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와 페소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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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와 페소아들
Prosas Escolhidas — Pessoa e Pessoas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엮고 옮김

이름들, 그 어마어마한 복수성(複數性)

페르난두 페소아는 일생 동안 70개를 웃도는 이명(異名, Heteronym)으로 글을 쓴 포르투갈의 시인이었다. 포르투갈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해 번역가로 활동했던 그의 생전에 책의 형태로 출간된 것은 (모국어로는) 시집 한 권뿐이었다. 그러나 페소아가 남긴, 3만 장에 달하는 미발표 텍스트들은 시뿐만 아니라 산문 또한 그 한 축을 이룬다(페소아 사후 출간된 대표작 『불안의 책』 또한 산문이었다). 이 책은 제목이 상징하듯 시인 페소아가 여러 이름으로 남긴 무수한 산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이명 9명 이상의 글 11편, 그리고 본명 페소아로서 남긴 글 6편을 엮어 구성한 것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의 산문으로, 단편과 희곡, 서간 등을 포함한다. 책을 엮고 옮긴 이는 김한민으로, 직접 쓰고 그린 책 『책섬』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 그는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에서 페소아의 작품을 연구하며 한국어로 옮겼다.

그런데 과연 ‘이명’이란 무엇인가? 페소아는 왜 이러한 이명으로 글을 써야만 했는가? 먼저 (가명과는 다른) 이명에 대해서는, 다음의 인용이 간략한 단서를 제공한다.

“가명을 사용한 작가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페소아처럼 이 실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람은 전무후무했다. 그 규모와 깊이와 강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의 실험 과정에서 그는 ‘이명’이라는 발명품을 고안해내 폭발적인 창작력을 발휘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페르난두 페소아가 쓰는 작품들은 본명과 이명이라는 두 가지 항목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를 익명과 가명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정말로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명으로 쓰인 작품은, 서명하는 이름만 빼고는 모두 저자 자신에 의한 것이다. 이명의 경우는 자신의 개성 바깥에 존재하는 저자가 쓴 것이며, 완벽히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1928년 12월, 「저서 목록」 중에서

연구자들에 따르면, 페르난두 페소아는 적게는 71개부터 많게는 136개로 추정되는 이명들을 창조해 글을 썼다. 이렇게 페소아가 창조한 또 다른 ‘페소아들’은 각기 다른 이름은 물론 별도의 생년월일과 가족사, 학력, 직업, 문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시를, 어떤 이는 산문을, 또 어떤 이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이렇게 페소아가 이명 뒤에서 쓴 산문들은 소설, 희곡, 철학 에세이, 단상, 논문, 정치/사회 평론, 추리소설, 일기, 편지 등에 이른다.

페소아가 보기에, 이러한 이명들은 감각을 확장하는 속성을 지닌다. ‘느낀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이명 중 하나인 알바루 드 캄푸스가 말했듯, 페소아에게는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느끼는 것”. 단순한 신체 작용을 넘어선, 능동적인 지적 작업을 동반하는 이러한 ‘감각의 확장’은 여러 이명들을 통해 비로소 실체화된다. 그는 ‘감각주의’를 창시하고 체계화할 정도로 느낌 내지 감각에 대해 사유하고 썼다. 페소아의 이명들과 그들이 남긴 글들은 이러한 다각적, 분석적 사유의 결과물이자, 옮긴이의 분석에 따르면, 나아가 “점점 정교하게 진화하는 메커니즘, 일종의 가상 신체”에 이른다.

이 책, 산문선 『페소아와 페소아들』은 페소아와 그 이명들이 남긴 다양한 성향의 산문들을 이름별로 고루 선별해 구성됐다. 옮긴이가 기존의 책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여러 산문집들을 비교 검토해 구성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페소아 사후 출판된 산문집의 종류가 많았지만 작가가 남긴 글의 양이 워낙 많아 그중 대표적인 한 권을 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직도 유고가 모두 출간되지 않은 상태다. 둘째, 국내 출판계에서 이제 페소아가 소개되는 단계이기에 페소아의 다채로운 면모를 두루 보여줄 수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글들은 아래의 선정 기준하에 추려졌다.

  1. 이명과 본명으로 구분한다. 주요 이명들의 경우 각 1편(필요한 경우 2편), 본명의 경우 여러 편의 글을 싣는다.

  2. 대표성과 다양성의 균형을 잡는다. 즉, 각 이명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라 할 산문을 택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페소아의 특징인 ‘다면성’이 최대한 잘 드러나도록 구성한다. 대표성을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연구 자료 및 기존 산문집들을 참고하고, 다양성의 경우 옮긴이가 판단한다.

미완성의 미학

이 책에 수록된 페소아가 창조한 이명들은 다음과 같다. 알렉산더 서치,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리카르두 레이스, 안토니우 모라, 토머스 크로스, 바롱 드 테이브, 헨리 모어, 마리아 주제 등.

알렉산더 서치는 페소아와 같은 해(1888년)에, 같은 도시(리스본)에서 태어난 이로 페소아가 ‘이명’이라는 말을 발명하기 이전에 탄생해 ‘전(前)이명’으로 분류되는 작가다. 그는 이명들 중 유일하게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모두로 글을 썼다. 이 산문선에는 그의 글 중 ‘지옥의 거주자’와 아무 곳도 아닌 그곳의 군주 ‘야곱 사탄’과의 계약 내용을 밝힌 인상적인 단문 「악마와의 계약」에 이어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단편 「어지간히 독창적인 만찬」이 실렸다.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경우 시인이었기에 별도로 남긴 산문이 없어 대신 유일한 산문으로 고려될 수 있는, 알렉산더 서치가 포르투갈어로 기록한 가상 인터뷰 「알베르투 카에이루와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알렉산더 서치가 “우리 시대 시인들 중 가장 최신인,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라 일컫는 알베르투 카에이루는 핵심 이명 3인방 중 한 명이다. 페소아에 따르면 “내 안에서 탄생한 내 스승”인 카에이루는 모든 이명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중심인물이었다. 이 카에이루의 경우 국내에 시집 『양 치는 목동』이 출간된 적이 있다(전예원, 1994년).

강력한 선언문인 「최후통첩」과 카에이루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글 「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을 쓴 알바루 드 캄푸스는 흥미롭게도 스승 카에이루와 극적으로 대조되는 도발적인 기계 예찬론자이자 미래주의자로, 선박 기술자였다. 글을 쓴 이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최후통첩」에 드러나듯 과격한 성향의 소유자였던 그는 페소아가 죽을 때까지 시와 산문을 썼다. 한편 역시 카에이루에 대한 글 「알베르투 카에이루 시집의 서문」을 쓴 리카르두 레이스는 동료 시인 알바루 드 캄푸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으나, 스승 카에이루에 대해서만은 더불어 절대적 신뢰를 보냈다.

안토니우 모라는 페소아의 중요한 사상 중 하나인 ‘이교주의’에 대한 글 「신들의 귀환」을 썼다. 페소아는 당시 사회의 퇴폐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적 가치의 부활을 주장할 이론가가 필요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탄생한 듯한 모라의 이교주의는 니체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존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편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토머스 크로스는 페소아가 주창했던 ‘감각주의’에 관한 글 「포르투갈의 감각주의자들」을 썼다. 이 글에서는 당시 포르투갈 문학 운동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페소아가 창간하고 주요 필자로 활동했던 잡지 『오르페우』가 언급된다.

페소아 사후 영어권에서 별도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는 바롱 드 테이브의 「금욕주의자의 교육」은 “부재의 포만, 무의 절정”에 도달한 테이브 남작이 유일하게 쓴 글이다. ‘고차원의 예술을 창조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논하는 이 글은 바롱 드 테이브와 (『불안의 책』의 저자) 베르나르두 수아르스의 유사성으로 인해 『불안의 책』의 전례로 여겨지기도 한다.

헨리 모어, 헨리 러벌, 워도어, 부두교인 등 여럿이 쓴 메모 「영적 교신」은 점성술에 관한 수수께끼다. 한때 함께 살았던 아니타 이모의 영향으로 점성술과 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페소아는 해독 불가한 예언들을 자동 기술 방식으로, 단상과 기호로 남겼다.

이명의 마지막 글인 「꼽추 소녀가 금속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마리아 주제는 여성 이명이다. 이 편지에서 페소아는 열아홉 살 장애인 소녀의 심정을 상당히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한편 페소아가 페소아로서 쓴 글들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사망하던 해에 직접 작성한 「이력서」를 필두로 등장인물들이 움직임 없이 대사만을 주고받는 ‘단막 정지극’ 「선원」, 페소아의 주요한 사상 중 하나인 ‘무정부주의’에 대한 단편소설로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인 작품이었던 「무정부주의자 은행가」, 포르투갈을 향한 애국자적 면모가 드러나는 「세바스티앙주의 그리고 제5제국」,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 등 친구들과 유일한 애인이었던 오펠리아 케이로즈에게 보낸 「편지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영화를 위한 각본」.

이명이든 본명이든, 페르난두 페소아가 남긴 글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글들의 대부분이 미완성 상태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페소아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불안의 책』에 대한 언급이긴 하지만) 한 편지에서 “그저 단상들! 단상들! 단상들뿐”이라며 개탄했던 페소아의 이러한 속성은 ‘미완성 콤플렉스’로 분류될 만하다.

무역 통신문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생애 펴낸 책이 거의 없어 흔히 은둔의 작가로 여겨지는 페소아이지만, 그의 삶 면면을 살펴보면 의외의 모습들이 두드러진다. 스스로 출판사를 차린 적도 여러 번이었고, “모든 현대문학 운동들의 요약이자 종합”인 포르투갈 문학 계간지 『오르페우』를 창간한 후 “굉장히 현대적”인 글을 기고했으며, 영어권에서 인정받기 위함인 듯 영어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러니 “원대한 포부를 안고 대문자로 된 ‘그 책(Livro)’을 쓰려고 시도할 때마다, 소문자로 된 책(livro)은커녕, 단상이나 쓰는 데 그치는 좌절감”은 페소아를 상당히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그의 ‘미완성’ 작품들은 여느 작가의 미완성작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책의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완성이 가능해 보이는 사례들과 시간이 더 주어지더라도 완성될 법하지 않은 그의 ‘불안한’ 책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완성되지 않은 것’과 ‘완성될 수 없는 것’ 의 차이다. 하나의 완결된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개로 쪼개져 파편화된 ‘정체성들’을 추구한 페소아의 특수성 때문에 이 차이가 발생했을까? 이 ‘완성불가능성’에 오히려 독보적인 가치가 있는 것일까?”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완성될 법하지 않은” 글을 쓴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는 산문에 대해, 『불안의 책』의 저자였던 그의 이명 베르나르두 수아르스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산문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음악적 리듬을 포함시키면서도 여전히 사고를 할 수 있다. 시적 리듬을 포함시키면서도, 그 바깥에 있을 수 있다. 이따금 시적 리듬이 생겨도 산문은 방해받지 않지만, 이따금 산문적 리듬이 생기면 시는 망가진다. 산문은 모든 예술을 포괄한다 — 왜냐하면 한편으로 단어는 그 안에 온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자유로운 단어는 그 안에 말하기와 생각하기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자유로운 말들이 여기 있다.


발췌

“카에이루 씨는 유물론자인가요?” “아니요. 나는 유물론자도 아니고, 이신론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어느 날 창문을 열다가, 이 엄청나게 중요한 걸 발견한 사람입니다: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나무들과, 강들과, 바위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들이란 걸 확인한 거죠. 아무도, 한 번도 이걸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되는 것 이상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발견은 했고, 다른 모든 발견들은 그에 비하면 시시한 아이들 오락거리죠. 나는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겁니다. 그리스인들조차, 그만큼 시각적 명민함을 갖추고도, 그 정도까지는 깨닫지 못했죠.” (59쪽)

이교주의는 땅에서 직접 탄생한 종교로, 자연 — 즉 각 사물의 진짜 실재 속성 — 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다. 자신의 자연적 천성 때문에, 그것은 출현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신이교주의”라는 말은 “신바위” 또는 “신꽃”이라는 말들만큼이나 무의미한 명칭이다. 이교주의는 인간이라는 종이 건강할 때 출현하고, 병이 들 때 사라진다. 꽃이 시드는 것처럼 시들 수도 있고, 식물이 죽는 것처럼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것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고, 자기 본질과 다른 형태를 취하지도 못한다. (134쪽)

감각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데카당들이다. 그들은 데카당주의와 상징주의 운동의 직속 후계자들이다. 그들은 “인류, 종교, 조국에의 절대적 무관심”을 주장하고 선언한다. 때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반감을 확증하기에 이른다. (142쪽)

우리는 단지 그게 우리 것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느낌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 이 내면적 허영을 너무도 자주 자존심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그건 마치 우리가 우리의 진리를 모든 종(種)의 진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168쪽)

세계에 존재하는 진짜 악, 유일한 악은 자연적인 현실 위에 덮어씌워진 사회의 관습과 허구들이지 — 전부 다, 가족에서부터 돈, 종교에서 국가까지. 사람은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거야 — 내 말은, 자연스러운 의미에서, 남자나 여자로, 어른으로 자라나기 위해 태어나는 거지, 남편이 되거나, 부자나 가난뱅이가 되거나, 마찬가지로 천주교나 기독교 신자나, 포르투갈인이나 영국인이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네. 우리를 정의하는 이 모든 것들은 사회적 허구의 산물일 뿐이야. 그럼 이런 사회적 허구들이 왜 해롭냐? 왜냐하면 그것들이 허구이기 때문에, 당연한 게 아니기 때문이지. (262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이명(異名)

알렉산더 서치
악마와의 계약
어지간히 독창적인 만찬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베르투 카에이루와의 인터뷰

알바루 드 캄푸스
최후통첩
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시집의 서문

안토니우 모라
신들의 귀환

토머스 크로스
포르투갈의 감각주의자들

바롱 드 테이브
금욕주의자의 교육

헨리 모어 외
영적 교신

마리아 주제
꼽추 소녀가 금속공에게 보내는 편지

본명(本名)

페르난두 페소아
이력서
선원
무정부주의자 은행가
세바스티앙주의 그리고 제5제국
편지들
영화를 위한 각본

옮긴이의 글
페르난두 페소아 연보


지은이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1888~935)는 포르투갈의 시인이다. 그는 일생 동안 70개를 웃도는 이명 및 문학적 인물들을 창조해 글을 썼다. 알렉산더 서치,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리카르두 레이스, 안토니우 모라, 토머스 크로스, 바롱 드 테이브, 헨리 모어, 마리아 주제 등 페소아가 창조한 이들은 포르투갈어와 영어와 프랑스어로 각기 다른 문체를 구사했으며, 소설, 희곡, 평론, 편지, 일기 등 다양한 산문을 썼다. 페소아 스스로 작성한 이력서에 따르면 그의 “가장 적절한 명칭은 ‘번역가’, 가장 정확한 명칭은 ‘무역 회사의 해외 통신원’일 것”이며, “시인 또는 작가인 것은 직업이라기보다 소명이다”. 1888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페소아는 5세 때 친아버지를 잃었고, 이후 어린 시절을 양아버지가 영사로 근무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보냈다. 1905년 17세에 리스본에 돌아와 리스본 대학교 문학부에 들어가지만 곧 그만둔다. 그는 1935년 리스본에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주로 무역 통신문 번역가로 일했다. 페소아는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하고 주요 필자로 활동했으며, 1918년과 1922년에는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자신의 영어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사망하기 전해인 1934년 국가 공보처에서 주관한 문학상에 응모해 2위로 입상한 『메시지』는 모국어로 쓴 것으로는 유일하게 출판된 시집이다. 이어 페소아는 수년간 공책과 쪽지에 단상을 적어온 『불안의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935년, 간 경화로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옮긴이

김한민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카페 림보』, 『사뿐사뿐 따삐르』, 『도롱뇽 꿈을 꿨다고?』,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비수기의 전문가들』 등의 책을 쓰고 그렸다. 한국해외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독일에서 떠돌이 작가로 살다가 귀국해 계간지 『엔분의 일(1/n)』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한겨레 신문에 ‘감수성 전쟁’을 연재하기도 했다. 포르투 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공부하며 가장 좋아하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을 번역해왔다. www.hanmin.me


편집

김뉘연

디자인

본문 강경탁, 표지 김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