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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할 세계로부터의 목소리
나일선

2026년 3월 3일 게재

“다른 곳에서 와서 다른 곳으로 가는 다른 곳의 문학”, “20세기의 전쟁, 혁명, 인종 청소, 패배에 기억의 뿌리를 둔 국제주의적·세계주의적 문학”, “프랑스어로 쓰인 외국 문학”, “몽상과 정치를 밀접히 뒤섞는 문학”, “공식 문학과 단절하는 쓰레기통의 문학”, “곱씹기와 일탈과 실패의 감옥 문학”, “볼셰비키적 샤머니즘과 관련 있는 소설적 건축물”…. 문학적 평행 우주로 이루어진 앙투안 볼로딘의 ‘검은 공간’을 여러 작가가 겹쳐 읽으며,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사이에서 들렸거나 들리지 않은 목소리들을 기록합니다.

“나의 머리를 테이프로 녹음하고, 나의 뇌에 마이크를 대고, 나의 혈관에 그 바늘을 찔러 넣어라.” [*] 프리드리히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유현주, 김남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9, 7쪽.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게 된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 서문을 여는 토머스 핀천의 문장은 마치 앙투안 볼로딘의 『찬란한 종착역』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찬란한 종착역』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깨닫는다 한들 깨어날 방법을 모르는 자각몽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더 나아가 소설 전체가 죽음과 탄생 사이의 경계 즉, 바르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나중에는 이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보이는 지경까지 나아간다. “어쩌면 나는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나 봐.” [*] 앙투안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김희진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2, 20쪽. 동료들의 설명을 통해 건너편 군인들의 움직임을 그려 보며 죽어 가는 바실리사 마라시빌리는 말했다. “아마 우리는 셋 다 이미 죽었고, 우리가 보는 건 그들의 꿈일지 모르지.”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20쪽.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가는 바실리사 마라시빌리를 동료 일류셴코에게 맡기고 마을을 찾기 위해 떠난 크로나우에르는 ‘찬란한 종착역’ 콜호스에 다다르고 거기서 이곳의 지도자인 솔로비예이를 만나게 된다. 축음기를 통해 어디서든 녹음된 솔로비예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가 꿈을 통해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콜호스라는 공동체가 사실 솔로비예이가 꾸고 있는 꿈이자 거대한 연극 무대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솔로비예이의 꿈속에 있으며 그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솔로비예이와 한때 부부였던 우드굴 할머니는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몸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인 동시에 초월자이며 인류가 꾼 가장 끔찍한 악몽인 핵 발전소의 피조물이다. 이 모두는 생존의 바깥의 있는 자들이며 그렇기에 시간의 바깥에 있는 자들이다. 이 소설에서 자꾸만 이 사람이 딸인지 아내인지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과 가장 가까웠지만 그 사람의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게 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이 세계 자체가 그런 식의 규정에서 벗어나 있으며 모든 쪽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콜호스라는 공간 자체가 그들이 이루고 싶었으나 실패한 가능성의 무대이며 투사된 꿈이기에 크로나우에르의 미래는 솔로비예이일 수도 있으며 아내였던 이리나 에첸구옌이 솔로비예이의 맏딸인 한코 보굴리안일 수도 있고 우드굴 할머니는 한코 보굴리안의 미래일 수도 있다. 그들은 서로의 미래이거나 과거이지만 동시에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꾸고 그 꿈의 창작자인 동시에 독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앙투안 볼로딘이 생각하는 문학적 평행 우주, 포스트엑조티시즘일 테니까. “여긴 제목도 날짜도 전혀 없는걸. 검은 공간에서 솟구치는 목소리지. 과거이면서 현재에도 속해. 미래에도 그렇고. 이건 귀가 아니라 배 속으로 들어야 해.”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54쪽. 죽음조차도 선택지에서 배제당해 버린,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존재하고 있는 돌연변이 피조물들의 꿈, 그건 어쩌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서사의 형태를 갖는 데 실패한 목소리, 가청 범위에 도달할 수 없는 주파수들의 꿈이 아닐까.

크로나우에르는 솔로비예이의 딸 셋 중 하나인 사미야 슈미트를 구해 줬으며 콜호스까지 업고 왔지만 솔로비예이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그가 자신이 딸을 해코지했다고 주장한다. 크로나우에르는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고 거듭 말하지만 문득 그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일이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공격해야 하는 대상은 솔로비예이의 증언이 아니라 그 비난의 부조리함임을 깨닫는다”.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110쪽. 그저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위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소개하는 살로모 프리들랜더의 짧은 글 「괴테가 축음기에 대고 말하다」(1916)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데 여기서는 왜 축음기는 1800년경에 발명되지 못했을까 그때 축음기가 있었다면 괴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워하는 소녀 안나 폼케의 말에 이미 죽은 괴테의 목소리를 재현하려 하는 압노사 프쇼르 교수의 얘기가 나온다. 교수는 연구 끝에 괴테의 성대 구조를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울림을 재현할 수 있고 소리를 증폭시켜서 울리게 할 수 있다면 마이크로 녹음하여 축음기로 그것을 들을 수 있다고, 아직 묻혀 있는 괴테의 시신을 검시하여 성대 구조를 본뜰 수 있다면 괴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게 괴테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데 성공한 교수는 안나 폼케 양을 초대하여 축음기의 손잡기를 돌려 괴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것은 정말 괴테이고, 그의 목소리이며, 그가 했던 말이에요. 하지만 괴테가 직접 한 말의 실제 반복은 아직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들은 것은 가능성을 반복한 것이지, 실제성을 반복한 것은 아니에요.” [*]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119쪽.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미래이기도 한, 귀가 아닌 배로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한마디로 가능성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말해진 적은 없으나 말해질 수도 있었던 목소리, 그런 목소리는 “존재했던 세계로부터가 아니라 존재할 세계로부터 온다”. [*]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137쪽. ‘찬란한 종착역’ 콜호스 자체가 솔로비예이가 꾸는 꿈이고 그의 목소리라면 그의 축음기를 통해 낭송되는 시와 이 거대한 연극 무대는 존재했던 세계로부터가 아니라 어쩌면 존재할 수도 있었던, 문학이었던 세계가 아니라 문학이 될 수도 있었던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일종의 부활이라면, 그러나 애초에 존재하지 못했고 죽은 적도 없었기에 부활시킬 수조차 없는 목소리라면. 그것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부활시키고자 노력하는 것 중 하나는 크로나우에르가 어떻게든 살리고자 했던 자신의 동료 (혹은 아내라고 얘기되는) 바실리사 마라시빌리이고, 또 하나가 있다면 바로 문학일 것이다. “몸에 방사능이 너무나 많이 축적되어 그녀는 이미 실제 살이 아닌 것으로 이뤄져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되살릴 수 있는 걸세…. 방사능 때문에 되살릴 수 있는 거야.”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157쪽. 솔로비예이는 일류셴코에게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만 그 부활의 방법에 대해선 끝내 나오지 않고 나중에 크로나우에르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내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포노그래프를 만든 “에디슨은 (기차 안내원으로 일했던 젊은 시절 모험의 결과로) 반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체적 결함이 기계적 사운드 기록의 출발점에 있었던 것이다”. [*]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52쪽. “최초의 타자기가 맹인에 의해 맹인을 위해 만들어졌고, 샤를 크로가 농아 학교에서 강의했었던 것처럼”, [*]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52쪽. 우리가 가진 결함은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발견하지 못하고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한코 보굴리안은 더 이상 쓸 재료도 없고 거처를 포기해야 했던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큰 소리로 산문을 이야기하고, 방금 작문한 것을 노래로 부르고 치는 소리로 텍스트에 새로운 박자를 부여해 가며 되풀이했다”.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443쪽. 오랫동안 우리가 물려받은 나쁜 꿈들,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던 강압적인 “좆의 언어” [*] 볼로딘, 『찬란한 종착역』, 231쪽 외. 를 벗어나 다시 쓰인 그녀의 문학은 자신의 기억에 탁월한 상태로 보존되지만 그저 하나의 목소리로 남는다. 이름은 잊어버릴지언정 이미 우리 안에 새겨진 주파수는 문학의 꿈을 꾼다. 어쩌면 내용이나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주파수를 인식하는 일인데, 그걸 들을 수만 있다면 그 목소리가 곧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에서 죽어 가는 코민포름에게 티베트 경전인 『바르도 퇴돌』 대신 『죽은 동물 조리법』을 읽어 주는 스트로부쉬처럼. “그에게 책을 읽어 주시오, 내용은 중요하지 않소…! 그의 통찰력을 유지해 주시오!” [*] 앙투안 볼로딘,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조재룡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5, 31쪽.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내용보다도 통찰이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말하는 침묵” [*] 볼로딘,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94쪽. 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앙투안 볼로딘과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에 등장하는 작가이자 배우인 보그단 슐룸은 관객들이 숲을 통과하는 긴 산책을 하고 그 말미에 진창길이 거듭되는 외진 공연장으로 찾아와 주길 바란다. 이미 이 공연장을 찾아가는 행위 자체가 극에 동참하는 일이고 그의 정신을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솔로비예이의 세계로 가는 오래된 숲길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바르도의 세계, 아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발화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는 사후 49일간 지속되는 중간 세계 바르도를 통과하고 있거나 통과하기 직전이거나 그 안에서 목소리를 따라가며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번역해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그건 『찬란한 종착역』도 마찬가지이며 이 소설이 총 49개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책 자체가 곧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바르도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굳이 읽지 않고서도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고,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으리라.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기서 굳이 이것을 읽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도, 이 페이지를 건너뛸 수도,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으리라”. [*] 볼로딘,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98쪽.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잊어버려도 어느 순간 내가 스쳐 지나갔던 이야기와 비슷한 다른 작품을 나도 모르게 연결시킬 수 있거나, 무의미의 언어에 가깝게 들리는 목소리를 마주할 때 그것을 감지해 내고 나만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안테나가 내 몸에 생긴다는 것. 안테나가 여러 개 생길수록 가청 범위는 넓어지고 더 많은 것들을 연결시켜 볼 수 있고 그렇게 연결한 것들을 토대로 나름의 지도를 그려 볼 수도 있다. 앙투안 볼로딘의 소설은 각자의 지도를 가질 수 있게끔 가청 범위 바깥의 주파수들을 위한 안테나를 우리 몸속에 심어 놓는다. 책에서 깨어나는 순간 기억은 잊히더라도 목소리들은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책을 벗어난 순간부터 목소리들을 위한 시간이 시작된다. 그 주파수들은 우리와 같은 꿈을 꾸었고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으니까. 여기까지다. 책을 덮고도 우리가 원한다면, 이제 더 멀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 볼로딘, 『바르도 오어 낫 바르도』, 111쪽.

나일선
소설집 『우린 집에 돌아갈 수 없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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