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클호스
잇츠 어 원더풀 라이프
캐피톨 레코드
2001년
번역가 한국화 씨는 불어를 처음 배울 때 그 언어가 너무 잘 맞아서 말이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배우기도 엄청 빨리 배웠다고. (나는 글에 친구 이름을 적는 편은 아닌데 한국화 씨는 예외다. 한국화 씨는 이름이 특이하고 예뻐서 ‘국화 씨’라고 적고 부르고 싶다. 그의 아이 이름은 ‘루카’라서 ‘구카루카?’ 하고 발음을 이어 붙여본 적도 있다.) 내가 불어를 배울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불어가 내게서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었는데 당시의 삶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에는 불어를 어느 정도 하게 되었지만 꽤 오래 걸렸고 지금도 대단한 애정이 있거나 하지도 않다.
그런데 독일어를 배우면서는 국화 씨가 말한 그 느낌이 내게도 있다. 한 번 들은 단어도 쉽게 기억나고 이 단어와 저 단어 사이의 연결도 쉽다. 내 입에서 나오는 독일어 발음이 재미있고 자꾸 말하고 싶고 들리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한 달밖에 안 배웠는데도. 인삿말밖에 못하면서도 그런 예감이 든다. 오늘 독일어 학원에서 배운 단어 중에 재미있는 건 ‘분더바’(wunderbar)였는데 분더바는 나와 동행이 좋아했던 중식당 이름이기 때문이다. 중국인 사장님은 친절했고 마파두부는 그저 그랬지만 칠리오일이 들어간 국수가 맛있던 기억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편히 들르는 곳인지 소박한 차림의 손님들이 끊이지 않던 역 앞 작은 가게의 이름이 ‘분더바’라서 나는 그게 분더(wunder)라는 이름의 바(bar)인가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원더풀’을 뜻한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다. 분더바, 이 단어는 나에게 칠리오일이 들어간 국수의 맛인데, 원더풀이라니.
국화 씨가 그의 친구에 대해 해 준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는 누가 봐도 읽고 쓰지 않으면 죽을 것 처럼 문학에 몰두한 사람인데 본인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나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이슬아 작가는 “‘문학 작가’”와 “‘문학문학 작가’로” 분류했던가. 참 재미있고 정확한 농담이라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문학 작가와 문학문학 작가. 내가 아는 읽고 쓰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모두 그 딱딱하고 웃긴 발음과 잘 어울리는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어로 적어 본 ‘분더바’는 글자가 모두 직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단어이다. ‘원더풀’에는 동그라미가 하나 있다. 원더풀이라는 말은 나에게 “잇츠 어 원더풀 라이프”(It’s a wonderful life)라고 속삭이듯 노래하는 보컬 마크 링커스의 목소리로 들린다. 마크 링커스는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다가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환상적인 삶이야, 나는 너의 생일 케이크를 먹어 치운 개야”(I’m the dog that ate your birthday cake) 이런 가사를 살피며 그에게 원더풀 라이프는 뭐였을까, 직선으로 되어 있는 평평한 일상 속에 떠오른 동그라미 하나 같은 거였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시인.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시집 『나이트 사커』 『세트장』 『싱코페이션』,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 『시차 노트』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