GQ Korea)에서 일했다. 음악 페스티벌 ‘서울 인기’, 잡화점 ‘우주만물’, 음악 바 ‘에코’, 온라인 음악 플랫폼 ‘버드엑스비츠’(BUDXBEATS)를 좋은 동료들과 함께 기획하고 운영했다. 영몬드(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페어브라더(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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