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원자폭탄이 불러온 충격과 그를 가능케 한 원자력은 이후 1950년대까지 미래를 상상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SF에서도 이와 관련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인류가 개발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반영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원자폭탄으로 패전을 맞이한 일본에서는 관련된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감은 한국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원자력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사회 전반에 어렸다.(주 1)
한국은 1955년 7월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고, 그해 8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원자력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면서 원자력 도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주 2) 이 과정에서 군사적인 측면은 표면적으로 사라지고, 에너지 활용 및 과학기술 발전의 도구로서 원자력이 부각했다.(주 3)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무기로 활용되는 원자력의 위협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져올 풍요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앞섰다.(주 4) 한반도에서 원자력은 일제로부터 민족을 구출한 기술이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은 근대화 시기부터 꿈꿔왔던 강대국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한편 원자력에 관한 관심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새로운 시대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바로 우주 시대의 개막이었다. 1957년 10월 소련에서 쏘아 올린 위성 스푸트니크 1호는 냉전으로 양분된 체제하에서 누군가에겐 위대한 업적이었고, 누군가에겐 커다란 위협이자 충격이었다. 냉전의 상징과도 같은 분단을 경험하고 있던 한반도는 양분된 세계의 축소판을 보여주듯 남한에서는 우주 공간에서의 폭격을 두려워했고, 북한에서는 위성의 위치를 생중계하며 놀라운 업적으로 찬양했다.(주 5)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당연하게도 한국 SF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작가가 바로 한낙원이다.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한 한낙원은 평양공업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일찍이 교육에 뜻을 두었으며, 유엔군 심리작전처 방송부장과 한국민사원조처 방송 고문관 등의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에 대한 관심을 이어 나갔다. 이는 ‘우리들의 과학’ 시리즈나 ‘쉽게 풀이한 원자 과학’ 『새로운 원자력 지식』(1961) 같은 대중적인 집필 활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주 6) 특히 원자력 기술의 등장부터 우주 시대까지 과학기술 발달로 인해 급변하는 세상을 목도하고 이를 SF 작품으로 녹여낸 것은 작가의 이력이 시대 상황 및 사회 분위기와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다.
한낙원은 1959년 잡지 『새벗』에 「화성에 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 SF 창작을 시작했다. 같은 해 『연합신문』에 「잃어버린 소년」을 연재했고, 1961년에는 『학원』에 그의 대표작인 「금성탐험대」를 연재했다. 이 작품들은 제목 앞에 ‘과학모험소설’이나 ‘과학소설’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또한 모두 우주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는다. 이전까지 우주가 배경인 SF 작품들이 대부분 서구나 일본의 작품을 번안하거나 번역한 작품들이었다면, 한낙원에 이르러 창작 SF에서 우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우주 관련 이야기들은 쥘 베른이나 H. G. 웰스 시절, 혹은 1930년대 미국 SF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에서부터 이어진 상상력을 거쳐 새로운 국면으로 확장되는 시기였다. 특히 1961년 소련의 보스토크 1호가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 이후, 우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더 이상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상상의 영역에 머물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소련의 우주 개발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우주 경쟁에 박차를 가하면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발전이 이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비하의 의미들이 퇴색되고, 극적인 묘사와 거대한 서사를 갖춘 모험담으로 변화하기도 했다.(주 7) 그런데 한낙원의 작품들, 특히 초기의 대표작은 정확하게 이러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전까지 한국 SF가 대체로 서구 근대 과학기술에 계몽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를 통해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하려는 경향이 강했음은 반복해서 확인한 내용이다. 한낙원의 작품도 근대화 프로젝트와 결부된 국가주의 가치관을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는 SF를 단순히 도구로 치부하고 표면적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기존 작가들이 서구 SF의 특정 소재나 과학기술, 미래상 등을 단순히 모사하며 창작에 접근했다면, 한낙원은 ‘장르로서 SF’를 인지하고 창작에 적용한 최초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발표한 「화성에 사는 사람들」, 「잃어버린 소년」. 「금성탐험대」, 「우주벌레 오메가호」, 「목성탐험대」, 「우주전함 갤러시안」 같은 작품들은 SF의 하위 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형식을 충실하게 차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낙원의 창작 활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약 40여 년간 SF 장르의 형태로 일관되게 이어졌다. 즉 한낙원은 한 작가의 창작 경향이 SF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최초의 작가로서, 한국에서 SF 전문 작가의 탄생을 알린 인물이라 할 수 있다.(주 8) 이는 SF가 단순히 사회적 이슈나 유행에 편승한 도구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장르’(genre)에서는 수많은 에피고넨을 형성시킬 만큼 영향력을 가진 작품과 그것을 창작해 내는 작가의 등장이 중요하다. 물론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시대를 지나면서 모여들어 장르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폭넓은 대중화를 위해서는 소위 유명세를 타는 작품이 필요하다. 하나의 작품이 유명세를 타거나 의미를 인정받으면 사회적으로 그와 유사한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이런 관심에 부응하면서 독립된 장르 형식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SF의 경우에도 미국에서 장르로서의 형성기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표 작가들이 있고, 판타지 역시 그 형식적인 시작과 변용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한낙원이라는 전문 작가의 등장이 본격적인 장르로서 한국 SF에 끼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낙원의 작품 세계는 그를 연구한 김이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① 한국의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고, ② 외계인과의 관계를 다루며, ③ 모험과 미스터리를 활용하면서 ④ 미해결 혹은 비극적 결말을 취하지 않고 갈등이 해소된 해피엔딩의 결말을 취한다.(주 9) 이들 특징은 우선 한낙원의 작품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SF 작품에서 아동‧청소년이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거나 가르침을 받는 인물로 등장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동‧청소년을 주요한 독자로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그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외계인의 등장과 모험과 미스터리라는 장치들을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한낙원이 한국 SF의 선구자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 문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가, 한국 문학계의 헤게모니와 동떨어진 SF 장르를 전문적으로 창작한 작가라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주 10) 하지만 한낙원은 한국에서 SF가 장르로서, 혹은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작가다. 그의 작품이 대상으로 했던 아동과 청소년이 해당 장르의 형식, 즉 관습들을 어릴 적부터 경험함으로써 향후 독자적인 장르로서 SF를 향유할 수 있는 대중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낙원의 창작 작업들은 우주 시대라는 당시의 시대적 변화 양상과 맞물려 더 큰 의미를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자료들을 보면 우주여행에 관련된 소설이나 만화 등에 대한 수요가 1960년대에 계속 발생했고 한낙원의 작품들이 그 수요에 부응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주 11)
게다가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SF 장르에 대한 이해는 이전의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단편적이고 도구적인 접근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우선 대표작인 「잃어버린 소년」과 「금성탐험대」에서 보여주었던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한 이해는 그 배경과 장르의 변화 양상을 명확하게 짚고 있다.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가 기존 서부극에 대한 수준 낮은 모방작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거대하고 새로운 영역을 향한 개척과 인간의 도전 정신을 의미화하는 작품들로 변모하던 시점을 잘 반영한다. 외계인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키면서 한국 SF에서 외계인 소재의 시작을 알렸을 뿐 아니라 로봇 등의 비인간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간 SF라는 장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요소들을 비로소 한국의 창작물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했다.
SF적 소재를 한국의 시대 상황에 맞춰 녹여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잃어버린 소년」에서 세계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연방 체제를 이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과학적으로 우위에 선 모습으로 연방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설정 자체는 과학 강국에 대한 의지를 보였던 기존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소련과 그 영향을 받은 공산권 국가들을 대립 세력으로 설정하면서 냉전이라는 시대 배경이 작품에 개입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금성탐험대」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드러나서,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를 훨씬 더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는 당시 우주 시대가 개막하면서 SF 서사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설정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변용한 창작물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외계인이나 로봇 역시 단순히 흥미를 위한 동화적 장치로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법칙’을 인지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들 최후의 날」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등장하는 RA-3라는 로봇을 두고 인물들이 그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주 12) 특히 한낙원의 작품에 나타나는 외계인과 로봇을 위시한 비인간 캐릭터들은 위협이 되는 존재로부터 함께 공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들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단순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활용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SF의 장르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그 의미의 확장이 가능하다.
외계인과 로봇은 모두 SF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캐릭터들이다. 로봇은 명확하게 카렐 차페크의 1920년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으로부터 등장했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서사를 대표하는 것은 H. G. 웰스의 『우주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초기에는 인간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로 그려졌지만 이후 1950년대를 지나면서 로봇은 아시모프의 로봇 3법칙에 의해 다양한 의미들이 모색되기 시작했고, 외계인도 1953년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같은 작품을 통해 인류를 위협하는 공격적인 괴물에서 인류와 교류할 수 있는 존재들로 변모하고 있었다. 한낙원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며, 이를 통해 그가 SF에 대한 장르적 이해와 경험을 이미 상당 부분 축적하고 있었고, 그것이 창작에 그대로 적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낙원 이후 자신을 SF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광운 등이 결성한 ‘SF 작가 클럽’의 구성원들이 있고, 스스로 최초의 SF 단편집을 냈다고 밝힌 안동민 같은 이들도 있다.(주 13) 하지만 그들 앞에 한낙원이 있었고, 자신의 작품 생애 전반에 걸쳐 SF라는 장르의 형식을 유지한 작가로서 그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전쟁 이후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일어서려는 시점에서 원자력과 우주 시대라는 거대한 기술적 변화를 목도하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했으며, SF라는 장르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경험을 한국의 시대적 상황에 적용해 한국 SF의 장르적 시작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국가주의적이고 계몽적인 도구의 역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대중문화로서 SF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
1. 과도기적으로 원자력 기술에 공포를 느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쟁을 종식한 구원의 상징으로서의 인식이 컸다. 권보드레,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 43호(2012): 332–340 참조.
2. 「원자력평화회의의 총결산과 전망」, 『경향신문』, 1955년 8월 23일 자, 1면.
3. 김성준, 「1950년대 한국의 연구용 원자로 도입 과정과 과학기술자들의 역할」, 『한국과학사학회지』, 31권 1호(2009): 139–168 참조.
4. 이영재, 「1950년대 미국과 일본의 괴수영화와 핵」, 『사이間SAI』, 25권(2018): 64 참조.
5. 김민선, 「냉전의 우주와 1960년대 남/북한 SF의 표정: 김동섭, 『소년우주탐험대』(1960)와 한낙원, 『금성탐험대』(1963) 읽기」, 『민족문학사연구』 70(2019): 170–171 참조.
6. 한낙원,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김이구 엮음(서울: 현대문학, 2013), 564–567 참조.
7. 셰릴 빈트, 마크 볼드, 『SF 연대기: 시간 여행자를 위한 SF 랜드마크』, 송경아 옮김(서울: 허블, 2021), 125 참조.
8. 김이구, 「한국과학소설의 개척자, 한낙원」,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 544 참조.
9. 같은 책, 552–553 참조.
10. 2000년대 이후로도 계속된 이런 인식에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 김이구의 연구다. 김이구는 나아가 한낙원의 이름을 건 문학상 재정을 제안했다.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한낙원과학소설상’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SF 신인 공모전으로 한낙원의 유족이 상금을 출연하고 ‘어린이와문학’이 주관한다.
11. 당시 잡지에 실린 우주여행 관련 소설들에 대한 감상평 등으로 해당 영역의 작품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수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손진원, 『1960년대 과학소설 연구』(석사논문, 고려대학교, 2017), 45–46 참조.
12. 한낙원, 『별들 최후의 날』(서울: 금성출판사, 1983), 63 참조.
13. 안동민, 『어느 날의 아담』(서울: 동민문화사, 1969), 355-356 참조.
참고
문화 평론가, SF 연구자.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 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한국 SF 장르의 형성』이, 공저로는 『비주류 선언』, 『SF 프리즘』, 『인공지능이 사회를 만나면』, 『인류세 윤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