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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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On Murder Considered as One of the Fine Arts

토머스 드 퀸시 지음, 유나영 옮김

희대의 연쇄살인마에 혹한 문필가

1811년 12월, 영국 런던 심장부 이스트엔드에서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선원이었던 존 윌리엄스가 벌인 두 건의 살인은 개인이 아닌 서민 일가족을 몰살하는 지경이었다. 그가 일말의 배짱만 부리지 않았다면 두 건 모두 완전 범죄에 속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범죄 직후 호기롭게 제 숙소로 향한 이의 결말은 자살이었다. 수감된 직후, 존 윌리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대의 영국 문필가 토머스 드 퀸시는 이 존 윌리엄스 연쇄살인 사건에서 특별한 미덕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탁월한 발견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잡지에 기고했다. 드 퀸시의 매혹적인 에세이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은 이렇게 생명을 얻었다.

토머스 드 퀸시는 보들레르, 포, 콕토, 보르헤스 등 여러 언어권의 상징적인 작가들이 남다른 애호를 표해온 작가다. 주로 잡지에 기고하는 형식으로 글을 쓴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했고 고전 지식에 해박했던 엘리트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고, 매문가로서 생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의 글에 담긴 지식의 스펙트럼은 여느 작가들을 거뜬히 능가할 만큼, 이를테면 보르헤스를 사로잡을 만큼 깊고 넓다. 더불어 그의 글들은 위트가 넘친다. 예상치 못한 순간 허를 찌르는 드 퀸시 특유의 신랄한 유머는 여러 층위의 독자들을 사로잡는 데 제 몫을 해냈다. “G. K. 체스터턴은 드 퀸시를 ‘최초이자 최강의 퇴폐적 인간’으로 평가하며, ‘아직도 오스카 와일드의… 독설이 얼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썼던 것을 드 퀸시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훨씬 더 훌륭하게 써놓았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본문 272쪽)

드 퀸시를 널리 알린 대표작은 젊은 시절 자신의 아편중독 체험을 기록한 『어느 아편쟁이의 고백』이다. 보들레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 있는 이 작품은 국내에 두 가지 판본으로 출간되어 있다(시공사의 『어느 아편쟁이의 고백』,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어느 아편 중독자의 고백』). 이제 새롭게 선보이는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은 드 퀸시의 치명적 매력이 최고조에 달한 글로, 한국어 판본에는 본편인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더해 드라마틱한 도입부로 「맥베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싣고, 「두 번째 글」과 「후기」, 「새로운 글」 등 이 글로부터 파생된 여러 글들을 모았다. 또한 당시 신문 등에 게재되었던 살인 사건 관련 삽화 도판 6점을 실어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 글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살인이 ‘예술’이 될 때

“하지만 지금은 살인의 원칙에 대해 몇 마디 해야 할 때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실천이 아닌 판단을 조절하려는 목적입니다. 노부인들과 신문 독자 패거리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피비린내만 충분하면 아무것이나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양식 있는 이들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 65쪽)

희대의 연쇄살인마와 그 작업에 매료된 문필가는 그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쓰면서 살인에 대한 강고한 원칙을 내세운다. 이는, 드 퀸시와 양식 있는 이들 즉 “계몽된 감식가”의 기준에서, 살인이 ‘예술 분과’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요건들이다.

  1. 살인범의 목표에 적합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 피해자는 선량한 사람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스스로가 되레 살인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 분과로서 살인의 최종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목표 — 즉 “연민과 공포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것” — 와 정확히 일치한다.)
    — 선택된 사람이 공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사람들이 그를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추상적 관념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 선택 대상은 건강해야 한다. 살해 과정을 견딜힘이 전혀 없는 병자를 죽이는 것은 지극히 야만적인 행동인 까닭이다. (병자들의 안위에 대한 이 같은 배려 속에서, 감정을 순화하고 정제하는 예술 일반의 효과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 간택 대상은 또한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족을 혼자 먹여 살리는 가장이어야 한다. 이는 살인의 파토스를 더욱 깊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2. 장소에 대해

  3. 적절한 시간과 그 외 소소한 조건들에 대해
    — 현역 예술가의 예리한 감각은 주로 밤 시간과 홀로 있는 공간에 끌린다. 그러나 이 규칙에서 벗어나 탁월한 효과를 거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신사 여러분, 세상은 대체로 매우 피에 굶주려 있습니다. 살인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대량 출혈이며, 이 부분을 천박하게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계몽된 감식가의 취향은 좀 더 세련되었습니다. 철저히 함양한다면 여타 모든 교양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예술의 결실은 — 바로 마음을 닦고 인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 68쪽)

살인자들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살인을 추구함으로써 이를 목도하는 우리들이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가해자를 향한 공포로 마음을 정화하게 되고 그렇게 인간이 인간답게 된다는 드 퀸시의 논리를 반박하기란 수긍하기보다 월등히 어려워 보인다.

그는 결국 살인자였다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가 흔히 받을 법한 의심은, 결국 그 또한 숨은 살인자가 아니겠느냐는 의혹일 것이다. 드 퀸시는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실린 여러 에세이들에서 자신은 결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노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 책의 번역 후기에서 옮긴이가 밝힌 바 새빨간 거짓임이 드러났다. 옮긴이는 드 퀸시가 당시 글을 기고했던 잡지 편집장에게 보냈던 서한인 「블랙우즈 매거진 편집장님께」의 형식을 차용한 편지 「워크룸 프레스 편집자님께」를 통해 드 퀸시가 어떠한 비열한 방법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인을 조장해왔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드 퀸시가 범죄와 살인의 미학에 집착하는 이 흉악한 장르의 원조였음을, 아편쟁이일 뿐만 아니라 살인자이기도 했음을 생생히 입증하는” 이 편지는 드 퀸시가 활동하던 19세기 초 영국의 저널리즘 문필계를 “총칼 대신 펜을 휘두르는 저격수와 암살자들의 무대”로 묘사하며, 이 무대에서 드 퀸시가 자신이 기고하던 매체와 경쟁지의 편집자들을 부추겨 결투 끝에 이들이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드 퀸시가 “가장 가공할 규모의 살인”인 전쟁, 아편전쟁을 펜으로써 옹호한 맹렬한 주전론자였음을 고발한다.

그렇다면 드 퀸시는 그 자신이 고도의 전략과 수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던 살인자였음이 틀림없다. 다만 위와 같은 그의 방식이, 그가 그토록 경외하고 찬양했던 ‘예술 분과’에 속할 만큼의 합당함을 지녔는지는 후대가 판단할 일이다.

사건 일지

존 윌리엄스의 연쇄살인 기록

“아마도 매우 뛰어난 선원이었을 것”이라 판단되는 존 윌리엄스는 대체로 영리하고 노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온갖 돌발적 난국에 풍부한 지략을 동원할 능력을 갖추었고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유연히 적응했다고 한다. 그가 지녔던 “시체같이 창백한 얼굴, 기이한 머리색, 번들거리는 눈”은 드 퀸시가 보기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귀족적이고 까다로운 예술가”의 면모와도 같았다. 아래는 이러한 존 윌리엄스가 벌인 연쇄살인 행각의 사건 일지를 정리한 것이다.

존 윌리엄스의 연쇄살인 사건 1: 마 가족 살인 사건

때: 1811년 12월 7일 토요일, 자정이 몇 분 지난 시점(아마도 12시 8분이나 10분)부터 새벽 1시 조금 전까지(드 퀸시는 이 사건의 연도를 1812년으로 잘못 적고 있음)
곳: 런던 심장부 이스트엔드, 래트클리프 하이웨이 29번지에 위치한 마 씨의 상점
가해자: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1784~1811)
피해자: 포목상 티모시 마(Timothy Marr, 27세)와 그의 부인(결혼한 지 19개월째), 젖먹이 아들(생후 8개월), 도제(데번셔 주 출신의 잘생기고 통통한 소년) 등 일가족 4명. 다만 심부름(늦은 저녁 식사용 굴 구입)을 나가 있던 하녀는 참사를 면함.
연장: 배 목수의 나무망치(늙은 스웨덴인 욘 페테르센의 이니셜 J. P.가 새겨짐), 칼 한 자루
소요 시간: 한 시간 이내

존 윌리엄스의 연쇄살인 사건 2: 윌리엄슨 가족 살인 사건

때: 1차 사건 12일 뒤, 12시가 되기 28분 혹은 25분 전
곳: 래트클리프 하이웨이로부터 직각으로 뻗은 한 지선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로 있었던, 마 씨 상점 몇 집 건너에 자리했던, 윌리엄슨 씨의 선술집
가해자: 존 윌리엄스
피해자: 일흔을 넘긴 윌리엄슨(Willamson), 그보다 밑으로 열 살 정도 차이 나는 아내 윌리엄슨 부인, 마흔에 가까운 하녀. 26세 정도 된 젊은 제조업체 직공은 피신. 아홉 살가량 된 어린 손녀는 정황상 해를 면함.
연장: 쇠지렛대
소요 시간: 한 시간 이내

결과:
존 윌리엄스는 감방 안에서 자살함. 이후 그의 시체는 당시 법에 따라 가슴에 말뚝이 박힌 채 도심의 네거리 교차점 한가운데 매장됨.


발췌

제가 여러 해 전 살인 ‘애호가(dilettante)’로서 세상에 나왔던 것을 박사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애호가는 너무 강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소심하고 유약한 대중의 취향에는 ‘감정가(connoisseur)’가 더 적합합니다. 적어도 이 말에는 유해한 구석이 없습니다. 누군가 살인을 마주했을 때 그의 눈과 귀와 이해력을 무조건 주머니 속에 쑤셔넣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완전히 혼수상태가 아니라면, 취향의 관점에서 어떤 살인이 다른 살인에 비해 더 좋거나 나쁜지를 반드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각상, 회화, 오라토리오, 음각 및 양각 세공 등이 그렇듯 살인에도 그 가치의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누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너무 공공연히 떠든다는 이유로 화를 낼 수는 있지만(지나치다는 표현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취향은 아무리 수준 높게 다듬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생각하는 것만은 허락되어야 합니다. (89~90쪽)

일단 사람이 살인에 경도되면 이내 절도쯤은 우습게 생각하게 되고, 절도 다음에는 음주와 안식일 위반으로, 그다음에는 무례와 게으름으로 옮아가기 때문이지. 한번 이런 내리막길을 타게 되면 어디서 멈추게 될지 알 길이 없다네. 많은 이들의 타락이,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그런저런 살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네. (96쪽)

무뚝뚝하고 음울하여 그 어떤 발랄한 글에도 싹싹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부류의 독자들을 회유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그 발랄함이 도발의 영역으로 침범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경우,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곧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아무도 즐기지 않는 농담은 김이 빠지고 무미건조해지거나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다행히도, 이런 촌스런 독자들이 큰 불쾌감을 품은 채 전부 빠져나간 뒤 그 자리에 남은 대다수 독자들은 이 보잘것없는 글에서 흥미를 이끌어내고 이를 소리 높여 인정했으며, 그와 동시에 조심스러운 질책을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칭찬이 진실함을 입증해주었다. 그들은 이 글의 도발이 분명히 의도적이며 글의 전체적인 발랄함을 완성하는 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견을 거듭 전했다. 나는 이 견해에 찬동하지 않는다. 이 졸고의 직접적 목표와 의도는 바로 공포의 순간을 건드리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현실에서 맞닥뜨렸을 때 가장 불편한 부분임을 우호적인 검열관들에게 알려드리는 바이다. (123쪽)


차례

작가에 대하여
이 책에 대하여

『맥베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대한 두 번째 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부치는) 후기

도판

미출간 수고
A. 『블랙우즈 매거진』 편집장님께
B. 피터 앤서니 퐁크
C.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대한 새로운 글

옮긴이의 글
토머스 드 퀸시 연보


지은이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859)는 영국의 문필가이다. 맨체스터 출신으로 직물 수입상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하고 고전 지식에 해박했지만, 그리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맨체스터 문법학교를 도망쳐 나와 웨일스 북부와 런던을 떠돈 드 퀸시는 위장병에 걸리고 급기야 그 진통제로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한편 그는 어머니, 후견인들과 화해하고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결국 학위를 받지 못했다. 워즈워스와 콜리지 등 우러르던 호반 시인들을 만나 교류하던 그는 1818년 『웨스트몰랜드 가제트』 편집 주간으로 임명되지만, 빚과 아편중독에 시달리다 이듬해 사임한다. 이어 『블랙우즈 매거진』에 몇 편의 글을 기고하고, 1821년 『런던 매거진』에 ‘자서전적 스케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싣고, 그다음 해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1826년 다시 『블랙우즈 매거진』에 기고하기 시작한 드 퀸시는 1827년 연쇄살인마 존 윌리엄스의 살인을 예찬한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을 발표하고, 이후 매체를 넓혀나가며 평생 글을 쓴다. 그중 1845년 발표한 「심연에서의 탄식」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의 속편 격이었으며, 에세이 「영국의 우편 마차」는 시적 산문의 진수를 보여준다. 드 퀸시는 채무불이행으로 수차례 기소되고 투옥되며 일생의 대부분을 가난한 매문가로 살았다. 그러나 그 글의 가치를 알아본 보들레르와 포가 드 퀸시의 저작들에서 영감을 받는 등 문필가로서 당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1859년, 드 퀸시는 자신의 저작집 『진지하고 쾌활한 선집』을 편집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선집은 1860년 14권으로 완간되었다.

옮긴이

유나영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고 삼인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 리처드 플래너건의 『굴드의 물고기 책』, 토머스 드 퀸시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루이스 캐럴의 『운율? 그리고 의미? / 헝클어진 이야기』 등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lectrice.co.kr)’에서 오탈자와 오역 신고를 받고 있다.


편집

김뉘연

디자인

김형진