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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연대기 2: 금서가 된 SF, 이해조의 『철세계』
이지용

2024년 7월 9일 게재

‘한국 SF 연대기’는 격주마다 연재됩니다.

한국에 SF가 처음 소개되고 1년 후인 1908년, 이해조에 의해 또 한 편의 SF 소설이 번역된다.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 1879)이 원작이었다. 한국에 SF가 도입된 시기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지만 1900년대 초반에 쥘 베른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니 (SF가 하나의 장르로 정립되는 것이 1920년대에 들어서였음을 감안하면) 시류에 크게 뒤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국에서 또 다른 SF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1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한국의 두 번째 SF 『철세계』 표지, 1908, 종이에 인쇄, 세로 22cm.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표지화: 조석진.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부국강병을 위한 계몽이라는 목적성을 가지고 야심 차게 도입된 SF가 왜 그렇게 자취를 감췄을까? 단순히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시기상조였다거나 기대보다 계몽에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소개된 작품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사실 이 정도면 이렇다 할 시도조차 못 해 봤다고 할 수 있다. 부국강병을 위한 계몽은 왜 이렇게 실패로 끝났을까? 답은 의외로 싱겁게 나오기는 한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나마 소개된 두 편의 SF 중 하나가 금서(禁書) 목록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이해조 작품으로는 세 권이 금서 조치를 당한다. 이 중 그의 창작 『자유종』(自由鐘)은 대화체의 토론 형식으로 애국 계몽기 가장 정론적인 작품이지만, 나머지 두 편은 번역 작품이다. 그중 하나는 미국의 독립 영웅 워싱턴 전기를 번역한 『화성돈전』이며, 바로 이 『철세계』가 또 다른 하나였던 것이다.”(주 1)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철세계」(鐵世界)는 일제의 무단 통치가 시작되면서 금서 조치를 당한다. 더 이상 대중에게 노출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철세계」가 금지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장르로서의 SF를 금서 조치한 것이라면 (「해저여행기담」은 미완결 연재물이니 차치하더라도) 1912년에 김교제의 「비행선」은 어떻게 발표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해조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이해조(李海朝, 1869–1927)는 「자유종」이나 「화의 혈」 같은 신소설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는 본래 19살에 초시에 합격한 한학자였는데, 그런 그가 소설을 쓴 이유는 제법 명백해 보인다. 그에게 소설은 계몽을 위한 도구였다. 때문에 그의 소설은 민족성을 일깨우기 위해 동학 농민 운동을 소재로 삼거나(「화의 혈」), 구습인 미신의 타파를 주장하거나(「구마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정치 소설의 형식을 빌려 오거나(「자유종」),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구의산」) 그가 애국 계몽을 위해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는 것은 작품 세계 전반에 걸쳐 명백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목적성이 뚜렷한 그의 소설들이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충돌하면서 금서 목록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순수 창작물인 『자유종』이야 작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금지되었다 하더라도, 번역물까지 금서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은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더군다나 창작물도 단 한 편만 금서로 지정되었다.) 금서 조치를 당한 작품 중 미국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워싱턴의 전기인 『화성돈전』(華盛頓傳)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지만 『철세계』는 왜 금서 목록에 포함된 것일까?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철세계」도 그 내용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작품을 읽어 봐야 한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저여행기담」은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어 읽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철세계』는 다행히 한글로만 되어 있어 현재의 독자들이 읽기에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원작인 『인도 왕비의 유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사라쟁은 자신이 꿈꿔 온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빌이란 도시를 건설한다. 또 다른 상속자였던 슐츠는 사라쟁으로부터 건네받은 절반의 유산으로 슈탈슈타트를 건설한다. 모든 구성원에게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며 생명 연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한 프랑스빌과 달리 철저하게 기계화된 도시인 슈탈슈타트는 사람들을 부속화, 부품화시켜 발달한 기계 시설로 병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특히 황소탑에서 발사하는 대포는 도시 하나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또한 슈탈슈타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프랑스빌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슈탈슈타트가 가장 이상적인 도시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둘 가운데 하나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슐츠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슐츠의 계획은 슈탈슈타트에 잠입한 마르셀에 의해 밝혀지고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탈슈타트의 멸망으로 인해 프랑스빌은 가장 이상적인 도시로 인정받아 자주독립까지 이룩해 낸다.

슈탈슈타트의 황소탑에서 만든 거대한 대포.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작품은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빌과 기술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부속처럼 여기며 전쟁을 일삼는 슈탈슈타트의 대립을 보여 준다. 이것은 1870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벌어지며 생긴 두 나라 사이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때문에 작품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전체주의적 성격을 가진 슈탈슈타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철세계』에서 사라쟁과 슐츠는 각각 좌선과 인비로, 프랑스빌과 슈탈슈타트는 장수촌과 연철촌으로 옮겼는데 분량 면에서 축약이 있을 뿐, 주요 사건들은 거의 편집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인도 왕비의 유산」이 슈탈슈타트(연철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내용과 달리 ‘철세계’를 제목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는 이해조가 중역학 중국어 번역본의 제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이를 통해 그 시절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과학이라는 언표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인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주 2) 당시의 과학이란 인간의 삶의 질이나 복지 같은 것을 개선하기 위한 관심보다는 주변을 개조하고, 나라의 국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모습들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는 중공업 위주의 이미지가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해조의 『철세계』는 원작이 가지고 있던 슈탈슈타트에 대한 비판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보여 주는 경이롭고 미래적인 인상들을 강조하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원작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번역되었음에도 일제가 금서 처리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들이 식민지 조선에 전해지는 것이 부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세계』의 연철촌은 기계들로 자동화되어 있는 경이로운 도시의 모습과 막강한 군사력이 이상향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인도 왕비의 유산』에서의 슈탈슈타트는 결국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전체주의‧제국주의적 지향에 대한 비판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메시지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일제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더욱이 원작보다 좀 더 비중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마극(원작의 마르셀)의 설정과 활약상은 여러모로 당시 한국의 실정과 맞닿는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마극의 고향으로 나오는 아이사사는 프랑스의 알자스의 음역어인데, 이는 프랑스가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프로이센에 넘겨준 지역이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쟁 지역이었고, 프로이센에게 넘겨주게 된 것도 일종의 강제 합병과 같은 형태였다. 이러한 분쟁은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알자스-로렌이 프랑스에 재편입될 때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둘러싼 비판적인 시각은 원작에서도 드러난 바 있고, 『철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슈탈슈타트에 잠입하여 경이로워 보였던 도시 이면의 여러 부조리를 보게 된 마극이 제국주의적 욕망의 상징인 거대한 대포의 존재를 밝혀내고 병기가 사용되는 비극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의 맥락들은 식민지 조선에도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도 왕비의 유산』이 이야기하고 있는 제국주의와 기계화, 근대화된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힘에 의해 영토를 빼앗긴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이 추구하던 제국주의와 식민지 확장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인식이 대중에게까지 퍼지는 것은 근대화의 완성을 기치로 내걸며 식민화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일제에게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단순히 서구 문물에 대한 계몽이 아니라, 맹목적인 근대화와 제국주의가 불러오는 폐해까지 일깨울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국주의와 기계화된 문명을 파훼한 프랑스빌이 자주적으로 독립을 이루는 과정은 식민지의 폐해를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립의 가능성까지도 제시할 수 있었다. 결국 일제의 입장에서 이 작품에 대한 금서 조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국민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기계로 뒤덮힌 철세계, 슈탈슈타트.

물론 이해조가 이러한 사상적인 계몽성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은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이해조의 다른 창작 소설들을 볼 때, 『철세계』 역시 신소설 특유의 권선징악적 요소들이 뚜렷했고, 제목에서 드러나듯 기술로 인해 변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개에 좀 더 의미를 두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설의 발표 연도가 1908년이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라고 했을 때 이러한 가정도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의 변화로 인해서 당초 예상과 달리 소설은 금서 조치를 당했고, 이렇게 경색된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김교제가 2년 뒤 대중성을 강조한 「비행선」을 내놓지만, 한국에 SF가 전달되는 작업은 잠시 멈추게 된다. 이후 조국을 계몽시켜 근대화된 나라를 이루려는 포부를 가지고 도입되었던 SF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그것도 일제가 1920년 이후 문화정책이라는 명목하에 형식적인 출판의 자유를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말은 부질없지만 한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번역된 작품이 『철세계』와 같이 당시의 시대 상황과 부합하는 작품이 아니었다면, 애국 계몽 운동을 하던 이해조가 번역한 작품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금서가 되지 않고 꾸준히 대중들에게 작품이 노출되었다면 한국의 SF는, 그리고 장르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인식들은 그 시작을 조금 달리할 수 있었을까?



1. 유철상, 「번역을 통한 ‘자미’와 ‘영향’의 재창조」, 『한국 개화기소설 연구』(서울: 태학사, 2000), 216.

2. 모리다 시겐(森田思軒)이 1887년 처음 ‘불‧만이학사 이야기’(仏‧曼二学士の譚)라고 번역했고, 이를 중국의 포천소(包天笑)가 1903년 ‘철세계’라는 제목으로 중역했다. 이해조는 포천소의 번역본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본이 아니라 중국어본을 선택한 것은 한학자였던 이해조의 작가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김종방, 「한국 과학소설의 성립과정 연구」(석사논문, 세종대학교 대학원, 2009), 27–51 참조.

이지용
문화 평론가, SF 연구자.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 SF 장르의 형성』이, 공저로는 『비주류 선언」, 『SF 프리즘」,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 『인류세 윤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