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De la Terre à la Lune, 1865)와 그 속편인 『달나라 탐험』(Autour de la Lune, 1869)을 번역한 『월세계여행』(月世界旅行)은 오랫동안 1924년 박문서관에서 발행되었다는 광고 문구만 확인 가능했을 뿐, 원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 전의 문헌에서는 『월세계여행』에 대해 파편적인 정보들만 언급되었고, 결정적으로 역자가 ‘신일용’(辛日鎔)이며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1975년에 발간된 김병철의 『한국 근대 번역문학사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모든 문헌에서 동일하게 언급되어 왔다. 하지만 2017년에 드디어 『월세계여행』의 원문이 발굴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정보들이 갱신되었다.(주 1) 그 과정에서 새롭게 정정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역자가 그간 알려진 것과 달리 신일용이 아닌 신태악(辛泰嶽)이라는 사실이다.
『월세계여행』의 원문 연구를 진행한 강부원은 그동안 이 작품의 역자가 잘못 알려진 이유는 애초에 역자인 신태악이 지닌 배경이 쥘 베른의 소설을 번역할 만한 인물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신태악은 사상 활동을 하다 1924년을 전후로 구속 기소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법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민지 말기에는 친일 혐의가 짙은 인물이다.(주 2) 해방 이후에는 우파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쥘 베른의 소설을 번역한 이력과 연관 지을 정보가 현격히 부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주 3)
『지구에서 달까지』를 번역한 작품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과 달리 그 속편 격인 『달나라 탐험』까지 함께 묶어서 펴낸 책이라는 점 역시 원문이 발굴되어 자료를 대조해 본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김교제의 『비행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월세계여행』 역시 발간된 지 10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 근대문학사의 한 자리에 포섭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는 그동안 일관되게 나타난 SF 텍스트들에 대한 배제의 맥락을 재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시기 근대화라는 맥락을 놓고 보면 한국의 근대 문화를 논하면서 SF, 즉 과학소설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절실했던 구한말에 쥘 베른이 보여 준 새로운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놀라웠다. 바닷속 깊은 곳을 탐험하고(해저 2만 리), 하늘을 여행하면서(80일간의 세계 일주) 인간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공간과 그곳에 도달하는 이동 수단을 제시했던 쥘 베른은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에서 예전이라면 감히 도달하려는 꿈도 꾸지 못했을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우주선이라는 이동 수단을 예지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러한 상상력이 가진 힘은 최초의 SF 영화라고 평가받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1902)이 이 작품을 원작으로 삼을 만큼 인상적이었다.(주 4)
물론 신태악이 쥘 베른의 작품을 프랑스어에서 직접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한국 SF의 도입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작품도 일본어판을 중역(重譯)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작품을 전편(前篇)과 후편(後篇)으로 나누어 한 권으로 묶으면서 원작에 상당한 변형을 가했다. 전체 28장이었던 「지구에서 달까지」는 21장으로 축약되었고, 23장이었던 「달나라 탐험」은 10장으로 생략되는 등 과감한 편집이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주 5) 전편에는 ‘월세계(月世界)로’라는 제목이, 후편에는 ‘월(月)을 순회(巡廻)하야’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각각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에 대응하는 제목이 부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장만 축약된 것이 아니라 내용도 빈번하게 변형되었다. 특히 쥘 베른의 소설에 늘 등장하는, 다분히 모험적이고 혁명가다운 재치와 유머를 지닌 인물들의 성격이 평면적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부원은 이러한 변화가 신태악의 번역에서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판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공적 발화의 영역에서 이성과 유머를 분리하는 동아시아의 오랜 관행이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주 6) 결국 여기서도 구한말 조선에서와 같이 SF 소설들을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계몽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역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알려졌던 신문 광고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인식은 더 뚜렷해진다.
“특히 나의 사랑하는 청년남녀 학생의 필독을 권하며 나아가 재삼독파를 충고하는 바이다. 그것은 취미로 보고도 천문을 알고 흥미에 취하야 수학을 깨닷게 되며 또한 그 구구의 명문과 절절의 쾌작이 자연히 우리로 하야금 용장한 기분를 소스게 하는 까닭이다.”(주 7)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청년남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취미로 이 책을 보면서 천문학에 매력을 느껴 수학(數學)을 깨닫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를 통해(해당 광고에서 이 작품을 모험소설이라 지칭하고 있다) 진취적인 인물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1920년대 이후에 나타났던 계몽주의의 영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자 1907년 『태극학보』에서부터 서양의 SF 소설들을 번역하면서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은 남북전쟁 이후 전쟁으로 발생한 자원과 기술을 활용해 그동안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했던 달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지구에서 달에 처음 사람을 보내는 나라가 쥘 베른의 모국인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며, 우주선을 달로 쏘아 보내는 장소도 플로리다주 부근이라는 설정은 마치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대한 대포라는 사실상의 병기를 활용하는 문제와 거기에 들어가게 될 우주선, 즉 포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제시하는 과학적 정보들은 구한말 한반도에서 보기에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서구가 가지고 있는 힘의 상징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우주로 가는 수단으로 대포를 사용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임피 바비케인은 대포 클럽의 회장이다.(『월세계여행』에서는 ‘대포구락부 회장 ㅅ바-비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대포를 개발하고 개량했던 대포 클럽은 전쟁이 끝나면서 자신들의 효용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그들이 달에 가고자 했던 것은 우주에 대한 선망이나 꿈보다는 자신들의 산업적 효용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는 다분히 풍자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이지만, 신태악의 『월세계여행』에서는 유머러스한 설정들이 대거 소거되면서 풍자적인 인상이 줄어들게 된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수학과 물리학 방면의 이론과 지식이었다. 니콜 대위와 미셸 아르당 등이 논쟁하면서 제시하는 다양한 물리학 법칙들은 당시 발달하던 서구 자연과학에 대한 방대한 자료이기도 했다. 그 예로 『월세계여행』에서는 각종 측정에 대한 지표들이 강조되고, 그 외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요소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축약되었다. 특히 당시 병기를 만들면서 당연하게 고려되었던 수치화된 정보들이 이야기 속에서는 한국에는 없었던 정보들을 전달하는 환상적이고 마법적인 인상으로 변모했다.(주 8) 물론 원작인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대포 클럽의 감춰진 욕망, 그리고 제국주의적 시각을 두루 풍자하면서 실제 정보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섞어 이들을 조소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월세계여행』으로 번역되어 들어오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기술과 허무맹랑한 기술은 구분되지 않은 채 일종의 미래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생략과 변화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후편인 『달나라 탐험』에서도 마찬가지다. 달에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론을 점검하고 투자를 받아 결국 달에 사람을 보내게 된 바비케인과 니콜 대위, 미셸 아르당은 두 마리의 개와 함께 포탄을 타고 달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어떤 상태인지, 지금 포탄이 어떻게 달로 향하고 있는지 물리학적 이론을 토대로 대화를 나누고, 달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제법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들의 행동이 가지고 있는 모순들을 희화하는 모습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월세계여행』에서는 소거되어 있다. 대신, 그들이 달에 도착하기까지 나누는 대화에 등장하는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적 대화들은 마치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부각된다.
신태악은 달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 이전에 작품 내에서 제시되고 있는 서구의 근대화된 과학 문화를 정보로 인식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 장과 그 안의 독자들에게는 선진의 문물이자 유의미한 읽을거리”로서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주 9) 그 과정에서 과학과 근대화는 일종의 권력 혹은 힘을 상징하는 물질적 표상이었고, 쥘 베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대한 기술적 장치들은 꽤나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는 『인도 왕비의 유산』이 『철세계』로 번역되면서 프랑스빌 대신 슈탈슈타트가 제목에 드러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대포 클럽이 만들어 낸 거대한 대포와 포탄은 『인도 왕비의 유산』에서 슈탈슈타트가 프랑스빌을 향해 겨눴던 거대한 대포와 같은 이미지다. 슈탈슈타트의 거대한 대포가 원래 지녔던, 평화로운 프랑스빌을 공격하려는 무기로서의 부정적인 이미지 대신 그 거대한 힘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월세계여행』에서도 전쟁 후의 기술에 대한 남용과 그것을 허황되고 우스꽝스럽게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인 맥락들은 소거되고, 과학기술이라는 거대한 힘을 이용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이들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 전쟁을 위해 준비했으나 이제는 효용이 없어진 거대한 대포를 달에 가는 데 이용한다는 허무맹랑하기도 한 이야기는 1920년대 한국에서 대포라는 강력한 병기에 대한 선망, 그리고 달나라 여행을 꿈꿀 수 있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들에 대한 선망이 깃든 이야기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 소개된 초기 SF 텍스트들을 살펴보는 작업은 그 시대에 꿈꿀 수 있었던 가장 진보적이고 과감한 상상력들을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주
1. 강부원, 「쥘 베른 소설 『월세계여행』 번역본 발굴과 그 의미: 오인된 번역자와 거듭된 중역(重譯),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문학」, 『근대서지』, 17호(2018): 77–98 참조.
2. 같은 글, 80–82 참조.
3. 이에 비해 그동안 역자로 잘못 알려졌던 신일용은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 활동 경력과 『조선일보』 논설 활동을 비롯해 러시아 문헌을 번역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또한 신태악의 호가 일성(一星)이라 ‘신일성’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므로, 다양한 추측들만 존재하고 실제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월세계여행』의 역자를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글, 82–83 참조.
4. 이외에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달에 간 첫 번째 사람』(The First Men in the Moon, 1901) 역시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다.
5. 김미연,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1920년대 과학소설 번역과 수용사』(서울: 소명출판, 2022), 338–339 참조.
6. 강부원, 「쥘 베른 소설 『월세계여행』 번역본 발굴과 그 의미」, 87.
7. 『동아일보』, 1924년 5월 25일 자, 1면.
8. 김미연,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355–359 참조.
9. 같은 책, 364.
문화 평론가, SF 연구자.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 SF 장르의 형성』이, 공저로는 『비주류 선언』, 『SF 프리즘』,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 『인류세 윤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