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의 13번 요원 황석원 씨의 퇴사를 축하드립니다. 워크룸에서 5년 반 동안 발휘한 것 이상의 근사한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3주 뒤에 폭파됩니다. — 워크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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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옮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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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옮기는 사람
Moji Ishoku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올김

다와다 요코의 소설 『글자를 옮기는 사람』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7권으로 출간되었다. 36권과 함께 출간된 이 책은 번역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2014년 번역 문학 총서로 시작된 ‘제안들’의 마지막 번호를 단 ‘끝의 시작’이다. 1권부터 현재 17권까지 출간된 ‘제안들’은 계속해서 순차로 출간되는 한편 37권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출간되기도 할 예정이다. 총서 권수에 특별한 의미는 없으며, 마지막으로 출간할 번호를 정하지 않았음을 밝혀 둔다.

번역 = 변신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여러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독일로 건너가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택해 두 언어를 병행하며 글을 써 왔다. 또한 독일 문학을 공부해 함부르크 대학교와 취리히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해 왔으며, 언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옮기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강연과 에세이로 밝혀 왔다.

30년 넘게 작가로 활동해 온 다와다 요코가 작품 활동 초기에 속하는 1990년대에 일본어로 써서 발표한 『글자를 옮기는 사람』은 번역에 관한, 번역을 상징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카나리아 지역의 한 섬에서 「성 게오르크 전설」이라는 기독교 설화를 번역하는 내용인데, 줄거리 사이사이에 번역문의 파편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들이 느슨히 맞물려 흘러간다.

요령이 없고 힘이 부치는 데다 박한 번역료에 출판사는 파산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나’에게는 그럼에도 나름의 번역관이 있다. “번역이란 것이 ‘건너편 강변에 건네는 것’이라면 ‘전체’쯤은 잊어버리고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번역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변신 같은. 단어가 변신하고 이야기가 변신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양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늘어선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나는 분명히 서투른 번역가다. 나는 말보다 내가 먼저 변신할까 봐 몹시 무서울 때가 있다.”(본문 23쪽) 언어에 관한 다와다 요코의 흥미로운 에세이 『여행하는 말들: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을 한국어로 옮겼던 옮긴이 유라주는 『글자를 옮기는 사람』을 옮기면서 이 소설의 소재이자 주제인 ‘번역’의 핵심이 ‘변신’에 있다고 읽는다. 글쓴이와 옮긴이에 따르면 번역은 (다른 언어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원본이 변신하는 움직임이며, 따라서 번역문은 원문과 전혀 다른, 새롭게 태어난 글이다. 또한 번역은 글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변신하는 움직임임을 이 소설은 보여 준다. “익숙치 않은 외국어를 나의 익숙한 언어로 옮기려면 단어 하나를 두고도 수없이 대조하고 연상해야 하는데, 대조와 연상은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행위다.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거나 손가락으로 사전이나 참고 서적을 뒤적거려 보는. 따라서 변신은 이 행위를 하는 동안 번역가가 어떤 곳에 도달했을 때의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이러한 번역가의 상태는 『글자를 옮기는 사람』 곳곳에 드러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결단을 내리도록 요구하지만 ‘나’는 거듭 망설이거나 자문하는데, 그러면서 ‘나’의 몸도 손목과 팔꿈치가 가렵고 입술이 붓고 머리카락이 목과 등을 찌르는 등 여러 증상을 겪는다. 변신하는 움직임인 번역이 번역하는 이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소설은 직접적으로,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틈새의 이야기가 건네는 바통

‘나’는 섬에 머물면서 여러 주민들을 만나는데, 그중 비현실적인 만남이 등장한다. 작가와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장면은 번역이 곧 번역가와 작가가 마주하는 과정임을 상징한다. 한편 독자는 번역을 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 번역 작업 속에 머물게 된다.

주인공이 번역하는 작품은 독일 작가 안네 두덴이 그림 「성 게오르크 전설」을 보며 떠올린 8쪽 분량의 소설 『알파벳의 상처』다. 라틴어로 게오르기우스라고 알려진 게오르크는 자신이 양들에 이어 공주를 잡아먹으려 하는 용을 해치우면 백성들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서 용을 무찔렀지만 참수형을 당했다. 번역문의 파편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이 전설의 한 장면 같고, 그렇게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번역은 한 단어를 비슷한 뜻의 다른 단어로 교체하는 것이 아닌, 다른 뜻, 다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다른 형태의 글자, 다른 소리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다른 느낌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어쩌면 원문 단어에 대응하는 비슷한 뜻의 번역문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렇게 번역이 맞아떨어지지 않아 틈새가 벌어지는 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려고 한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이제 겨우 번역을 마친 주인공 앞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동안 소년 한 명과 여러 성 게오르크들을 만나며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고 이들에게서 가까스로 벗어나는데, 정작 봉투를 잃어버려 원고를 부치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바다로 달려가는 ‘나’의 모습에서 외려 해방의 기쁨과 안도감이 느껴지고, 달려가면서 바다로 들어갈지 말지 다시 망설이는 ‘나’는 그렇게 여전히 번역 속에 머무른다. 이렇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작업”인 번역을 상징하며 끝나는 소설의 글쓴이에 대해, 소설의 옮긴이는 다시 이렇게 말하며 이 열린 책을 닫는다.

“다와다 요코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끔 만드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바통을 건네는 릴레이 선수처럼. 이 책도 읽는 사람에게 글자, 글, 번역이라는 바통을 건네고 그것을 이야기하게 한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발췌

나는 섬에 올 때부터 ‘소설’ 번역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정작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는데 뭘 어떻게 옮겨야 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글자들의 무리를 정말로 ‘소설’이라 불러도 좋은지도 나는 감이 안 잡혔다. ‘소설’ 하면 다른 사람한테서 받은, 오래 입어서 천이 부드러워진 겉옷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와 다르게 이 글자들의 무리는 햇볕이 달군 모래알처럼 살에 껄끄럽고, 팔을 스르륵 넣어 겉옷을 입듯이 읽기를 시작할 수가 없다. 나는 겉옷이 아니라 달군 모래알을 입고 걷고 있다. (14–15쪽)

화산 폭발 때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집 바로 옆을 따라 나 있었는데 좁고 긴 모양으로 바다로 이어졌다. 그 ‘강’과 같은 검은 길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다. 해 질 녘이 되면 ‘진짜 강’처럼 보이고 물 흐르는 소리마저 들렸다. 그 검은 강 위쪽을 나는 어느샌가 낯선 여성과 나란히 서서 걷고 있었다. 그 여성이 ‘작가’임은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18쪽)

단어들이 이어지지 않은 채 원고지에 흩어졌다. 모두 이어서 문장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생각만 들고 거기에 필요한 체력은 최소한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체력보단 폐활량이 모자랐다. (…) 나는 단어 하나를 읽는 데도 숨이 차서, 힘들어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다음 단어에는 거의 도달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단어 하나하나의 낯선 감촉에 충실한 편이고 지금은 그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건너편 강변에 던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체가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체를 다 생각할 여유는 없다. 전체는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까지 들었다. 번역이란 것이 ‘건너편 강변에 건네는 것’이라면 ‘전체’쯤은 잊어버리고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번역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변신 같은. 단어가 변신하고 이야기가 변신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양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늘어선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나는 분명히 서투른 번역가다. 나는 말보다 내가 먼저 변신할까 봐 몹시 무서울 때가 있다. (22–23쪽)

한 번이라도 좋으니 혼자서 끝까지 번역해 보고 싶다가도 마지막에 이르러 되돌아갈 수 없을 때 부당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까 봐 무섭다. (…) “저는 어떤 역할도 맡고 싶지 않아요.저는 번역자니까요.” 하고 발뺌해도 그때만 괜찮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정말이지 번역은 내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번역을 완성하고 싶지 않다. 완성하고 싶지도 않고 당연히 도중에 그만두고 싶지도 않다. 질질 끌면서 하는 것 외에는 묘안이 없다. (44–45쪽)

에이 씨는 독자의 입장이 돼서 몇 번이고 다시 읽으라고 충고했지만 나는 도저히 독자의 입장이 못 된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아니고, 적어도 작가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실감은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인 것을 다시 던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디를 향해 무엇을 던지고 있는지 잘 모를 뿐이었다. (48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글자를 옮기는 사람 (11쪽)

옮긴이의 글
다와다 요코 연보
작품 목록


지은이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1960– )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소설, 시, 희곡, 산문을 쓰는 작가다. 도쿄에서 태어나 1982년 와세다 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1987년 시집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로 데뷔했는데, 일본어로 쓰인 시가 번역되어 책에 일본어와 독일어가 나란히 실렸다. 이듬해 독일어로 처음 쓴 단편소설 『유럽이 시작하는 곳』이 출간되었고, 1991년에는 일본어로 쓴 단편 「발뒤꿈치를 잃고서」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았다. 다와다 요코는 독일에서 샤미소상, 괴테 메달, 클라이스트상 등을, 일본에서 아쿠타가와상, 이즈미 교카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을 받는 한편 독일 문학을 공부해 1990년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2000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작가가 30여 년간 쓴 작품은 약 3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1천 회 이상 낭독회가 열렸다.
한국에 소개된 다와다 요코의 작품으로는 『눈 속의 에튀드』, 『여행하는 말들』, 『헌등사』, 『용의자의 야간열차』, 『영혼 없는 작가』, 『목욕탕』, 『경계에서 춤추다』 등이 있다. 그 밖에 중편집 『세 사람의 관계』, 『개 신랑 들이기』, 단편집 『고트하르트 철도』, 『데이지꽃 차의 경우』, 『구형 시간』, 장편소설 『벌거벗은 눈의 여행』, 『보르도의 친척』, 『수녀와 큐피드의 활』, 『뜬구름 잡는 이야기』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3부작 중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빛이 아련하게 비치는』, 시집 『아직 미래』 등이 최근 출간되었다.

옮긴이

유라주는 일본어 번역가다. 1980년 출생.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 대학원 언어사회연구과에서 「통치성으로 본 한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전개」(2016)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에 관심이 있으며 이 관심을 바탕으로 쓴 논문으로 「Author as Discourse: African American Women’s Autobiographies」(2021), 「‘사회적인 것’으로서 재생산노동과 일본 개호보험제도」(2020), 「다문화주의, 대항공론장, 공통세계」(2018)가 있다. 옮긴 책으로 『할머니들의 야간중학교』(2019), 『여행하는 말들』(2018)이 있다.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일군의 작가들이 주머니 속에서 빚은 상상의 책들은 하양 책일 수도, 검정 책일 수도 있습니다.
이 덫들이 우리 시대의 취향인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1 프란츠 카프카, 『꿈』, 배수아 옮김
2 조르주 바타유, 『불가능』, 성귀수 옮김
3 토머스 드 퀸시,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유나영 옮김
4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김예령 옮김
5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 『계속되는 무』, 엄지영 옮김
6 페르난두 페소아, 산문선 『페소아와 페소아들』, 김한민 옮김
7 앙리 보스코, 『이아생트』, 최애리 옮김
8 비톨트 곰브로비치, 『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정보라 옮김
9 로베르트 무질,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 신지영 옮김
10 장 주네, 『사형을 언도받은 자 / 외줄타기 곡예사』, 조재룡 옮김
11 루이스 캐럴, 『운율? 그리고 의미? / 헝클어진 이야기』, 유나영 옮김
12 드니 디드로,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이충훈 옮김
13 루이페르디낭 셀린,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김예령 옮김
14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차지연 옮김
15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저 아래』, 장진영 옮김
16 토머스 드 퀸시, 『심연에서의 탄식 / 영국의 우편 마차』, 유나영 옮김
17 알프레드 자리, 『파타피지크학자 포스트롤 박사의 행적과 사상: 신과학소설』, 이지원 옮김
18 조르주 바타유, 『내적 체험』, 현성환 옮김
19 앙투안 퓌르티에르, 『부르주아 소설』, 이충훈 옮김
20 월터 페이터, 『상상의 초상』, 김지현 옮김
21 아비 바르부르크, 조르조 아감벤, 『님프』, 윤경희 쓰고 옮김
22 모리스 블랑쇼, 『로트레아몽과 사드』, 성귀수 옮김
23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살아 있는 그림』, 정의진 옮김
24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 메트리, 『인간기계론』, 성귀수 옮김
25 스테판 말라르메, 『주사위 던지기』, 방혜진 쓰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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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에두아르 르베, 『자살』, 한국화 옮김
32 엘렌 식수, 『아야이! 문학의 비명』, 이혜인 옮김
33 리어노라 캐링턴, 『귀나팔』, 이지원 옮김
34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정보라 옮김
35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탐욕』, 정보라 옮김
36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배수아 옮김
37 다와다 요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유라주 옮김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