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창작 SF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쓰기’라는 형식을 창작으로 인정한다면 1921년에 발표된 정연규(鄭然圭)의 장편소설 『이상촌』(理相村)이 한국 최초의 창작 SF라는 자리에 놓일 수 있다.(주 1) 이전까지 『이상촌』은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 2000년에 1887년을』(Looking Backward, 2000–1887, 1888)을 번안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후 연구들을 통해 이 작품이 『뒤돌아보며』와 사카이 도시히코의 「쇼켄이 135세가 되었을 때」(小剣が百卅五になつた時, 1913)를 참고하여 다시 쓰기 한 것으로 밝혀졌다.(주 2) 정연규는 같은 해에 『혼』(魂)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출판 시기는 『이상촌』이 조금 앞서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보자면 『혼』에 나타난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이 『이상촌』으로 이어진 것으로 독해해 볼 수 있다. 즉 『혼』의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새로운 상상을 위한 이상적인 미래상을 『이상촌』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정연규가 『이상촌』에서 그리는 미래의 이상향은 제법 구체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질병이나 범죄가 없는 사회, 모든 이들이 서로 재화를 공유하고 노동자가 대우받으면서 직업의 귀천이 없는 세상이 제시된다. 이러한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선 정연규가 참조한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가 있었기 때문이다. 벨러미가 상상한 2000년대는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생산 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해 물질적인 부를 분배하는 일종의 사회주의 이상향이었다. 특히 미래로 오기 전에 주인공인 줄리언 웨스트가 증조부 때부터 축적한 재화의 투자 수익으로 놀고먹던 인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시대를 뛰어넘는 설정을 통해 1800년대 후반부터 문제시되기 시작했던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사고실험하고 이를 통해 드러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쓰기’를 통해 창작된 『이상촌』에서 정연규는 이러한 밸러미의 사회주의 이상향에 생각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1917년에 이미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뒤돌아보면』에서 그렸던 세계의 변혁이 실제로 시도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영이라든가 의식이 『이상촌』에서는 오히려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는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 이미 서구에서 오랜 시간 누적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들은 와닿지 않는 현실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대신 정연규는 지금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그리는 것에 초점을 둔다. 노동의 소외를 불러오는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를 타파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기술의 효용을 정연하게 그려내는 미래상이 아니라, 자유롭지 못한 현실의 문제들을 극복하게 해 주는 기술이 발달한 세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이전의 조선도, 식민지 시기의 한국도 아닌 이상향 그 자체였던 것이다.
SF의 하위 분류로서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이상향을 그리는 이야기 형식인 ‘유토피아’(utopia)는 그 역사가 깊다. 토머스 모어의 1516년 동명의 소설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원래 섬의 이름이었다. 그리스어 ‘eu’(좋은)와 ‘topos’(장소)가 합성된 말로 이상적인 사회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eu’ 대신 ‘ou’(존재하지 않는)로 해석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유토피아는 처음 명명된 시점부터 이상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과학기술의 발달, 공정한 노동, 화폐 등이 철폐된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펼쳐 보였다.(이외에도 토머스 모어는 종교적인 규율과 도덕성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요소들은 1500년대의 토머스 모어에서 1800년대 에드워드 벨러미에게로 이어졌고, 이후 1920년대 정연규에게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상촌』의 미래 사회에 대한 설정은 상당 부분 『뒤돌아보며』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새로움에 대해 경이로워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그저 진정으로 희망하는 모습에 그친다. 이는 새로운 세계의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는 『뒤돌아보며』와는 다른 지점이다. 때문에 여기에 윌리엄 모리슨의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 1890)이 함께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주 3)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은 『뒤돌아보며』와 같은 국가사회주의적 이상향을 비판하면서 국가조차도 전복되고 해체되어 민중들이 협력을 통해 사회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에 같은 세계를 상상해 냈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정연규의 경우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에서 그려지는 이상적인 미래 사회,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상당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지점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때문에 『뒤돌아보며』와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을 비롯해 유토피아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상의 이상향과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비교와 토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실험은 『이상촌』에서 어쩔 수 없이 축소된 인상을 준다. 그에 비해 『이상촌』에서 강조되는 것은 2023년에 깨어난 주인공이 아름다운 절경으로 탈바꿈한 경성을 경험하며 느끼는 감상들이다. 새로운 경성에서는 화폐 대신 지금의 신용카드와 같은 개념으로 재화를 통용한다. 전선 없이 전화가 가능하고, 기름이 아닌 전기로 움직이는 자율 주행 자동차는 하늘을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인간들은 모두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고, 과학기술을 떠받치는 수학과 물리, 화학이 발달하고, 의학도 발달해 건강 문제도 극복된 사회이다. 이는 전적으로 정연규 자신이 추구했던 사회적 목표이자 당대가 상상했던 낙원의 모습, 즉 그 시대가 꿈꾸었던 이상향의 한 단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한 또 다른 작품으로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The Time Machine, 1895)을 번역한 「80만 년 후의 사회」(1926)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공유한다. 1920년 김환(金煥)의 번역으로 잡지 『서울』에 실리고, 이후에 『별건곤』 창간호에 영주(影洲)라는 필명의 번역가에 의해 수록된 작품이다.(주 4) 해당 작품들은 각각 일부분만 연재되고 중단되었으며 일본어판을 기준으로 번역되었다고 알려져 있다.(주 5) 이 시기에 작가적인 유명세로 보았을 때 한국에 쥘 베른의 작품이 번역된 사례에 비해 웰스의 작품이 소개된 경우가 유독 적어 보인다. 당시 일본에서는 웰스의 작품들이 소설과 비소설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번역이 일본어본을 중역하여 들어왔던 것을 고려하면 특이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웰스가 단순히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사상가로서 소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에 소개된 웰스의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소설로서는 『타임머신』이 특징적이고 「신과 같은 사람들」(Men Like God, 1923)이 『조선일보』에 「이상국을 과연 실현호」(1923)로, 「모던 유토피아」(A Modern Utopia, 1905)가 『여명』과 『동광』에 「영문단 최근의 경향」(1925), 「근대적 이상사회」(1926)로, 「다이아몬드 제조자」(The Diamond Maker, 1894)와 「창문을 통해」(Through a Window, 1894)는 『매일신보』에 각각 「금강석 제조사」(1927)와 「창문을 통하여」(1927)로 번역되었다.(주 6) 결국 단행본으로 번역된 웰스의 장편 소설은 존재하지 않으며, 완역된 작품들은 단편으로 실린 「금강석 제조사」와 「창문을 통하여」에 불과했다. 게다가 번역된 작품은 비록 소설이 더 많지만 이는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오히려 『문명의 구원』(The Salvaging of Civilization, 1921) 같은 논픽션 작품들의 영향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로 일본어 판본들이 당대의 지식인층에 큰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 그 과정에서 웰스는 소설가보다는 사상가로서의 면모로 인식되었고, 그의 소설에 대한 인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된 「80만 년 후의 사회」도 역시 당대 지식인들이 상상하던 이상적 사회의 표상이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시간 여행 서사는 『타임머신』을 시작으로 SF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은 초자연적이고 마법적인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사고나 재난 같은 것으로 표현되었던 것에 비해 SF에서의 시간 이동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법칙에 의해 인간이 능동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태로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타임머신』의 경우 기계장치를 통해 이동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함으로써, 시간 이동과 같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 기술에 의해 가능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시간을 이동하게 되면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원하는 시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고, 그렇게 이동한 다른 시간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거나,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을 개선하려는 욕망의 공간으로 배경화되는 경우가 많다.
『타임머신』 또한 이러한 공식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간 여행으로 80만 년 후로 여행하게 된 주인공은 그곳에서 인류의 진화가 초래한 다양한 부조리를 발견하고 다양한 깨달음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 여행을 계속한다. 결국 시간 여행은 현재의 문제를 방치했을 때 인류에게 닥칠 위험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이고, 문제의 극복을 위한 시도라는 함의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현실을 객관적이고 다양하게 사고실험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80만 년 후의 사회」에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실험 이전에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장치가 개발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인간이 극복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시간을 극복하고 그것을 자의대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경이로움에 대한 집착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구한말의 SF 텍스트 전반에서 보이는 문명의 발달과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 세계의 진보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그대로 담겨 있다.(주 7) 그러기 때문에 수치화, 물질화된 기술의 결과에 대한 전망이 부각되고, 비판적으로 세계를 사고실험하는 영역들은 소거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80만 년 후의 사회」에서는 대표적으로 원작에서 제시되었던, 과학 문명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련된 장치들이 변모하게 된다. 『타임머신』의 미래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로 표상되는 멀록과 엘로이의 존재가 중요하다. 이들은 노동자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자본가들 역시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면 미래에 어떤 불합리와 부조리로 귀결되는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두 작품에서는 멀록의 존재를 아예 소거하거나 넌지시 언급하는 것으로 수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초래되는 미래상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실험을 진행하고, 막연한 유토피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타임머신』의 메시지들은 희미하게 변해 있다. 그리고 핵심이 되는 메시지가 빠진 자리에 『이상촌』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진보를 맞이한 맹목적 유토피아에 대한 낭만들이 남아 강조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를 보면 이 시기 식민지 한국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토머스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self-determination) 담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 서구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기술과 인간의 진보를 둘러싼 낙관주의에 회의적인 시각이 촉발되었지만, 식민지 한국에 필요한 미래는 무엇보다 강력한 국가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SF 텍스트들을 번역하고 이를 통해 조국을 계몽시키고자 했던 당대의 지식인들은 근대화를 위해 서구 과학기술에 대한 필요를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추상적이고 사상적인 측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치화되고 물질화되어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한말과 식민지 한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그린다는 것은 곧, 민족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사회주의 이상향이라는 가치도, 유토피아에 대한 SF의 비판적 사고실험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시간 여행의 가능성도 모두 변용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한 사회가 그려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당면한 현실적인 모습들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구한말 근대화를 위한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 지향과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한 열망으로부터, 이후에는 남북 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열망과 같은 거대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들은 당시는 물론 이후로도 한국의 SF가 그리는 새로운 세계들을 규정하는 하나의 기준점이자 잣대로 작용해 왔다. 문학의 가능성이 현실을 반영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SF에서 그리는 새로운 세계와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이야말로 그 시작 지점에 선연한 당대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
1. 여기서 다시 쓰기(rewriting)는 화자의 변경이나 원작에 대한 전복 등을 통해 새로운 주제 의식을 나타내는 방식으로서의 재서술을 의미한다.
2. 모희준, 「정연규(鄭然圭)의 과학소설 『이상촌』(1921) 연구」, 『어문논총』, 77(2019): 255–267; 김미연,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1920년대 과학소설 번역과 수용사』(서울: 소명출판, 2022), 133–157 참조.
3. 김미연,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136 참조.
4. 김환의 경우 일역본을 기준으로 국한문을 혼용하여 10화까지, 영주는 국문을 위주로 하여 11화까지 번역하였다. 같은 책, 302–303 참조.
5. 김종방, 「1920년대 과학소설의 국내 수용양상 연구: 「80만 년 후의 사회」와 「인조노동자」를 중심으로」, 『한국문학의연구』, 44호(2011): 120–122 참조.
6. 김미연,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327 참조.
7. 같은 책, 315 참조.
문화 평론가, SF 연구자.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 SF 장르의 형성』이, 공저로는 『비주류 선언」, 『SF 프리즘」,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 『인류세 윤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