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의 13번 요원 황석원 씨의 퇴사를 축하드립니다. 워크룸에서 5년 반 동안 발휘한 것 이상의 근사한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이 메시지는 3주 뒤에 폭파됩니다. — 워크룸 일동

• 황석원 씨가 디자인하거나 참여한 워크룸의 책
• 포트폴리오 사이트
• 인스타그램

「말과 말들」은 워크룸 프레스의 구글 크롬 확장 프로그램입니다. 새 창을 열 때마다 워크룸 프레스와 작업실유령 도서의 인용문을 출력합니다. 내려받기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온라인 판매처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Warum das Kind in der Polenta kocht

아글라야 페터라니 지음, 배수아 옮김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가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6권으로 출간되었다. ‘제안들’의 마지막 번호를 단 37권과 함께 출간된 이 책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1962년생 루마니아 작가 아글라야 페터라니가 독일어로 쓴 데뷔작이자 작가 생전에 출간된 유일한 단독 저서다.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글쓰기

루마니아 국립 서커스단의 곡예사 가족: 어머니 조세피나, 아버지 탄다리카(알렉산드루 베테라니), 이모 레타, 부부의 딸 모니카 지나(아글라야 페터라니)와 (아버지가 이전 결혼에서 데려온) 언니 안두자. 이들의 재능을 알아본 한 스위스 서커스 단장의 도움으로 1960년대 폭정과 궁핍을 넘어 망명해 난민이 된 그들은 임시 숙소를 전전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공연한다. 어린 모니카는 곡예를 배워 성인 무대에 선다. 그러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크레인 곡예 사고로 더 이상 공연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딸과 함께 스위스에 정착한다. 열다섯 살이 된 딸은 루마니아어와 스페인어를 말할 줄 알았지만 읽거나 쓰지 못했다. 스스로 독일어를 익힌 아글라야 페터라니는 이제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 연기 학교에서 배우 수업을 받고, 동료들과 실험 문학 그룹을 꾸려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동반자와 극단을 결성해 낭독 퍼포먼스를 펼친다.
1999년,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첫 소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가 출간된다. 곡예, 망명, 난민, 폭력, 소외 등 자전적 이야기에 기반한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한 책은 호응을 얻고 상을 받지만, 페터라니의 글은 문학 세계가 이민 문학에 흔히 기대하는 바를 넘어선다. 우선 작가는 어머니의 언어 대신 외국인들의 언어를, 말하는 언어 대신 쓰는 언어를 택하면서 자기 자신에게서 탈출해 글을 쓰게 됐다. 한편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혈통뿐 아니라 문화와 기억까지 타고난 ‘모태 외국인’인 자신과 같은 이들을 ‘태생 외국인’이라고 부르는데, 신분이 불안정하고 소수 언어를 지닌 이 새로운 유형의 이방인들은 어디에도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생 외국인이자 모태 외국인으로서 세상의 고정된 관념에 갇히게 된 동시에 명성을 얻게 되기도 한 작가는, 운명에 매인 상태에서 운명을 직시하는 나름의 글쓰기를 통해 다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를 시도한다.

“한 태생 외국인이 신발을 잃어버렸다. 그는 신발을 집에 둔 채 집을 강에 던져 버렸다.
아니면 집이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인가?
태생 외국인은 강에서 강으로 찾아다녔다.
그는 물속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의 목에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여기 천국
외국인이 물었다: 아니, 천국이라고?
노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표지판을 가리켰다.
그러자 집이 다시 나타났지만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아마도 그건 다른 집일 것이다. 집은 외국인의 신발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집은 문을 잃었다.

그건 연미복이 만들어 낸 이야기냐고 내가 묻는다.
아니, 이건 우리의 이야기야, 아버지가 대답한다.” (본문 64–65쪽)

작은 말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폴렌타’는 옥수수 죽의 이름 중 하나다. 이탈리아 등 남유럽과 루마니아, 몰도바, 발칸 지역에서 먹는 이 죽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루마니아에서는 머멀리거라고 한다. 옥수숫가루와 소금과 물을 배합해 오래 끓여 최소한의 허기를 달래는 아주 단순한 음식이다.

산문시처럼 문장과 단락이 불규칙적으로 나뉘어 흩어져 있는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글은 폴렌타를, 머멀리거를 닮아 있다. 스스로 잘 안다고 여겨 온 익숙한 모국어의 수사에 무의식적으로 갇혀 지낸 이들에게 이 글은 본연의 재료를 상기시킨다. 이 작가를 발견해 한국어로 소개하게 된 옮긴이 배수아의 표현에 따르면 “위대한 작품을 쓸 생각이 없는 작가에 속”하는 페터라니는 “급진적으로 생략”하고, “언어를 단순화하고 축소”하고, “항상 덜 말하려 한다”. 따라서 글에서 아주 충분한 설명을 얻지는 못하게 되는 독자는 작가가 골라 배열한 작은 말들을 발판 삼아, 그 사이를 오가며 바라보고 듣게 된다.

당연하게도 작은 말은 보다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정형적인 틀을 이렇게 저렇게 벗어나는 움직임을 통해,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작은 목소리가 점차 들리기 시작한다. 읽는 이가 그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어 들리기도 할 그것은 어쩌면 움직임 자체의 소리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의, 여자들의, 이방인들의, 동물들의, 오랜 시간 외부로 여겨져 왔던 내부의 말들. 불필요한 수식을 굳이 걸치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작음을 유지하는 이 말들은 상대적으로 큰 목소리들로 채워져 왔던 문학 세계의 틈새에서 작음으로 소수됨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를 향한 소외와 차별에 대한 시선의 기준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쉽게 동화되지 못한 태생 외국인, 모태 외국인으로서의 작중 화자도 때로 이러한 기준을 상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까지 이 글은 생각하게 한다.


발췌

이곳은 외국의 모든 나라다. (16쪽)

우리는 아무것에도 정들면 안 된다.

나는 그 어디라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데 익숙하다.
그러러면, 내 푸른 수건을 의자에 펼쳐 놓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바다다.
내 침대 곁에는 항상 바다가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나는 바로 헤엄칠 수 있다.
내 바다에서 헤엄치기 위해 반드시 헤엄치는 법을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밤이면 나는 바다를 어머니의 꽃무늬 가운으로 덮는다.
소변을 보러 일어날 때 상어가 날 잡아먹지 못하도록. (24–25쪽)

무엇보다도 나는 바깥의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거기에서는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들은 흰 밀가루의 영혼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죽어 있고 싶다. 그러면 모두가 내 장례식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비난할 것이다. (40쪽)

슬픔은 늙게 만든다.
나는 외국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다.
루마니아의 아이들은 늙은 채 태어난다. 이미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가난하고, 부모의 근심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낙원에서처럼 산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더 젊게 만들지는 않는다. (41쪽)

아니다, 내 아버지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는 광대니까, 그렇다. (59쪽)

어머니가 말하는 우리의 이야기는 매일 다르다. (66쪽)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먹는, 혹은 끓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84쪽)

우리는 여기에 영원히 있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울기 시작했다. (92쪽)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를 창문 아래 정원에 묻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딸기에서 어머니의 맛이 날 것이다. (93쪽)

똑같은 것이 모든 언어마다 다르게 불린다. (97쪽)

언니와 나만이 아는 비밀 놀이가 있다.
나는 언니의 어깨에 올라가서 자갈 위로 떨어진다.
언니는 소 물통의 물을 마신다.
나는 버터 바른 빵에 흙을 뿌린다.
언니는 손가락을 문틈에 끼운다.
나는 피가 날 때까지 몸을 긁는다.
언니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는다.
나는 말 타는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의자 모서리에 떨어진다.

우리는 병원에 가고 싶다. (113쪽)

아이는 폴렌타 속에서 끓는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머니 얼굴에 가위를 꽂아 버렸기 때문이다. (125쪽)

외국에서 우리 가족은 유리처럼 부서졌다. (142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1
2
3
4

옮긴이의 글
아글라야 페터라니 연보


지은이

아글라야 페터라니(Aglaja Veteranyi, 1962–2002)는 1962년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국립 서커스단의 유명한 곡예사였고, 아버지는 인기 있는 광대였다. 이들은 서커스 가족을 이뤄 여러 나라를 떠돌며 공연한다. 어린 나이에 곡예사로 살게 된 페터라니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루마니아어와 스페인어를 익혔고,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스위스에 정착한 다음에는 독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한다. 취리히 연기 학교에서 연기 수업을 받고 배우로 활동하는 한편 작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한 페터라니는 동료들과 함께 1992–3년 실험 작가 동맹 ‘망(網)’과 실험 문학 그룹 ‘말펌프’를 꾸려 산문과 희곡, 시 등을 다수 발표했고, 1996년 퍼포먼스 극단 ‘천사의 기계’를 결성하기도 했다. 1999년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소설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를 독일어로 쓰고 펴내 이듬해 취리히 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정신적 장애에 시달리다가 2002년 2월 취리히 호수에서 자살했다. 사후에 두 번째 소설이자 미완성작인 『마지막 숨의 선반』 등 유작이 여럿 출간되었다.

옮긴이

배수아는 소설가, 번역가다. 『철수』, 『붉은 손 클럽』,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뱀과 물』,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등을 썼고,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과 『자연을 따라. 기초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과 『G. H. 에 따른 수난』 등을 옮겼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