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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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개정판)
Retromania: Pop Culture’s Addiction to Its Own Past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 최성민 옮김

대중문화의 미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건… 자신의 과거가 아닐까?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21세기 들어 당신은 정말 새로운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예컨대, 60년대 사이키델리아, 70년대 포스트 펑크, 80년대 힙합, 90년대 레이브처럼 미래로 솟구치는 시대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 책 『레트로 마니아』의 저자이자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없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21세기 첫 10년은 미래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라 ‘재(re-)’시대였다. 끝없는 재탕과 재발매, 재가공, 재연의 시대이자 끝없는 재조명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아이팟과 유튜브 등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손에 쥐고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신나게 과거를 여행하는 것뿐이다.
『레트로 마니아』는 대중음악을 필터로 삼아 우리 문화 전반에 만연한 레트로 문화를 처음으로 철저히 파헤친 책이다. 그저 상업적인 복고 경향에 대한 한탄을 넘어 이러한 문화가 우리 시대의 독창성과 독자성에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한다. 서두부터 저자는 충격적인 팝의 종말을 예고한다. 결코 끝까지 듣지 않는 호화 박스 세트와 함께, 대학 시절에 듣던 앨범을 충실히 재연하는 회고 공연의 값비싼 입장권과 함께, 팝은 종언을 고한다.

레트로 음악부터 미술, 패션, 뉴미디어… 레트로 포르노까지, 우리는 과연 과거를 고갈하며 문화 생태적 파국으로 내닫고 있는가?

텔레비전을 틀어보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끝없는 과거의 재탕뿐이다. 음악 프로그램은 ‘오늘’의 가수에게 전설의 명곡을 부를 것을 요구하고 ‘응답하라’의 감수성으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영화관에 가면 당신은 과거 고전의 행렬을 발견할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스타 트렉」과 「배트맨」의 프리퀄이 어디까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지 섣불리 장담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레트로 문화가 우리 시대를 위협하는 중대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해 음악, 패션, 미술, 뉴미디어는 물론 레트로 장난감과 레트로 포르노 산업까지… 전방위 문화 영역에서 발견되는 풍부한 단서를 끌어온다.

물론 과거에도 지나간 시대를 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숭배한 르네상스는 말할 것도 없고 팝의 역사를 다시 썼던 펑크도 처음엔 복고적 뿌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과거의 레트로가 복고를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했다면, 오늘날의 레트로는 자신의 과거를 갉아먹을 뿐이다. 그 맥락은 무시된 채 단지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재탕되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만연했던 20년 주기 복고 경향도 사라진 지 오래이며, 심지어 2000년대가 지나기도 전에 2000년대가 과거의 유령으로 소환된다. 저자의 말마따나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 이어서 저자는 묻는다. 그러다 과거가 바닥나면? “지난 10년간 나타난 음악 중 미래에 노스탤지어와 레트로 유행을 충족해줄 만한 게 과연 있을까?” “우리는 팝 역사가 고갈하는 문화 생태적 파국으로 내닫고 있지 않은가?”

아이팟, 유튜브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선사한 레트로 풍경

저술가 빌 플래너건은 이미 1989년에 “다음 번 (…) 비틀스 역은 아마 기술이 맡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그는 콤팩트디스크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우리 시대는 “팝 역사상 최초로…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 기술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팟과 유튜브는 우리에게 거의 무한대의 접근성과 선택권을 주었고 한 개인이 일생 동안 들어도 모자랄 방대한 양의 온라인 아카이브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들을 음악이 너무 많은 우리는 더 좋은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는 스크롤바나,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는 컨트롤 버튼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선택에 대한 부담마저 임의재생 모드가 해결해주니, 우리가 할 일이라곤 그저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쓸어 담는 일밖에 없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은 과거와 다른 레트로 풍경을 선사했다. 과거와 현재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까지도 클릭 한 번이면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 과거의 시공간과 현재의 시공간이 뒤섞여 곤죽이 되어버린 이 평평한 레트로 풍경은 음악의 소비는 물론 생산에도 영향을 주었다. 샘플링과 매시업이 대표적이다. 그레이트풀 데드가 초창기부터 녹음해온 음원을 해체하고 샘플링해 만들어낸 앨범에는 밴드의 25년 세월이 한꺼번에 녹아 있다. 오시미소의 「전주 점검」(Intro Inspection)은 유명한 팝송 수백 편의 전주를 꿰매 이은 12분짜리 곡이다. 이런 판이니 마이클 잭슨이 신곡을 발표하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날의 음악가가 경쟁할 대상은 더 이상 당대의 음악가가 아니다. 수지 맞는 장사는 아니지만, 그들은 수많은 과거의 대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낡음의 충격과 잃어버린 미래,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

박물관으로 들어가버린 록과 우리 시대의 기술, 록 수집 문화와 유통 산업 등 ‘오늘’의 레트로를 살핀 저자는 이러한 레트로 패러다임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어제’로 돌아가 1960년대 중반 극단적 모더니즘이 초기의 레트로 문화로 전환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트래드와 노던 솔 복고, 반동적 충동에서 태어난 펑크, 미래로 후진했던 뉴욕 돌스와 패티 스미스, 자신이 경험한 시간 왜곡 광신도들의 모습 등을 통해 피에르 카르댕과 르 코르뷔지에의 전위가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패스티시로 변하는 모습을 살핀다.

이렇게 어제의 ‘어제’를 살핀 저자는 이윽고 ‘미래’에 대해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과거가 약속했던 미래는 없거나, 적어도 아직은 오지 않았다고. 그리고 자신 안에 공존하는 미래에 대한 열망과 레트로에 대한 충동을 고백하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레트로 마니아는 계속 머물까, 아니면 그 역시 하나의 역사적 단계로서 언젠가는 뒤에 남겨질까?” 그는 담담한 말투로 말을 잇는다. 데리다의 개념을 차용한 ‘혼톨로지’와 ‘힙너고직 팝’에서 현재의 일방적인 레트로를 우회하는 문화적 징후를 읽어내고 포스트 프로덕션을 논한 프레드릭 제임슨과 DJ 모델을 제안한 니콜라 부리오 등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에 기반해 ‘하이퍼 스태시스’(hyper-stasis) 개념을 제시한다. 점점 가속하는 시대와 점점 느려지는 문화 사이의 불화를 봉합하기 위해 고안한 저자의 개념이 우리 시대에 다른 돌파구를 찾아줄 수 있을까? 적어도 저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발췌

내가 상상하는 각본은 대재앙이 아니라 점진적 쇠퇴에 가깝다. 팝은 그렇게 종말을 맞는다. ‘빵’ 소리가 아니라 네 번째 장까지 트는 법이 없는 박스 세트와 함께, 대학 초년에 죽도록 듣던 픽시스나 페이브먼트 앨범을 한 트랙씩 충실히 재연하는 공연의 값비싼 입장권과 함께, 팝은 종언을 고한다.

이처럼 레트로 의식은 문화 전반에 퍼졌지만, 그게 가장 만성화한 곳은 음악이다. 어쩌면 이는 특히나 음악에서 레트로가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팝은 현재형이어야 하지 않나? 팝은 여전히 젊은이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젊은이는 노스탤지어를 느끼지 않아야 정상이다. 소중한 기억을 뒤로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팝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 살라는, 즉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살면서 동시에 “어제의 족쇄는 벗어던지라”는 충고에 있다.

금융업자가 미래에 투자한다면, 밴드는 과거에 투기했다. 실제로 그 모습은 갖은 영향과 고위험 옵션, 안전한 장기 상품이 뒤엉켜 싸우는 증권시장을 닮았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영국 포크 지분을 팔고 80년대 초 독일 아트 펑크에 투자하는 편이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책이 출간될 즘 영향 중개인은 전혀 다른 상품을 추천할지도 모른다.

몇몇 예외를 빼면 박스 세트는 끝까지 듣기가 대체로 불가능하며, 여러 면에서 볼 때 실제로 들으라고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용도는 소유나 과시, 즉 고상한 취향과 지식을 증언해주는 데 있다. 보비 길레스피가 한때 시사한 대로 음악이 도서관이라면, 박스 세트는 아무도 펼쳐 읽지 않는 가죽 양장본에 해당한다. 큐레이팅돼 죽어버린 음악이다.

60~70년대라고 독창성 없는 음악인이나 그룹이 드물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런 음악인이 크게 성공하는 일도 흔했다. (비틀스에 크게 빚진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가 좋은 예다.) 그러나 그들도 비평적으로는 존경받지 못했다. 그런 존경은 진정한 혁신가 몫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달라진 점은, 대놓고 모방하는 그룹이 상당한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을 지나오면서 록 음악은 점차 패션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게 됐다. 시대 양식을 순전히 임의적으로 돌려쓰는 지경까지는 미처 이르지 않았지만, 그날도 멀지는 않은 듯하다. 한때 음악 스타일은 소비 사양이 아니라 긴박한 표현 욕구나 세대 내 연대감, 정체성 정치의 문제였다. 그러나 록이 근본적으로 예술 또는 반항으로 보였던 시대와 달리, 오늘날 그 모든 복장 놀이는 정서적 투자나 동일시를 끌어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

매시업은 팝의 역사를 감자처럼 으깨서 무분별한 회색 디지털 데이터 곤죽으로, 향미도 영양가도 없이 텅 빈 탄수화물 에너지의 혈당 폭발로 주물러낸다. 그 모든 장난기와 재미에도, 매시업은 연민을 자아낸다. 그건 척박한 장르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심지어 매시업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팟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매시업도 음악사의 모든 차이와 경계를 밀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기계에는 유령이 없다.

유산 문화를 장난스레 패러디하는 혼톨로지는, 매시업과 레트로가 대변하는 ‘미래 없음’에 저항까지는 아니더라도 우회하는 길을 두 방면에서 탐색한다. 첫째 전략은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미래가 우리에게서 무단이탈했다면, 급진적 본능이 있는 이는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공식 서사 내부에 숨은 대안적 과거를 발굴하고, 팝의 공식 서사 후미에서 기이하되 비옥한 줄기와 걷지 않은 길을 찾아내 역사의 지도를 다시 그림으로써, 과거를 낯선 외국으로 바꿔놓는다.

앞부분에서 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거래하는 힙스터 증권시장 개념을 다소 엉뚱하게 동원해 음반 수집가 록과 금융업을 비교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사실 상당히 놀랍다. 세계 경제는 파생 상품과 불량대출 때문에 무너졌다. (…) 마찬가지로, 힙스터 귀족이나 블로그 귀족만 양식적 짜임새를 이해할 수 있으리만치 지시성을 고도화한 밴드와 미세 장르는, 월가나 런던 금융가의 극소수만 헤아릴 수 있는 ‘복합 금융 상품’을 닮았다.

첫머리에서 던져놓고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레트로 마니아는 계속 머물까, 아니면 그 역시 하나의 역사적 단계로서 언젠가는 뒤에 남겨질까? 바로 이런 진퇴양난에서 슈퍼 하이브리드나 포스트 프로덕션 같은 이론, 즉 지평선에 떠오르는 ‘새 시대’를 밝히고 싶지만 설득력이 모자란 소망이 나타났다.


추천사

지난 25년간 그보다 더 예민하게 시대 정신을 추적하고 정의한 음악 평론가는 떠올리기 어렵다. —데이브 해즐럼, 『가디언』

대중음악이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는 음악이라면, 과거가 가만히 흘러가기를 거부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레트로 숭배, 노스탤지어의 유혹, 음악 문화의 미래를 탐정의 차가운 눈과 애호가의 뜨거운 가슴으로 분석한다. —롭 셰필드, 저술가

신선하게 날카롭다. (…) 우리가 시간과—그리고 공간과—맺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두툼히 기술한 책으로서, 『 레트로 마니아』는 매우 널리 읽힐 가치가 있다. —수크데브 산두, 『옵저버』

사이먼 레이놀즈는 대중음악의 미래에 관해 냉혹한 질문을 던진다. … 오늘날 음악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비평. —패트릭 소어, 『데일리 텔레그래프』

엄청나게 재미있고 유익한 논쟁거리. —에밀리 매케이, 『NME』

『레트로 마니아』의 최고 성취는 스스로 비판하는 문화적 질환에 전혀 일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전에 본 듯하고 들어본 듯하다는 의심에 지친 독자라도, 이처럼 다양하고 날카로우며 흥미로운 각도에서 레트로에 접근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로 무너져 내리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그레그 밀너, 저술가

모든 게 놀라웠던 책. —임진모, 음악 평론가


차례

옮긴이의 글

머리말: 재탕의 시대
레트로 풍경
프롤로그—뒤돌아보지 마: 노스탤지어와 레트로

‘오늘’
1 팝은 반복된다: 박물관, 재결합, 록 다큐, 재연
2 토탈 리콜: 유튜브 시대의 음악과 기억
3 임의 재생에 빠지다: 음반 수집과 물체로서 음악의 황혼
4 좋은 인용: 록 큐레이터의 출현
5 일본 닮아가기: 레트로 제국과 힙스터 인터내셔널

‘어제’
6 이상한 변화: 패션, 레트로, 빈티지
7 시간을 되돌려: 복고 광신과 시간 왜곡 종족
8 미래는 없어: 펑크의 반동적 뿌리와 레트로 여파
9 록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영원하라): 끝없는 50년대 복고

‘내일’
10 흘러간 미래의 유령: 샘플링, 혼톨로지, 매시업
11 잃어버린 공간: 마지막 프런티어와 약진을 향한 노스탤지어

레트로 풍경(짤막한 반복)
12 낡음의 충격: 21세기 첫 10년의 과거, 현재, 미래

감사의 글
참고 문헌
찾아보기


지은이

사이먼 레이놀즈는 런던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음악 평론가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80 년대 중반 영국의 주요 음악 잡지 『멜로디 메이커』에 기고하며 저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뉴욕 타임스』, 『빌리지 보이스』, 『스핀』, 『 롤링 스톤』, 『 아트포럼』 등에 기고하며 포스트 펑크와 전자 댄스음악 등 진보적인 음악 형식을 다루는 글을 주로 썼다. 주요 저서로 『찢어버려, 그리고 다시 시작해: 포스트 펑크, 1978~1984』(Rip It Up and Start Again: Postpunk 1978–1984), 『에너지 플래시: 레이브 음악과 댄스 문화 여행』(Energy Flash: A Journey Through Rave Music and Dance Culture), 『황홀감: 록의 환희』(Blissed Out: The Raptures of Rock) 등이 있다.

옮긴이

최성민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와 미국 예일 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최슬기와 함께 ‘슬기와 민’이라는 디자인 듀오로 활동하는 한편, 번역과 저술과 편집 활동을 병행해왔다. 옮긴 책으로 『현대 타이포그래피』(로빈 킨로스 지음, 2009),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노먼 포터 지음, 2008), 써낸 책으로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최슬기 공저, 2008) 등이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가르친다.


편집

박활성

디자인

슬기와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